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1월 6일 미국 연방 의사당에 난입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고 있네. 많은 난입자들 중 매우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유명해진 사람이 제이콥 챈슬리(Jacob Chansley)야. 온 얼굴에 붉은색, 흰색, 푸른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고, 뿔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성조기가 달린 긴 창을 들고 있는 챈슬리는 애리조나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열렬한 큐어넌(QAnon) 추종자일세.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큐어넌 무당(QAnon shaman)으로 통한다네. 큐어넌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이 분명해졌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진실을 알게 됐다고 하는군.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지.

큐어넌(QAnon)은 Q와 익명을 뜻하는 Anonymous의 합성어야. 2017년 10월 Q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극우 성향 온라인 게시판인‘포챈(4chan)’에 미국을 배후에서 조정하고 지배하는 딥스테이트(deep state, 깊은 곳에 숨겨진 정부)가 존재하며, 이들은 소아성애자, 사탄숭배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지.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민주당 고위 인사와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등 유명 기업인 등이 딥스테이트의 주요 구성원이라네. 큐어넌은 피자 게이트(pizza gate)도 자주 언급하는데, 힐러리를 포함한 사회 유력인사들이 워싱턴DC의 한 피자가게 지하실에서 아동성착취, 살인, 악마숭배 등을 즐기고 있다는 거야.

큐어넌은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리트윗하거나 언급함으로써 유명해졌지. 그는 공공연히 큐어넌을 애국자라고 칭송하네. 큐어넌이 자기를 딥스테이트로부터 미국을 구해낼 구세주로 숭배하고 있으니 좋아할 수밖에. 지금도 큐어넌 중 일부는 트럼프가 바이든 대통령을 뒤에서 조정하는 ‘그림자 대통령’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으며, 앞으로 4년 동안 벌어질 모든 일은 실제로는 트럼프가 하는 것이고,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조차 ‘Q’의 계획에 있던 일이라고 주장한다네. 이 정도면 중병인 거지. 트럼프가 지난 달 20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셀프 퇴임식’을 할 때, 성조기 17개가 휘날렸고, ‘Q’가 알파벳 17번째 글자라는 점을 들어 트럼프를 통해 ‘Q’의 예언이 결국 실현될 거라고 믿는 더 황당한 주장도 하지.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게 음모론의 시작이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해.

문제는 이런 황당한 주장을 큐어넌만 믿는 게 아니라는 걸세. 많은 미국인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정도의 차이만 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네. 2020년 12월 하순 미국 공영 NPR 방송과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성인 11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39%가 딥스테이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으며, 17%가 아동 성매매를 하는 사탄 숭배 엘리트들이 미국 정치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의 한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는 40%가 ‘그렇다’고 응답했고,‘아니다’는 32%에 그쳤어.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없다는 주장에는 ‘그렇다’는 응답은 12%뿐이고, 51%가 ‘아니다’고 응답했어.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게 음모론의 일부일거든. 이런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은 음모론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일세. 4년 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이유도 이제 더 확실하게 알 것 같고.

지난 달 20일에 있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문에 전면 봉쇄된 미국의 수도 워싱턴디시를 보면서 놀란 사람들이 많을 걸세. 2만 명이 넘는 주방위군, 백악관과 의사당 인근의 폐쇄된 지하철역, 연방 건물들 주위로 높게 세워진 펜스… 분명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흉한 풍경이었어. 하지만 25년 전에 있었던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 사건과 백인우월주의자이며 신나치당원이었던 윌리엄 루터 피어스(William L. Pierce, 1934-2002)가 Andrew MacDonald라는 가명으로 1978년에 출간한 소설 『터너일기 The Turner Diaries』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조치가 아니었네. 이 소설에서 국회의사당은 박격포 공격을 받고, FBI 중앙본부가 화학비료로 만든 폭탄으로 날아가거든.

1995년 4월 19일 퇴역군인 출신의 백인 극우 무장 단체 회원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를 공격하여 168명이 숨지고 680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네. 체포된 맥베이가 가지고 있던 책이 『터너일기 The Turner Diaries』이고. ‘네오나치의 바이블’이라고 부르는 이 소설은 신나치 집단 ‘조직(Organization)’의 전투원이며 백인 우월주의자인 얼 터너(Earl Turner)가 1991년 9월 16일부터 약 2년 동안 자신의 일상과 활동을 기록한 일기야. 백인애국주의자들의 집합체인 ‘조직’이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체제(System)’, 즉 미국 연방정부를 전복하고, 완전히 백인들로만 구성된 나라를 만드는 잔인한 과정을 다루고 있지. 인종적으로 순수한‘화이트 아메리카’를 만들기 위해 핵전쟁까지 불사하는 끔찍한 내용이어서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나라들이 현재 이 소설 출판을 금지하고 있네.

미국이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불안한 나라야.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극성을 부리는 나라가 정상일 수는 없지. 음모론의 유행은 한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징후야. 음모론은 불안한 사회에서 혼란을 틈타 퍼져나가거든. 우리나라에서도 BTJ열방센터를 운영하는 개신교 선교단체 인터콥의 대표 선교사가 음모론을 제기했다고 하는군. 코로나19는 단일정부로 전 세계를 통제하려는 특정세력이 퍼트린 전염병이며, 우리 정부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는 거야. 『터너일기』와 큐어넌은 미국만의 비극이 아닐세. ‘백신을 맞으면 노예가 된다.’는 음모론이 코로나19 펜데믹 극복에 암초가 될까 벌써 걱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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