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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의 늦은 수다] 태어난 아이들도 못 키우면서
[정숭호의 늦은 수다] 태어난 아이들도 못 키우면서
  • 정숭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0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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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세계 최저인 출산율 때문에 2750년쯤 최후의 한국인이 사망해 대한민국의 대가 끊기게 된다더니, 그보다 훨씬 전에 대한민국이 소멸될 것 같군요. ‘2750년 한국 소멸설’은 2014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당시 합계 출산율(가임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기 수) 1.19명을 적용해 예측한 것인데, 지난해 1분기 합계 출산율은 0.90, 2분기와 3분기는 0.84명이었으니 소멸이 더 일찍 올 거라는 예측이 전혀 엉터리는 아니지요. 실제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보다 숨진 사람이 더 많았다는데, 이 역시 올해부터 인구가 줄어들 거라는 당국의 예측보다 1년 앞선 거랍니다.

출산율이 자꾸 낮아지는 것을 놓고 여러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지만 나는 태어날 예정인 아이들이 삼신할머니 앞에서 “죽어도 대한민국에서는 태어나지 않겠다”고 결의했거나 황새들에게 “우리를 죽어도 대한민국에는 데려다 놓지 말라”고 사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삼신할머니 스스로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으려 이를 꽉 물었거나, 황새들이 아기들을 집집마다 날라줄 아기 바구니를 다른 곳에 치워놓고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해봅니다.

쉼 없이 벌어지고 있는 아동살해, 아동학대가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지금 당장은 양부모에게서 학대 받아 태어난 지 열다섯 달 만에 애처롭게 세상을 떠난 정인이가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하면서 양부모에게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이런 일은 정인이가 숨지기 전에도 숱하게 벌어졌습니다. 제가 전에 썼던 글에서 몇 가지 꼽아보겠습니다. 2016년에 쓴 글입니다.

“바로 엊그제엔 입양한 지 3년 된 여섯 살짜리 딸을 살해한 후 시신을 불태워 암매장한 사람들이 인천에서 붙잡혔지요. 8월 말 대구에서는 세 살 된 입양 딸을 막대기로 때리고 방치해 뇌사상태에 빠뜨린 양부모가 입건됐고요. 원영이 사건은 계모의 상습학대로 사망한 일곱 살 아이가 야산에 암매장된 사건이고, 2014년 10월에는 양모가 25개월 난 입양 딸을 쇠파이프로 때려 사망시켰지요.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고(故) 정인 양의 묘지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고 정인 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 뉴시스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고(故) 정인 양의 묘지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고 정인 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 뉴시스

친부모도 제 아이를 죽여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억지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달 대전에서는 채무에 시달린 40대 부부가 두 아이를, 충북 음성에서는 30대 주부가 6개월 된 자기 아이를 죽이고 자살했어요. 그 무렵 대구 인근 하천에서는 올해 열 살 남자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됐지요. 그 아이 엄마도 며칠 전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정황상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물에 뛰어든 게 거의 확실하다고 하지요.

부모 때문에만 아이들이 죽지 않아요. 아이들은 잘 돌봐달라고 맡겨놓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밥 잘못 먹어 죽고, 자다가 베개나 이불에 눌려 숨이 막혀 죽으며, 모자란 선생에게 폭행당해 죽고, 통학버스에 치여 죽고 있습니다. 더운 날 찜통 같은 버스 안에 남겨졌던 아이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아이들은 동네에서 놀다가 정신 나간 사람들에 의해 죽고 정신 나간 사람이 풀어놓은 흉견에 물려 죽기도 해요.

살해는 면했지만 굶주리고 성폭행 당하고 방치되고, 매 맞고, 내던져지고, 바늘이나 주사기에 찔리고, 왜 맞는지 왜 당하는지도 모르면서 당하는…, 그래서 마음과 몸이 상할 대로 상하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이들은 또 몇 명이겠어요.”

아동학대 사례에 빠진 게 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 뺑뺑이 돌리고, 수학해라, 영어해라, 피아노 치고 그림 그려라, 태권도도 하고 검술도 배워라, 논술도 중요하고 선행학습도 중요하다며 밤늦도록 잠 안 재우고 주말에도 못 쉬게 하는 것도 포함시키면 아동학대 통계는 기하급수로 늘어납니다.

공부지옥, 수험지옥은 중·고등학생이 되면 더 심해지고 대학생이 되면 취업 걱정, 졸업하면 결혼 걱정, 내 집 마련 걱정에 차례차례로 내던져지지요. 태어나서 잠깐 동안만 자유로울까, 우리 아이들은 다 자랄 때까지 학대에서 놓여나지 못합니다.

이런 세상에 아이들이 굳이 왜 태어나려 하겠으며, 젊은이들이 똑같은 학대를 겪을 게 뻔한 세상에 2세들을 왜 남기려 하겠어요. 그러니 출산율이 떨어지고, 동네와 마을에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뛰어노는 소리-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그 소리가 사라진 거 아니겠어요.

동물학자인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은 한국의 출산율 저하 이유로 주변 환경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번식은 기본인데 동물들은 주변 환경, 상황이 나빠지면 새끼를 낳지 않거나 덜 낳는다. 이를테면 먹을 게 부족하면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본능적으로 번식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 역시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사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이다. 식물도 한 해는 열매를 맺지 않는 ‘해걸이’이라는 것을 하는데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적응이 저출산”이라고 강조했다.

파업 중인 삼신할머니와 황새들은 이렇게 외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아, 태어난 아이들이나 잘 키워라. 그리고 출산율 걱정을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