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티앤엘 노동자 사망사고에 이어 경영권 분쟁 조짐까지 보이면서 박찬구(사진)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금호석유화학
금호티앤엘 노동자 사망사고에 이어 경영권 분쟁 조짐까지 보이면서 박찬구(사진)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금호석유화학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계열사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최근엔 조카(박철완 상무)와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서다. 가뜩이나 대내외 사정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새해 출발부터 삐걱이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박찬구 회장의 심기가 편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중대재해처벌법 허점 지목된 ‘금호티앤엘 노동자 사망사고’

올 초, 재계와 노동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지난달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안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 조치 의무를 따지고 처벌 수위를 높임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이름이 바뀌고, 처벌대상과 법 적용 범위가 축소되는 등 당초 법안 발의 취지보다 후퇴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공교롭게도 법안이 통과되고 불과 이틀 뒤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논란은 재점화됐다.

논란의 중심에 선 곳은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금호티앤엘이다. 금호석유화학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로, 유연탄의 하역과 이송·보관·반출시설을 관리 운영한다.

경찰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오후 8시쯤 금호티앤엘 협력업체 직원인 A씨(33)는 석탄운송 설비를 점검하던 중 컨베이어벨트가 갑자기 가동되면서 하반신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소방당국에 의해 밤 10시 30분께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시간여 뒤인 밤 11시 40분께 숨을 거뒀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측은 부실한 안전관리·감독이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이 금호티앤엘을 대상으로 현장 감독을 진행한 결과, 안전조치 의무를 100건 넘게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인명사고가 발생했음에도 해당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시 노동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법 공포 후 3년 동안 법적용을 유예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금호티앤엘 해당 사업장의 상시근로자는 40명대, 하청업체는 8명으로 50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된다. 연 매출액 665억(2019.12. IFRS 개별)에 달하는 회사지만, 상시근로자수가 50명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향후 3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이다.

형사처벌 대상도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원·하청)의 사업주(법인)와, 사업주에게 업무를 위임받은 책임자(공장장)만 해당된다. 설령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해당 사고의 최고경영자(대표)인 박찬구 회장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노동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살인기업보호법’이라고 날선 평가를 내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얼마나 많은 허점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해당 사업장에선 2년여 전인 2018년 8월에도 유연탄 운송설비를 점검하던 4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3m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진 바 있다. 고인 역시 금호티앤엘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같은 사업장에서 유사한 재해가 반복된 것을 두고 노동계는 “제대로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세웠다면 없었을 사고”라고 입을 모은다.

금호티앤엘 측은 홈페이지에 공지한 입장문을 통해 “깊은 애도를 표하며 협력사의 전반적인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공약(空約)에 신뢰를 보낼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번 사고로 사업장 안전을 강하게 강조해왔던 박찬구 회장은 적잖이 체면을 구기게 됐다. 박 회장은 여수·울산 사업장을 방문해 직접 안전을 점검하는가 하면, 지난해엔 ‘환경안전 원년의 해’로 정하는 등 작업 시 안전 감독에 특히 심혈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같은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박 회장의 안전경영은 사실상 공염불로 전락했다. 비록 법의 맹점으로 인해 사법적 처벌은 피했지만, 도덕적 비난과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조카인 박철완(우측 박스) 상무가 삼촌인 박찬구 회장에게 이른바 ‘독립’을 선언하면서 재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카인 박철완(우측 박스) 상무가 삼촌인 박찬구 회장에게 이른바 ‘독립’을 선언하면서 재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또 집안싸움… 이번엔 ‘조카의 난’

설상가상 최근엔 집안싸움까지 벌어졌다. 조카인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삼촌(박찬구 회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박철완 상무는 최근 공시를 통해 “기존 대표 보고자(박찬구 회장)와의 지분 공동 보유와 특수관계를 해소한다”고 밝혔다. 박 상무는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박찬구 회장의 조카로, 금호석유화학 지분 10%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조카인 박 상무가 삼촌인 박 회장에게 이른바 ‘독립’을 선언한 것으로, 재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야말로 ‘조카의 난’인 셈이다.

박철완 상무는 특히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금호석유화학 측에 “보통주는 1주당 1,500원에서 1만1.000원으로, 우선주는 1,550원에서 1만1,100원으로 배당을 약 7배가량 늘려 달라”는 주주제안을 했다. 또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진 5명의 교체도 요구했다.

박철완 상무는 외부에서 우군을 규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의 선택도 초미 관심사다. 국민연금은 과거 박찬구 회장이 배임 판결받은 것을 이유로 그간 박 회장의 연임을 반대해왔다. 국민연금이 박 상무 편에 선다면 박 회장의 경영권 유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박 상무의 제안이 다음달 이사회를 거쳐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되면 양측의 표대결이 불가피하다. 정기 주총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앞서 박찬구 회장은 지난 2010년 ‘형제의 난’을 겪으며 그룹분리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 창업주의 3남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을, 4남인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을 맡았다. 그로부터 10여년 뒤인 2021년 현재, ‘형제의 난’에 이어 ‘조카의 난’을 맞닥뜨리게 된 박찬구 회장 입장에선 과거의 악몽이 재현된 셈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역시 이같은 분위기를 이어가 1조원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을 비껴간 사망사고를 두고 노동계와 정치권 일각의 비난이 여전한데다, 경영권 분쟁까지 본격화됨에 따라 가시밭길 행보가 불가피하게 됐다. 새해 시작부터 금호석유화학에 잔뜩 먹구름이 드리운 가운데, 박찬구 회장이 험로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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