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車 전체 판매는 늘었는데, ‘작은 차’는 되레 줄어
선택 폭 제한·단가 상승… 경차, 결국 연 10만대 미만 추락
소형차 수요, ‘비슷한 값·넓은 공간’ 준중형으로 이동

한때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던 모닝, 스파크 등 경차가 최근 입지를 크게 잃고 있다.
한때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던 모닝, 스파크 등 경차를 비롯한 소형차가 최근 입지를 크게 잃고 있다. / 시사위크 DB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2020년 국내 자동차업계 실적이 종합 집계됐다.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정상적인 생산·영업이 불가해 대부분 전년 대비 판매량이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 시장은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 중 유일하게 내수 판매량이 늘어났다. 국내 전체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긴 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준중형 이상의 차량이며, 경형과 소형 자동차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전년 대비 대폭 줄어들었다.

경차와 소형차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승용 자동차 시장 전체 판매대수는 165만7,186대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154만880대) 대비 7.5% 늘어났다.

판매 상승세는 준대형급(E세그먼트)과 준중형급(C세그먼트) 차종이 이끌었다. 2020년 준대형 차종 판매는 전년(20만5,088대)보다 50.6%나 오른 30만8,795대가 판매됐으며, 준중형 차종은 36만673대가 판매되면서 전년(30만8,645대) 대비 16.9% 상승했다. 중형과 대형 차종 판매 등락은 보합세를 보였다. 중형 차종은 전년 대비 673대가 줄어들었을 뿐이고, 대형 차종은 1,902대 늘어났다.

그러나 경차와 소형차는 모두 10% 이상 판매량이 폭락했다. 지난해 소형차는 17만3,418대가 판매돼 전년(19만7,601대) 대비 판매대수가 12.2% 감소했으며, 경차는 9만8,743대로 전년(11만5,218대) 대비 14.3%나 급락했다. 특히 경차는 8년 만에 연간 판매대수가 10만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만큼 경차를 찾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작은 사이즈의 차량 수요가 줄어드는 이유로는 제한적인 차종과 애매한 가격 때문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경차는 △기아자동차 모닝·레이 △쉐보레 스파크 △르노 트위지 △스마트 포투 정도가 전부다. 이 외 최근에는 중소기업에서 초소형 전기차를 속속 출시해 판매하고 있으나 성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사실상 국내 경차는 모닝과 레이, 스파크 3파전이다. 실제로 2020년 국내 경차 판매 대수 9만8,743대 중 모닝이 3만9,376대로 전체의 39.87%를 차지했고, 이어 스파크가 2만9,015대(29.38%), 레이가 2만8,449대(28.81%) 등 3종의 합이 국내 경차 판매의 98% 이상에 달한다.

차종도 제한적인데 신차 출시는 감감무소식이다. 또 일반적으로 차량의 풀체인지 기간은 5년 이내인데 반해, 경차들의 풀체인지 기간은 이보다 길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가 쉽지 않다.

또 가격도 점점 상향평준화 되고 있는 추세라 일정 수준의 옵션이 갖춰진 경차의 출고가는 약 1,500만∼1,700만원 정도의 수준에 달한다. 이 정도 값이라면 △전방 충돌방지 보조 △차로 이탈방지 보조 △LED 주간주행등 △사이드미러 열선 △인조가죽 시트 및 앞좌석 열선 △블루투스 등 기능이 포함된 소형차를 구매할 수 있는 정도다. 굳이 경차를 구매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워지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 코나가 페이스리프트로 돌아온다. /현대차
현대자동차 코나가 페이스리프트로 돌아왔다. /현대차

이어 소형차는 대부분이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이며, 세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소형 세단으로 생산하던 현대자동차의 엑센트나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는 이미 단종됐다. 쉐보레도 아베오를 2018년까지만 국내에 판매하고 이후엔 판매를 중단했다. 그러다보니 소형차는 자연스럽게 SUV만 남게 됐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 세단을 원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준중형 시장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국민 세단인 현대자동차 아반떼가 준중형으로 꼽히는데, 준대형 세단 그랜저에 이어 국내 판매 2위를 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형 SUV는 소형 세단 대비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다. 현대차 엑센트나 기아차 프라이드, 쉐보레 아베오 등은 최상위 트림에 옵션을 이것저것 추가하더라도 2,000만원이 겨우 넘거나 그 이하로 차량을 출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형 SUV는 최저 출고가격이 1,700만~1,800만원대에 형성돼 있지만 일부 옵션을 추가하면 2,000만원 이상까지 값이 뛰어 오른다. 최근 출시된 일부 모델의 경우 중간 트림을 선택하고, 적당히 옵션을 추가하면 차량 값은 2,500만원 이상에 달한다. 이 때문에 값이 다소 어중간하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뿐만 아니라 이 정도 값이면 준중형 세단·SUV의 하위트림을 구매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르노삼성자동차의 XM3가 모처럼 월 2,000대 판매실적을 회복했다. /르노삼성
소형SUV의 강자로 떠오른 르노삼성자동차의 XM3. /르노삼성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유튜브 채널 ‘김필수의 자동차 연구소’에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홀대 받는 경차’라는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 했다.

김필수 교수는 영상을 통해 “국산 경차는 유럽과 달리 너무 많은 고급 옵션이 추가돼 차량 무게를 증가시키고 연비를 떨어뜨린다”며 “유럽은 경차에 불필요한 옵션을 모두 제외하고 기본사양으로 라디오 정도만 탑재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며, 종류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경차는 종류도 적어서 단 3종 밖에 없는데, 자동차 제작사 측에서는 신형 경차 개발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신차도 내지 않고 풀체인지 기간도 일반 차량들에 비해 긴데 이러한 상황에서 경차 활성화가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취등록세 문제도 짚었다. 그는 “지난 2019년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으로 인해 이전까지 경차 취등록세 면제가 차량 가격의 4% 정도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경차 활성화에 대해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경차와 소형차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것을 체감할 정도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동차 대리점 관계자는 “최근 신차를 구매하기 위해 상담 받으러 방문하는 고객의 70~80%는 대부분이 준중형이나 중형 차량을 고민한다”며 “소형 SUV를 보고 방문한 고객들도 일부 옵션을 추가하고 견적을 산출한 후에 바로 윗 등급의 준중형 SUV나 준중형 세단도 함께 견적을 부탁한 후 준중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현상은 국내 소비자들이 작은 차보다 실내 공간이 조금이라도 더 넉넉한 큰 차를 원하는 점과 가격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맞아 떨어져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며 “경차나 소형차의 판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가격 간섭이 일어나지 않게 단가를 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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