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1 14:53
[기자수첩]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의 진짜 문제
[기자수첩]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의 진짜 문제
  • 권정두 기자
  • 승인 2021.02.26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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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사상 첫 ‘산재 청문회’를 개최했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주요 산재 발생 기업들을 불러 현황 및 문제점을 진단하는 자리였다.

거센 질타와 싸늘한 시선이 불 보듯 빤하게 예상된 이날, 주요 산재 발생 기업 대표자 중 하나로 출석한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은 아찔한 실언까지 하고 말았다. 산재의 원인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콕 집으며 노동자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발언으로 한영석 사장은 두 명의 의원에게 따끔한 지적을 받았고, 결국 자신의 발언이 의도와 다르게 잘못 전달됐음을 사과했다.

한영석 사장의 실언을 꼬투리 잡으려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국감 단골손님이이라 하더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를 버는 말을 굳이 할 이유가 없다.

한영석 사장의 ‘진의’는 이랬을 거라 생각한다. 산재의 주요 원인은 크게 환경적 요인과 인적 요인이 있는데, 환경적 요인의 경우 투자나 설비확충을 통해 비교적 개선이 쉽지만 인적 요인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그에 맞는 대책 마련 및 강화에 힘쓰겠다. 한영석 사장은 여러 차례 이 같은 취지의 해명을 내놓으며 진땀을 뺐다.

그의 실언을 지우고 진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씁쓸함은 여전히 남는다. 

한영석 사장은 산재 원인 중 환경적 요인(불안전한 상태)을 개선하는 것은 쉽지만(투자를 통해 바꿀 수 있지만), 인적 요인(표준화되지 않은 작업 등)은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환경적 요인과 인적 요인을 따로 떼어놓고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산재 원인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복합적인 이유들이 얽혀 사고로 이어진다. 노동자가 아무리 조심해도 작업환경이 위험하다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노동자가 찰나의 아찔한 실수를 하더라도 작업환경이 철저히 안전하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열악한 하청구조 속에 압박을 받다 보면 안전을 놓치기 쉽고, 반면 안전을 세심하게 챙기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사고 위험이 원천 차단될 수 있다. 환경적 요인과 인적 요인, 관리적 요인, 나아가 산업 구조적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영석 사장의 말을 되짚어보면, 수년 전부터 안전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온 현대중공업은 더 이상 기초적인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어야 마땅하다. 인적 요인은 개선이 어렵더라도, 이를 보완할 환경적 요인에 대해선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적했듯, 노동자가 불안전한 행동으로 추락해도 추락방지망이 있으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실상은 어떠한가. 불과 얼마 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를 살펴보자. 현재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사망한 노동자는 제 위치에서 흘러내린 2.5톤짜리 철판에 의해 변을 당했다.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보단 환경적 요인이 주된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한 각종 관리적 요인도 제대로, 세심하게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위험한 작업환경에 관리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또 다시 노동자가 희생당한 것이다.

한영석 사장은 2015년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생산본부장을 맡았고, 2016년 10월엔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8년 11월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로 등극했다. 지난해부터는 단독대표이사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기간 동안, 현대중공업에선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그에 따른 대대적인 대책 마련과 안전 투자가 계속돼왔다.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한 채 전사적 안전대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물론, 임원들이 해병대 캠프 체험에 나서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한영석 사장의 산재에 대한 이해 수준은 현대중공업이 그동안 수도 없이 외쳐온 안전구호를 의심하게 만든다. 노동자를 탓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실언이 아니라, 애초에 산재에 대해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게 진짜 문제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현대중공업에서는 왜 그렇게 산재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렸다. 안전과 관련된 현대중공업의 지난 시간들, 지난 대책들, 지난 투자들 모두 헛된 것이었고, 그렇기에 산재는 반복될 수밖에 없었음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그동안 현대중공업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또한 그 의미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