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호영 기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석달 앞둔 7일 ‘조건부 출마’를 선언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야권 단일화의 일환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하거나 합당을 결심하면 불출마하고, 그렇지 않다면 출마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당 대표의 타 당 입당은 사실상 합당으로 연결되는 만큼, 오 전 시장은 자신의 출마를 매개로 안 대표의 국민의힘 합류를 압박한 셈이다.
오 전 시장의 제안에 안 대표 등 야권 후보군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오면서 선거판에 잔잔한 파장이 일어나는 모양새다.
◇ 안철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 희박
오 전 시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화가 승리로 이어지고 그 동력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길 대다수 국민이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우리 당과 안철수 후보께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 전 시장은 안 대표를 향해 “국민의힘으로 들어와 달라”며 “합당을 결단하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면 저는 출마하지 않고 야권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입당이나 합당 후 경쟁하는 방안이 야권단일화 실패 가능성을 원천 봉쇄함과 동시에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야권 단일화 외 다른 의도가 없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오 전 시장은 “이번 제안에 저 오세훈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없다”며 “저는 대의 앞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했다.
오 전 시장이 거론한 안 대표의 답변 기한은 17일까지다. 이는 국민의힘 경선 일정에 따른 판단이다. 앞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18일부터 21일까지 후보 서류를 접수 받기로 결정했다. 심사는 22일부터 27일까지, 예비경선 진출자 발표는 28일이다.
오 전 시장은 기자회견 이후 별도 브리핑에서 “17일까지는 안 후보의 결단을 기다리겠다”며 “간곡히 요청드렸으니 입당, 합당해서 경선하길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 전 시장 제안의 실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평가다. 안 대표는 정치 입문 후 위기 때마다 창당(4회)과 탈당(2회)을 거듭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창당한 국민의당을 포기하는 것은 정계은퇴를 고려한 승부수를 던질 때 외에는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국민의힘에 입당해도 경선을 통과하리란 보장도 없다.
3석 국민의당은 102석 국민의힘에 비해 원내 존재감은 낮지만, 야권 단일화가 화두로 떠오른 이번 선거에서는 다르다. 국민의힘 후보보다는 국민의당에서 안 대표의 폭넓은 인지도와 중도 확장력을 활용해 여론의 주목을 받는 편이 낫다는 시각도 있다. 더구나 안 대표는 최근 차기 서울시장 선호도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이날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현 국면에서는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다. 기자회견을 보고 난데없는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 전 시장이 과거 (시장을) 중도사퇴한 책임을 희석하고 출마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이어 “(안 대표 입당을) 출마 명분으로 삼은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안 대표는 오 전 시장의 제안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오 전 시장 제안 관련 질문에 “후보 단일화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며 “서울시민, 모든 야권 지지자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오 전 시장 의견은 후보 단일화를 반드시 이뤄 선거를 승리하고 정권교체 초석을 만들겠다는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입당을 에둘러 거절한 것으로 해석된다.
◇ 오세훈 제안에 상반된 시각
국민의힘 내에서도 서울시장 후보군을 중심으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오 전 시장이 출마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능성이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비판과 ‘야권 단일화’라는 대전제와 안 대표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적절한 제안이라는 평가가 공존했다.
김선동 전 국민의힘 사무총장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조건부 출마 선언은 당당하지 않다. 오늘 회견은 확실한 출마선언으로 들린다”며 “안철수 후보가 17일까지 입당할 가능성은 없을 이야기다. 대선을 꿈 꾸던 분이 서울시장에 연연하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오신환 전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오 전 시장의 제안은 그동안 내가 제안한 대통합 전제 범야권 공동경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며 “단일화 가능성을 100% 충족하고 야권 전체 혁신을 통한 본선 승리 가능성을 높이려면 국민의힘과 안 대표의 통합은 당연한 전제가 돼야 한다”고 했다.
‘무응답’도 있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오 전 시장 회견 관련)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유력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나 전 의원은 지난 3일 오 전 시장과 만나 보궐선거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