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향기가 영화 ‘아이’(감독 김현탁)로 관객 앞에 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김향기가 영화 ‘아이’(감독 김현탁)로 관객 앞에 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아이, 남들보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하루하루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좀처럼 웃을 일이 없는 아이. 하지만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아이, 소중한 이를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내고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아이. 영화 ‘아이’(감독 김현탁)에서 배우 김향기가 그려낸 아이이자 어른, 아영의 모습이다.

김향기가 영화 ‘아이’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아이’는 일찍 어른이 돼버린 아이 아영(김향기 분)이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 영채(류현경 분)의 베이비시터가 되면서 시작되는 따스한 위로와 치유를 그린 작품으로, 단편 ‘동구 밖’(2017)으로 제35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김현탁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아이’는 상처가 가득한 세상에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 두 인물의 성장기를 뭉클하게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미성숙하지만 어른으로서 세상을 살아내야만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 공감대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홀로 삶을 견뎌내던 아영과 영채가 서로를 만나 힘겨운 삶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는 평이다.

호평의 중심엔 김향기가 있다. 극 중 보호종료아동으로 아동학과 졸업을 앞둔 대학생 아영 역을 맡아 작품이 지닌 메시지를 묵직하게 담아냈다. 별다른 대사 없이도, 오롯이 눈빛 하나만으로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한층 성숙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또 한걸음 성장한 김향기다. 

또 ‘아이’는 그동안 수많은 휴먼드라마에서 반복돼 온 ‘신파’나 관객의 눈물을 짜내기 위한 과한 설정 없이도 감동 그 이상의 여운으로 마음을 흔드는데, 이 역시 김향기 덕이다. 그는 김현탁 감독과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며, 지금의 아영을 완성해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온도를 찾아내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김현탁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나보다 아영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감탄했을 정도로, 김향기는 아영 그리고 작품 안에 온전히 빠져들었다.

‘아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김향기.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김향기.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김향기는 본인과 닮아있는 아영에게 끌려 작품을 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물에 대한 물음표가 없었기 때문에, 작품 전체의 흐름을 조금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기존 휴먼드라마 장르와 다른 흥미롭고 신선한 매력이 있었다. 비슷한 장르의 작품을 다수 소화한 배우 입장에서도 새로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지점이 있다면.  
“가장 새로웠던 건 영화에 등장한 인물이 변호사님 빼고 작은 역할까지 거의 다 여성이라는 점이다.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교수님이나 그 밖의 인물들이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분이 캐스팅됐냐고 물어봤는데, 감독님이 ‘이 캐릭터도 여자이고, 저 캐릭터도 여자’라고 하더라. ‘내가 왜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띵’하더라.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었구나 느꼈고, 새로웠다. 물론 그 캐릭터를 여성이 맡아서 더 좋다거나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감독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딱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소하지만 새롭게 다가왔다.”

-비슷한 지점에서, 간담회에서 여성을 대변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작품을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까.
“솔직히 말하면, 여성에 대한 서사가 많아서 선택한 작품은 아니다. 그냥 아영이라는 캐릭터가 나와 많이 닮아있어 흥미로웠고, 표현되는 방식과 느낌이 좋아서 함께하고 싶었다. 보호종료아동은 남자가 될 수 있고 여자가 될 수 있다. 여성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인물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영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서 엄마로서 딸로서 여성이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증이 있었다.

우리 영화가 그런 고충들과 감정을 현실적이지만 따뜻하게 전달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성으로서 감사한 것은 상황도 상황이지만, 편협한 시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그들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거다. 그리고 그 부분을 내가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여성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생긴 건 정말 감사한 일이고,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늘어나고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생긴 것 같아서 감사하다. 하지만 인간은 성별로만 단정 짓기엔 너무 복잡한 것 같다. 성별을 떠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에서 보호종료를 앞둔 대학생 아영을 연기한 김향기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에서 보호종료를 앞둔 대학생 아영을 연기한 김향기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영이 본인과 어떤 면이 닮았다고 생각했나.
“말로 정의하긴 힘들다. 상황마다 외부적인 영향들에 의해 선택하는 게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긴 어렵다. 다만 본인만의 가치관 속에서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라든지 자기 자신의 욕구를 파악해나가는 과정에서 공감을 많이 했다. 외부의 상황들을 제외하고 사람 자체로 봤을 때 닮은 부분이 많았다.”

