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애교, 영리함, 귀여운 외모까지 모두 갖춘 동물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잘 알려진 ‘수달’이다. 하지만 멸종위기 1등급으로 극진한 보호를 받고 있는 토종 수달을 직접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진=박설민 기자

시사위크|화천=박설민 기자  짧은 다리에 매끈한 털, 빵빵한 볼을 가진 귀여운 외모에 고양이의 장난기, 강아지의 애교를 가진 동물이 있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그런데 상상 속에서만 있을 것 같은 동물이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로 잘 알려진 ‘수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연기념물에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만큼 수달을 일반인들이 만나보기는 힘든 일이다. 이에 본지 기자는 8일 외래종이 아닌 ‘토종 수달’을 직접 만나 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에 위치한 ‘한국수달연구센터’를 찾았다. 

8일 외래종이 아닌 ‘토종 수달’을 직접 만나기 위해 방문한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에 위치한 ‘한국수달연구센터’의 모습./ 사진=박설민 기자

◇ 사람의 손처럼 앞발 자유자재 사용 

한국수달보호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국수달연구센터는 국내에서 천연기념물 330호로 지정된 토종 수달들을 연구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달을 직접 만나기 위해 한국수달연구센터 김대산 연구원의 안내를 받아 연구센터 야외에 위치한 수달 보호 우리로 가자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수달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수달들은 사진을 촬영하기 힘들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였다.

놀라운 점은 수달이 사람의 손처럼 앞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양손으로 나뭇가지를 잡은 후 장난감 삼아 놀았다. 음식을 먹을 때도 먹이를 앞발로 잡은 채, 마치 샌드위치를 먹듯 식사를 즐겼다.  

활발한 성격도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나면 피해 도망가는 부끄러운 성격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수달들은 낯선 기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와 두 손을 내밀며 ‘무언가’를 달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기자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수달은 실망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달은 수줍은 성격을 가지고 있을거라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낯선 기자에게 오히려 호기심을 느끼는 듯했으며, 마치 밥을 달라는 듯 양손을 내밀었다./ 사진=박설민 기자

이런 행동에 대해 김대산 연구원은 “수달은 호기심이 굉장히 강한 동물이라 처음 보는 존재(기자)를 보고 궁금증을 느껴 두 손을 내밀고 쳐다본 게 아닌가 싶다”며 “수달은 공격성이 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에게도 관심이 많고 잘 따르기도 하는데, 우리가 수달을 관찰하듯 수달도 기자님을 관찰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쉽게도 직접 관찰하진 못했으나 한국수달연구센터에 따르면 장난기와 호기심이 많은 수달은 잡은 먹이를 돌 위에서 늘어놓는 특이한 행동도 자주 보인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수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물의 신(水神)에게 물고기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시문(詩文)을 지을 때에 많은 참고 서적을 벌여 놓음을 뜻하는 말인 ‘달제어(獺祭魚)’는 수달의 이런 모습에서 유래됐다.

수달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동물 같았다. 나뭇가지를 갖고 놀기도 하고, 친구와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치면 따스한 햇빛 아래 잠시 몸을 녹인 후 수영을 하러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진=박설민 기자

◇ “닮은 듯 다른, 작은 발톱 수달과 토종 수달”

수달의 귀여운 모습에 넋을 잃고 관찰하던 도중, 대형 아쿠아리움에 있는 수달과 토종 수달의 모습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쿠아리움의 수달이 둥근 얼굴이라면, 연구센터의 수달들은 볼이 빵빵하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조금 길쭉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수달연구센터 측 설명에 따르면 토종 수달과 아쿠아리움의 수달은 서로 다른 종이다. 아쿠아리움에 있는 수달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작은발톱수달’이지만, 한국의 토종 수달은 ‘유라시아 수달’ 종이다.

두 종의 외모는 몹시 유사하지만, 전체적인 몸길이는 유라시아 수달이 1~1.3m정도로, 0.9m 안팎인 작은발톱수달보다 좀 더 길다. 털색도 검은 빛이 도는 회색의 작은발톱수달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암갈색에 가깝다. 다만 턱 아랫부분이 흰색인 것은 비슷한 점이다.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토종 수달은 '유라시아 수달'(좌측)이다. 반면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서 사육하는 수달은 '작은발톱수달'(우측)이다. 물론 둘 다 귀엽다는 공통점은 존재한다./ 사진=박설민 기자, Getty images

또한 우리나라의 토종 수달인 유라시아 수달이 작은발톱수달과 구분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독립성’이다. 작은발톱수달들은 보통 5~6마리 정도 대가족으로 무리 지어 살아간다. 하지만 유라시아 수달은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난폭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단독으로 생활하거나 부부와 새끼 정도의 소규모 가족을 이뤄 살아간다고 한다.

실제로 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받는 수달들의 서식지가 ‘전기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것도 독립성이 강한 유라시아 수달의 특성 때문이다.

김대산 연구원은 “전기 울타리는 외부로부터 수달을 보호하는 역할도 있지만 수달들이 다른 사육장으로 넘어가 싸울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의도가 더 크다”며 “독립성이 강한 수달이 다른 수달 사육장으로 넘어가 가족이 아닌 다른 수달을 만나면 한쪽이 죽거나 크게 다치기 직전까지 싸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유라시아 수달은 매우 강한 모성애를 지닌 동물로도 유명하다. 사진은 새끼 수달을 품고 있는 어미 유라시아 수달의 모습./ Getty images

아울러 작은발톱수달도 새끼를 잘 돌보는 동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특히 토종 수달은 옛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만큼 강한 모성애를 지닌 동물이다. 

삼국유사 혜통스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과거 스님이 되기 전 사냥꾼이었던 혜통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요리해 먹은 후 뼈만 남은 수달의 시신을 마당에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수달의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상함을 느낀 혜통은 길게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가니 수달의 집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안에는 뼈만 남은 어미 수달이 새끼들을 품고 있었다. 어미 수달의 절절한 모성애에 충격을 받은 혜통은 그 길로 사냥꾼을 그만두고 불가에 입적해 스님이 됐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귀엽고 똑똑할뿐만 아니라 모성애까지 강하다니, 누가 이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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