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재직해온 김기영 대한유화 사외이사가 오는 3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15년간 재직해온 김기영 대한유화 사외이사가 오는 3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무려 15년간 자리를 지켜온 대한유화의 ‘불사조 사외이사’가 마침내 끝을 마주할 전망이다. 여러모로 독립성에 물음표가 붙어온 사외이사를 막아선 것은 강화된 제도였다.

◇ 15년 동행한 사외이사… 독립성엔 ‘물음표’

연간 매출액 규모 2조원대의 중견 석유화학기업 대한유화는 현재 3명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이 중 김기영 사외이사는 2006년 처음 선임돼 재직기간이 15년에 달한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전형적인 ‘장수 사외이사’다. 

사외이사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당시 IMF는 기업들의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 도입을 권유했다. 최대주주 및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며 일반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사외이사의 가장 큰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사외이사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로 방치돼왔다. 무엇보다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았다. 사외이사 자리를 최대주주 및 경영진의 지인 또는 측근이 차지하거나, 심지어 전관예우에 활용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 꼬박꼬박 보수를 받으며 소위 ‘거수기’ 노릇을 하는 사외이사도 수두룩했다.

김기영 사외이사 역시 독립성에 커다란 물음표가 붙어온 인물이다. 그 이유는 비단 오랜 재직기간에 그치지 않는다. 

김기영 사외이사는 경영학계에서 명망이 높은 인물이며 광운대 총장, 연세대 부총장, 한국경영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2013년부터 현재까지 삼일문화재단(3·1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삼일문화재단은 대한유화 창업주인 고(故) 이정림·이정호 명예회장 형제가 1959년 설립한 재단이다. 고 이정호 명예회장의 4남이자 현재 대한유화를 이끌고 있는 이순규 회장도 이 재단에서 이사를 맡고 있다. 

따라서 김기영 사외이사는 대한유화 오너경영인인 이순규 회장과 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외이사에게 요구되는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 제도 강화가 가로막은 수명 연장

이 같은 적정성 논란을 뒤로 한 채 15년간 함께해 온 김기영 사외이사와 대한유화는 이제 작별이 임박했다. 김기영 사외이사의 임기만료가 오는 3월로 다가온 가운데, 더 이상의 연임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관련 규정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를 6년(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했다. 사외이사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를 원천 차단한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조치에 앞서서도 사외이사 제도는 이미 상당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유명무실하거나 부적합한 사외이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국민연금이 관련 내용을 의결권 행사 지침에 포함시키면서 ‘장수 사외이사’가 대거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김기영 사외이사를 비롯한 일부 사외이사들은 꿋꿋이 자리를 지켜왔다. 싸늘한 여론도, 국민연금의 반대도 이들을 완전히 저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제도 강화가 이뤄지면서 더 이상 머무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불사조 사외이사’가 비로소 종언을 맞게 된 것이다.

지난해 정부의 상법 시행령 개정 당시, 일각에선 기업을 옥죈다는 비판도 적잖이 제기됐다. 그러나 작별이 임박한 김기영 사외이사와 대한유화의 모습은 제도 강화가 왜 필요한지 다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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