-닮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 인물에 접근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이 됐나.
“캐릭터뿐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이해하는 게 쉬웠다. 아영이가 하는 선택들에 있어서 ‘왜?’라는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빠르게 대본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촬영 들어가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면서 수정할 부분을 수정했는데, 그때마다 사소하지만 아영의 입장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무래도 아영과 닮은 부분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 같다.”

-어떤 아이디어가 어떻게 반영됐는지.
“큰 감정이나 큰 선택에 있어서는 시나리오에서 표현된 것만으로도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냥 아영이 영채를 만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들이나 사소한 감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말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들에 대해 의견을 냈다. 예를 들자면, 마지막 장면에서 아영이 영채에게 다가가 돕겠다고 말할 때, 시나리오에서는 ‘뒤에서 안아준다’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영채의 등을 보는데 안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다. 안아주고 싶은데, 안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아영이 영채에게 ‘언니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라는 대사를 하는데, 내가 아영이라면 영채에게 그 말을 꼭 하고 싶을 것 같은 거다. 아영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감독님, (류)현경 언니와 상의한 뒤 추가하게 됐다.”

점점 더 깊어지는 배우 김향기. /롯데엔터테인먼트
점점 더 깊어지는 배우 김향기.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영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었다. 화는 내지만, 소리를 지른다거나 크게 표현하지 않는데, 감독의 의도인지 배우의 해석인지 궁금하다.
“영화에서 아영이 감정을 해소시킨다는 느낌을 주는 장면이 없긴 하다. 그런데 그게 아영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감정을 누른다기보다, 아영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어떻게 해달라라고 한 건 아니고, 내가 연기를 하다 보니 그런 톤이 나오게 됐다. 아영은 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친구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속 안정된 선택들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강박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답답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영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직업인 유치원 선생님을 꿈꾼다는 설정도 새로웠다. 아영의 진로 선택의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했는지.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결핍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본인이 하고 싶고 관심에 대한 것 같다. 아영을 잘 표현하는 장면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혁이랑 놀아줄 때인 것 같더라. 그때 아영이 제일 행복해 보이더라. 그래서 결핍이나 다른 이유들보다 앞서 아영이 하고 싶은 걸 선택한 거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해 따로 조사하거나 준비한 부분이 있다면.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설정에 맞춰 아영을 표현해야 하는 걸까, 아영이 갖고 있는 특성 중 하나로 생각해야 할까 어느 게 먼저일까 고민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결론적으로 후자가 맞다 생각이 들었다. 아영을 이루고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표현을 하되, 본인의 노력만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공허함이 남아있다고 생각을 갖고 연기했다.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긴 했다. 쉽게 말하면, 도움에서 벗어나 이제 혼자 살라는 의미인데, 어려움이 있지만 누구든 홀로 서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그 현실을 조금 더 일찍 마주하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일찍 어른이 돼야 하는 친구들. 어떻게 보면 안쓰럽고 아프지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나 자신의 관점에서 행복을 찾고 슬픔을 맞이하는 한 사람으로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김향기가 행복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김향기가 행복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영이 혁이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고 했는데, 본인은 어떨 때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끼나. 
“행복은 내가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잘 아는 게 행복인 것 같다. 나는 오랜 친구들 만나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강아지나 아기처럼 귀여운 걸 좋아한다.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좋다. 그런 것들을 행복으로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게 행복인 것 같다. 내 행복을 내가 아는 것, 그것이 정말 행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이’는 미숙한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른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 모두 미숙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패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우린 미숙하고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패해도 괜찮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보기엔 너무 좋은 부분이고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들인데, 각자의 고충이 늘 있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보면 모두 아이이자 어른이고, 어른이자 아이인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 자신과 나의 욕구를 잘 들여다보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있는 사람. 이와 동시에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가지려고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모두 자신에게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우아한 거짓말’ ‘증인’에 이어 ‘아이’까지, ‘힐링’ 3부작을 완성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로 대중과 만나고 싶은지.
“내 나이대에 보여줄 수 있는 발랄함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도 좋고, 어떤 한 인물에게 집중돼서 감정을 끝까지 표현할 수 있는 작품도 해보고 싶다. 어떤 작품을 보거나 웹툰 혹은 만화를 보면서 연기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늘 든다. 그렇게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대중들이 봤을 땐 지금까지 비슷한 결의 작품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로 연기를 하면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고, 그 사람이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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