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신조어인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를 골랐습니다. 올해 유난히 심해진 정치권의 ‘내로남불’을 한자로 쓸 수 없어 새로 이 네 글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을 줄인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옳고, 네가 하면 틀렸다”를 비튼 것이니 ‘내로남불’을 ‘아시타비’로 바꾼 게 납득은 됩니다.

아시타비, 이 사자성어를 들여다보다가 얼마 전에 알게 된 ‘금시작시(今是昨是)’를 붙여 대련(對聯)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아시타비만으로는 올해의 혼란과 울분, 좌절, 절망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시타비에 역시 신조어인 ‘금시작시’를 붙이면 그나마 뜻한 바가 수용되지 싶습니다.

금시작시도 아시타비와 마찬가지로 원래 있던 사자성어가 아니고 얼마 전에 새로 만들어진 겁니다.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인 임철순(전 한국일보 주필)이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렸다”라는 뜻인 ‘금시작비(今是昨非’)를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라는 뜻인 금시작시로 바꿔 얼마 전에 자기 칼럼 ‘금시작시 추미애’에 썼습니다. 임철순에 따르면 금시작비는 중국의 옛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覺今是而昨非]”를 요약한 것으로, “삶의 반성과 전환, 깨달음과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성어가 돼” 후대의 여러 인물이 자신의 시문에 썼습니다.

이렇게 좋은 뜻이 있어 예전 뛰어난 분들이 즐겨 인용했던 금시작비가 금시작시로 변하게 된 건 법무부장관 추미애의 뛰어난 내로남불 때문입니다. 임철순의 글을 몇 줄 옮기겠습니다.

그런데 이 ‘금시작비’는 전에 저지른 일을 덮어 변명하는 변절의 둔사(遁辭)로 쓰이거나 내 잘못을 제쳐두고 남을 비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월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정치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은 금시작비(今是昨非)의 자세와 어긋난다”고 한 말에 뱀의 독이 묻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냈다고 정홍원 국무총리를 호되게 닦달하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추 장관은 “정부를 공격한다든지 정권을 흔드는 것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고 미화돼선 안 된다”는 말도 했는데, 그에게는 모든 일이 금시작비가 아니라 금시작시(今是昨是)인 것 같다.


아시타비, 금시작시’는 운도 맞고 뜻도 통합니다. 내가 아시타비와 금시작시로 대련을 만들면 좋겠다고 한 이유입니다. 또 아시타비는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내로남불을 설명하지만, 금시작시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온 한국 정치인의 내로남불을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내로남불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에 아시타비만으로 야유/비난해서는 안 되고 금시작시를 붙여야만 그 야유와 비꼼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임철순이 말한 것처럼 올해는 법무부장관 추미애가 검찰개혁을 한답시고 과거 자기 말을 다 잘라먹고 끊임없이 딴소리를 했지만 작년에는 법무부장관에서 쫓겨난 조국이 쉴 새 없이 자기 말(과거 10년 가까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렸던)을 뒤집어 아시타비의 모범이 되었지요. 그전에는 중기부장관 박영선이 장관후보 청문회에서 이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은 아시타비를 열연했습니다. 이들 외에 수많은 여권인사들이 지금도 아시타비의 자세로 내로남불을 ‘자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야권도 과거의 행적을 보면 내로남불, 아시타비, 금시작시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만 그들은 그런 것을 지적받으면 미안한 척은 했다는 게 지금 여권 정치인들과 관료, 심지어는 대통령의 내로남불, 말 뒤집기와 차이가 있을 겁니다.

대련은 좋은 글씨로 써서 대문에 붙여야 제 맛이 날 겁니다. 아시타비, 금시작시를 따로따로 좋은 나무판에 써서 붙여주고 싶은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그런 말, 그런 행태를 부끄러움 없이 계속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들의 집 같은 곳이지요. 청와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등등. 매일 드나들며 반성하라는 뜻으로요.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21일 아침 신문에 이런 칼럼이 있더군요. “일각에서는 아시타비가 내로남불의 고급 버전이라는 설명도 나오는데, 여기엔 한문을 우러르는 사대주의가 녹아있다. (생략) 사자성어는 글자 네 개로 하나의 단어를 이룬다는 뜻이므로 반드시 한문일 필요는 없다. 아시타비 대신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의 영어 문장 ‘I am Right, You are Wrong’의 이니셜을 따서 ‘IRYW’라고 해도 훌륭한 사자성어가 될 수 있다.”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상연이 쓴 겁니다. 이 주장에 동조하면서 나는 ‘내옳네틀’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밀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지만 독창성이 없군요. 포기!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