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한국 국적의 유조선 'MT-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사진은 이란 타스님통신이 보도하고 AP통신이 배포한 것으로 'MT-한국케미호' 주변을 선박 여러 대가 쫓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AP-뉴시스
4일(현지시간) 한국 국적의 유조선 'MT-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사진은 이란 타스님통신이 보도하고 AP통신이 배포한 것으로 'MT-한국케미호' 주변을 선박 여러 대가 쫓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AP-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유조선 나포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은 연초부터 외교 난관에 부딪혔다. 미국과 이란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외교당국은 예상치 못한 외교 문제에 대응하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 4일 걸프 해역에서 한국 유조선인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 한국케미호에는 한국 선원 5명을 포함해 20명이 승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 발생 직후 문 대통령은 서훈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상황을 보고 받고 안보실을 중심으로 유관 부처와 대응책을 긴밀히 협의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지난 5일에는 국가위기센터에서 서 실장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 및 국가정보원까지 참석한 상황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를 열어 상시적 대응체계를 가동키로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는 우리 선박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무 부처인 외교부도 신속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지난 5일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를 전한 데 이어 실무단을 6일 오후 이란 현지에 급파하기로 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오는 10일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다. 

◇ 이란의 선박 나포 ‘미국-이란’ 갈등 여파?

이란 측이 우리 선박을 나포한 표면적인 이유는 환경오염 문제였다. 그러나 한국 내 은행에 동결된 이란 원유 수출 대금 70억달러(약 7조5,700억원)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해당 자금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란과의 핵합의를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 국내 은행에 동결된 상황이다. 현재 이란은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한국 측은 이란과 코로나 백신 확보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백신을 확보하고 이 대금을 한국 내 동결 자금으로 납부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해당 방안은 인도적 금융거래라 제재 사안이 아니므로 미국도 동의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란은 이 자금이 달러화로 환전돼 송금되는 과정에서 미국이 동결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미국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 ‘담보’ 삼아 한국 선박을 나포했을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에 이란이 동결자산 문제 뿐 아니라 미 행정부 교체기에 이란 핵 관련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탐색전으로 미국의 우방인 한국에 행동을 취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이 상황이 이란과 우리 정부가 협상을 해서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를 고려하면 이란과 한국의 협상만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려워 사태가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이란 정부 측은 나포는 ‘환경적인 문제’이므로 최종건 차관이 방문해도 선박 억류 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미국과 이란 대립에 끼인 상황인 셈이다.

아울러 한 달 전부터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사망 1주기를 전후해 선박 나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 측이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초 동결자금에 대한 보복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박 나포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중동 주재 공관에 전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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