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범야권이 거짓말 논란을 빚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선 가운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고려한 내부 ‘동상이몽’이 감지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돌연 ‘안철수 책임론’을 들고 나오면서다. 김 대법원장의 임명에 안 대표가 대표였던 구(舊) 국민의당이 기여했다는 취지다. 향후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고려한 공세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김명수 발판으로 여권 도덕성 겨냥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녹취록이 공개된 지난 4일부터 김 대법원장에게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와의 사직 면담 과정에서 ‘법관 탄핵’ 언급 여부와 관련한 진실공방을 벌였지만 거짓 해명으로 드러났다.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탄핵을 염두에 두고 사표 수리를 반려했다는 취지의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같은 날 당 산하 탄핵거래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는 한편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1인 릴레이 시위에 돌입했다. 조사단장을 맡은 김기현 의원이 지난 5일 스타트를 끊었고, 주호영 원내대표와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각각 8일과 9일 현장 시위에 나섰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8일) 시위에서 김 대법원장을 향해 “사법부 수장으로 독립을 주장하고 (권력의) 외풍을 막아야 하는데 앞장서서 사법부 독립을 흔들고 파괴하고 있다”며 “대법원장이 거짓말하고 앞장서서 정치권과 내통하는 대법원장”이라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사자가 죽으면 밖에서는 다른 짐승이 못 덤벼드는 반면, 몸 안에서 벌레가 생겨나 사자 몸 전체를 부패시킨다”며 “대법원의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사자 몸속의 벌레)이 되지 말고 조속히 물러나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이 자진 사퇴할 때까지 소속 의원 전원이 대법원 1인 시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범여권 주도로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임 부장판사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 ‘김명수 탄핵’ 카드도 거론되고 있지만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자칫 여권에 역공의 빌미를 줄 수 있는 데다 의석 수 부족으로 부결이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임 부장판사 탄핵 당시 “사법부에 겁박” “중우정치의 민낯”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탄핵소추안 부결은 김 부장판사의 면죄부로 활용될 수도 있다.

설령 김 대법원장이 사퇴하고 새 대법원장으로 교체돼도 야권에 유리할 것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장 임기는 6년이다. 국민의힘이 내년 대선에서 수권정당이 돼도 대법원장 임명이 불가하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 이슈를 통해 정부여당의 도덕적 흠결을 강조하는 여론전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2명이 차례로 대법원 시위에 나선다면 4월 보궐선거까지 이어갈 여력은 충분하다. ‘김명수 프레임’이 중도층 흡수 및 지지율 상승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한남동 한남3재정비촉진구역(한남3구역)을 방문해 노후된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한남동 한남3재정비촉진구역(한남3구역)을 방문해 노후된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 안철수, ‘책임론’에 휩싸여

국민의당도 ‘김명수 프레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김 대법원장에 사퇴 칼날을 들이밀면서 정부여당과 엮어 ‘보궐선거 심판론’을 강조하고 있다.

안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사법부 수장이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본질”이라며 “후배들에게 부끄럽고 국민에게 면목 없는 짓 그만하고 거취를 결정하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안 대표는 “정권의 전횡이 심해진다는 것은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 썩은 세력에게 국민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자”라고 했다. 이어 “거대 여당의 독주로 무력감에 빠져 있는 국민들께 정권교체의 희망과 기쁨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갑작스럽게 ‘안철수 책임론’이라는 견제구를 던지면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가결에 안 대표의 구 국민의당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김 대법원장이 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먹잇감’이 된 시점에 안 대표를 엮어 흠집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같은 주장은 안 대표와 함께 야권 서울시장 ‘빅3’으로 분류되는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오 전 시장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2017년 김명수 대법원장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단연코 안철수 후보”라고 저격했다. 나 전 의원도 같은 날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서 “국민의당이 30표 정도 몰아주면서 (김명수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며 “이런 상황을 가져오고 야권 후보로 뛰니 참 모순”이라고 했다.

국민의당은 즉각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 독립을 지키지 못한 것은 김 대법원장의 자질과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 길들이기의 결과이지, 안 대표가 김 대법원장 임명 당시 국민의당 대표였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발끈했다.

이어 “나경원·오세훈 후보의 논리라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과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시민들은 결과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번 보궐선거에서 야권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국민의힘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현재 각기 별도 경선을 치르고 있지만 3월 초 단일화 협상이 사실상 전제돼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 일부 후보들이 ‘김명수 프레임’을 잠재적 경쟁자 견제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설마 이렇게까지 엮을 줄은 몰랐다”며 “소모적인 네거티브는 야권 전체 승리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명심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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