국민의힘은 최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대국민 사과를 추진하면서 갈등이 표출됐다./뉴시스
국민의힘은 최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대국민 사과를 추진하면서 갈등이 표출됐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최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과오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추진하면서 국민의힘이 내홍을 겪었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의 대국민 사과에 대한 진정성에 의구심이 표출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사과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상대방의 낙인찍기에 빌미만 제공하는 것 아니냐고 반대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출했고, 장제원 의원은 “비대위원장이 나서 당의 분열만 조장하는 섣부른 사과 논란을 벌이고 있으니 참담한 심정”이라고 비판했다. 배현진 의원도 “인지부조화, 아찔하다”고 반발했다.

이에 김 비대위원장은 당내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수위 조절에 나선 분위기다. 우선 대국민 사과 시점도 계속 미루고 있다. 당초 김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 4년째인 지난 9일께 대국민 사과를 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당의 주요 쟁점 법안 강행 처리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을 이유로 대국민 사과 시점을 13일에서 이번 주로 다시 연기했다.

사과 내용도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명확하게 인정하고 이를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뭉술하게 당의 책임을 언급하며 혁신과 쇄신을 다짐하는 수준에 그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국민 사과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주호영 원내대표는 사과 내용을 미리 확인하고 “그 정도는 당연히 반성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한 언론을 통해 “두 대통령의 잘못을 비난하는 식의 사과가 아니라면 반대 목소리도 잦아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최근 3선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탄핵 때 위원장은 민주당에 있지 않았느냐”라는 항의가 나오자, “내가 전직 대통령들을 대신해 사과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전직 대통령들을 그런 상황까지 만든 당, 그리고 그 뒤에도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당에 대해서 사과를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가 ‘알맹이 빠진’ 사과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당내 많은 의원들의 반발 상황에서 진행하는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가 국민의힘 전체의 진정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광주 5.18 민주 묘지를 찾아 ‘무릎 사과’를 하고 기본소득제 도입과 ‘공정경제 3법’에 찬성 의사를 밝히는 등 ‘중도 지향’ 행보를 보여왔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김 위원장의 행보를 놓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표출돼왔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외연 확장’ 행보가 의원들 대다수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원맨쇼’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는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전직 대통령도 아직까지 직접 사과 입장을 밝힌 적이 없고, 당시 여당으로 국정운영의 한 축을 맡았던 국민의힘도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여당의 거듭된 악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을 세게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국민의힘에 대한 거부감이 민심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은 ‘혁신과 쇄신’ 노력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반사이익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대국민 사과는 사실 늦었다. 국민의힘이 국민들에게 수권 정당으로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정권 재탈환을 노린다면 과거와의 단절은 필수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에서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추진에 대해 거부감이 표출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부정하고 지난 정권의 과오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반문 정서’가 확산되는 틈을 노려 과거에 언제 그랬냐는 듯 기세등등하며 문재인 정부 공격에 정신이 없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4‧15총선 참패 이후 외부에서 ‘구원 투수’로 영입한 임시 당 대표다. 그의 임기는 내년 재보궐선거(4월 7일)까지다. 김 위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당을 떠난다면 국민의힘의 변화를 위해 시도해온 노력들도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당 전반이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대국민 사과를, 그것도 ‘알맹이가 빠진’ 내용으로 한다면 진정성이 결여된 ‘원맨쇼’에 불과하다. 그 같은 사과가 민심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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