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뽑았다는군. 아시타비는 ‘나(我)는 옳고(是) 다른 사람(他)은 그르다(非)’라는 뜻이야. 이 말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을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이번에 태어난 신조어라네. 동양의 고전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사자성어라는 뜻이야.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게 이번이 처음이라나.

<교수신문>이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906명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중 588명(32.4%·복수응답)이 ‘아시타비’를 선택했다는군. 두 번째로 많은 396명(21.9%)은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선택했고.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권력을 갖고 있거나 많이 배운 사람들은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서로 남 탓만 하면서 상스럽게 싸움질만 했던 한 해였다니…

같은 행동이라도 남이 할 때는 잘못 되었다고 비난하던 사람이 자기나 자기편이 할 때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비꼬거나 비난할 때 사용하는 말이 ‘내로남불’이야. 예전에는 없던 말이지. 남에게는 관대해도 자신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근신했던 게 우리 조상들의 삶의 자세였으니 그런 말이 없을 수밖에. 그러니 ‘아시타비’나 ‘후안무치’ 같은 말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힌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지. 그래서 ‘아시타비’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한 교수는 “소위 먹물깨나 먹고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의 어휘 속에서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 상대를 위한 건설적 지혜와 따뜻한 충고, 그리고 상생의 소망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아시타비가 올해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에 서글픈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더군. 동감일세.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예전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대로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야 하네. 왜냐고? 우리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야.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어. 그러니 공동선을 위해서는 그런 욕망을 제어하거나 자제시키는 장치들이 필요하네. 게다가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하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정보와 사고능력의 부족으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어. 또 이기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행동도 할 수 있고. 그러니 비판과 관용이 동시에 필요한 거야. 그래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는 다원주의 사회로 발전할 수도 있는 거고.

올해도 두 거대 정당이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던 한 해였네. 해방 이후 한국 정치를 크게 왜곡시키고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두 거대보수정당이 ‘내로남불’이라는 말로 서로 비난하면서 이득을 챙긴 한 해였어. 우리나라가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진 나라인 것은 사실이야. 남북분단 등의 영향으로 수구와 보수 세력만 살아남을 수 있었지. 그래서 그런 수구-보수 과두지배체제를 벗어나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자는 취지로 시작했던 게 선거제 개혁이었네. 하지만 두 거대정당의 방해로 어렵게 만든 ‘연동’도 아닌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우리 정치 지형을 더 기형적으로 만들어버렸네. 뒤돌아보면 씁쓸하네.

처음부터 선거제개혁에 관심이 없었던 수구 거대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자 “민주주의도, 정당정치도, 국민의 눈초리도, 체면도, 염치도 모두 다 버렸다”고 비난했던 다른 정당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위성정당을 만들었지. ‘내로남불’의 전형이었어. 그러면서 서로 상대 당이 제1당이 되면 대한민국이 생지옥이 될 수 있으니 그들을 심판해달라고 순진한 국민들을 겁박했었지. 그 결과 소수정당들의 국회의원 수는 선거법개정 이전보다 더 줄어들었고 다시 양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되어버렸네. 그 후에 전개된 검찰개혁을 둘러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이전투구도 ‘내로남불’의 전형이었어. 그러니 연말에 생전 들어보지 못한 ‘아시타비’같은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등극할 수밖에. 이건 분명 대한민국의 수치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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