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삼월님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오랫동안 기다렸거든요./ 모자를 벗으시지요 - / 아마도 걸어오셨나 봐요./ 그렇게 숨이 차신 걸 보니./ 그동안 삼월님, 잘 지내셨나요?/ 다른 분들은요?/ ‘자연’은 잘 두고 오셨나요?/ 아, 삼월님, 우리 2층으로 가요./ 밀린 애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시 <3월>일세. 왜 3월이 그렇게 특별한 달이냐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시작이기 때문이야. 왜 1월 1일이 아니고 3월이 한 해의 시작인 것 같을까? 아마 농사를 짓고 살았던 조상들의 기억들이 아직 우리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일 거야. 예전에는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 녹는 3월이 되어야 농사 준비도 시작할 수 있었거든.

산천초목이 함께 기지개를 켜는 3월이 가까워지니 나도 저 시인처럼 마음 설레네. 삼월님이 집 대문을 노크하면 이층으로 정중하게 모시고 올라가서 밤을 새워 나눌 이야기가 많거든. 지난 겨울 반갑지 않은 손님 코로나19 때문에 우리 모두 얼마나 답답했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올해 봄은 여느 해와는 매우 다르게 다가올 것 같네. 게다가 우리처럼 기로(耆老)의 나이에 있는 늙은이들에게는 즐길 수 있는 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으니 이 봄이 더 특별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올해 봄에는 어느 시인의 말대로 꽃향기 서 말이 들어있다는 새들의 노래 들으면서 이 나라 산천 방방곡곡을 걷고 또 걷고 싶네.

“벌써 삼월이고/ 벌써 구월이다.// 슬퍼하지 말 것.// 책 한 장이 넘어가고/ 술 한 잔이 넘어갔다.// 목 메이지 말 것.// 노래하고 노래할 것.”

정현종 시인의 <벌써 삼월이고>이네. 기로의 나이에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세월이 유수 같다고 불평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시야. 가는 세월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런다고 시간이 멈추지는 않네. 멈추어서도 안 되지. 그러면 우주가 끝나는 것이니까. 모두의 죽음이지. 나이 드는 게 싫어도 시간은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야 하네. 그래야 생명이 이어지는 거야. 이 세상에 흐르지 않고 멈춰만 있는 건 없어. 사랑도 슬픔도 생명도 역사도 다 흘러가지. 제행무상이야. 그러니 우리 이제 더 이상 무엇에든 목 메이지 말세. 그 대신 웃자고. 노래하자고. 흘러가는 것들의 리듬에 맞춰 즐겁게 춤을 추고 놀아보세.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자고. 우리에게 남은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자고.

헤르만 헤세는 <봄의 목소리>에서 말했네. “어느 소년 소녀들이나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뻗어라, 피어라, 바라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라.”

이런 단어들이 어디 나이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만 필요한 것들인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힘이 되는, 봄이 들려주는 격려의 말들이야. 백신이 나왔다지만 올해 한 해도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고통의 시간은 끝나지 않을 걸세. 이런 때일수록 기가 죽어서는 안 되네. 나이 핑계 대지 말고 하고 싶은 일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해야 하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다는 것 잊지 말고.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자신의 백 세 생일 축하연 준비가 한창인 양로원 창문을 넘어 대책 없는 모험을 떠났던 꼬부랑 노인의 말을 되새기는 봄날이 되길 바라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리게.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행복한 3월이 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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