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오른쪽) 국정원장과 박선원 기조실장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박지원(오른쪽) 국정원장과 박선원 기조실장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한 여야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4·7 보궐선거와 역대 과거 정부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정부까지 겨냥해 불법사찰 진상을 밝히겠다며 총공세에 나서자, 국민의힘은 여당이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공작을 한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거듭된 ‘전 정부 공세’에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불법 도청을 주장하며 맞불을 놓았다.

◇ 사찰문제로 맞붙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논란은 지난 16일 국회 정보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의 불법 사찰 의혹 현안 보고를 계기로 본격 시작됐다. 국정원은 이날 보고에서 국정원 불법 사찰 문건을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면 절차에 따라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같은 날 ‘국가정보기관의 사찰성 정보공개 촉구 및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결의안’을 발의하며 대야(對野) 총공세에 나섰다. 보궐선거는 물론 내년 대선까지 보수야권에 ‘사찰 프레임’을 씌우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17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단기, 중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파헤쳐서 반드시 근절해야 할 불법 문제”라며 “이 사건은 한 번에 끝날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18대 국회의원을 비롯해 지자체장, 문화계 인사에 대한 국정원 불법 사찰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며 “국민기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중대 범죄를 저지른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불법사찰 진상을 철저 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저급한 정치공세’라며 강력 반발했다. 대선 전초전인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여권이 국정원 사찰 의혹을 터트렸다는 것이다. 부산시장 여론조사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형준 예비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바 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국정원 메인 서버까지 뒤졌던 문재인 정권”이라며 “서슬퍼런 임기 초에도 안 보였던 문건이 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이 시점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우연일까”라며 의구심을 표했다. 이어 “아무리 선거가 급하다 해도 지겨운 전 정부 탓과 음습한 정치공작으로는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며 “국정원장과 민주당은 저급한 정치공세를 당장 멈추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도 이날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선거를 앞두고 (국정원 사찰 의혹이) 쟁점화되는 게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지난 16일 박지원 국정원장의 발언과 관련하여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하태경 의원.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지난 16일 박지원 국정원장의 발언과 관련하여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하태경 의원.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 국민의힘, 진보정권 도청으로 맞불

국민의힘은 김대중 정부 등 진보정권 국정원에서도 조직적 불법 도청이 이뤄졌다며 맞불 작전에 나섰다.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정부 당시 국정원 사상 가장 조직적인 불법 도청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지난 2004년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주임검사를 맡아 김대중 정부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법원은 이들에게 모두 유죄 판결을 내렸다.

박 후보는 이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국정원은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 R2 6세트, 휴대폰 감청장비 CAS 20세트를 활용해 여야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고위공직자, 시민단체 및 노조 간부 등 사회지도층 인사 약 1800명의 통화를 무차별 도청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보궐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여당을 시작으로 야당까지 전 정권 국정원 사찰 논란에 불을 지핀 데 대해 시기상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가 차분히 풀어가야 할 옛 정권의 사찰 문제가 선거용 정쟁으로 소모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국정원 사찰 문제를 지금 꺼내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면서도 “사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생각이 있었다면 선거 이후가 적절했다”고 했다. 이어 “(선거 공작이라는) 오해를 받으면 본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국민의힘도 김대중 정부 사찰을 말했으니 결국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만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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