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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사망보다 해고가 더 무서운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
2021. 01. 20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영화사 진진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가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영화사 진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현대 사회에서 내가 하는 일은 곧 나 자신으로 정의된다. 노동으로부터 해고되는 것은 개인, 더 나아가 한 가정의 생존과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이다. 사망보다 해고가 더 무서운 이 시대에 우리가 몰랐던, 몰라도 되는 줄 알았던 모두의 이야기가 관객을 찾아온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권고사직을 거부하던 중 하청 업체로 파견을 가면 1년 후 원청으로 복귀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정은(유다인 분)이 1년의 시간을 버텨내고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사무직 중년 여성이 지방 현장직으로 부당 파견이 됐는데, 그곳에서 굉장한 치욕을 겪었음에도 결국 버텨냈다’는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정은은 7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고 이를 거부하자 하청 업체로 파견 명령을 받는다. 반드시 1년을 채워 원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하청 업체 사람들은 그를 불편해하고 현장 일은 낯설기만 하다. 정은은 유일하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막내(오정세 분)의 도움으로 점점 적응해가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오늘을 견뎌낸다.

영화는 현실은 냉정하게, 사람은 따뜻하게 담아내 묵직한 질문과 동시에 희망적 메시지를 전한다. 고용의 불안정, 위험의 외주화가 더욱 만연해지는 현실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생각해 볼 법한 질문을 던지고, 그럼에도 스스로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을 보여주며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노동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영화사 진진
노동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정은이 권고사직을 받게 된 상황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우수사원이었다는 점과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사팀 직원의 말을 통해 부당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누구보다 회사에 헌신했지만, 이유도 모른 채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정은의 모습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상황과 심정을 대변한다.

절망에 빠진 그 순간에도 정은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청 업체의 업무는 송전탑 수리 보수인데, 정은은 냉정하고 차가운 철물, 바라만 봐도 아찔한 송전탑의 높이에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그런 그에게 막내는 ‘해고보다 사망이 무서운가 보다’라고 말한다. 이에 정은은 ‘뭐가 다르냐’고 답한다. 결국 정은은 심리적 하강과 공포를 극복하고, 자발적으로 탑을 오른다.

보호받지 못해 사망‘당한’ 동료들을 위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회에서 밀려난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해고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정은의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함과 동시에 깊은 여운을 안긴다. 그 어떤 절망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응원과 에너지를 준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열연한 오정세(왼쪽)와 유다인(왼쪽에서 두번째). /영화사 진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열연한 오정세(오른쪽 위)와 유다인(오른쪽 아래) 스틸컷. /영화사 진진

배우들은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깊이를 더한다. 유다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 대한 긍정을 잃지 않는 정은을 맡아 내면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해고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분노와 좌절, 포기하지 않는 모습까지 단단한 얼굴로 극을 이끈다. 막내로 분한 오정세는 소시민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바쁘고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타인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미는 따뜻함을 지닌 막내를 특유의 인간미와 생생한 연기로 완성, 극의 온도를 높인다.

연출자 이태겸 감독은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그 사랑을 볼트와 너트 삼아서 세상이라는 철탑을 오를 에너지를 줄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문처럼 읊조리면 힘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러닝타임 111분, 오는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