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성찰배경: 동양문화권에서는 ‘인간’과 ‘짐승’을 명료하게 구별하는 척도인 ‘네 가지 고마움’[사은四恩]이 있습니다. 즉, 부모와 길벗[이웃]과 나라와 스승의 고마움입니다. 그런데 필자의 경우 길벗의 고마움을 제외한 나머지 고마움은 인생여정 속에서 온몸에 각인되어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평안북도가 고향인 부모님께서는 광복 후 남북한이 삼팔선으로 갈리고 1년쯤 지날 무렵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넘어오셨습니다. 그 후 자유 대한민국을 늘 고마워하시면서 필자를 낳으시고 고이 길러주셨습니다. 또한 스승 종달(宗達) 선사께서는 형편없던 마마보이를 제자로 받아주시고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님을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기에 지금까지 멋진 인생여정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길벗님들의 고마움은 도움을 받을 당시에는 고마워하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거나 거의 잊고 지내오곤 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 필자가 2021년 2월 무난하게 정년(停年)을 맞이하게 되면서, 코로나 감염 사태로 인해 비대면으로 학과 동료 교수님들과 동문 선후배님들이 마련한 퇴임 기념 강연을 두 차례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거의 잊고 지냈던 길벗님들의 고마움까지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늘의 나’가 있기까지 생업(生業)과 수행(修行)이 둘이 아닌 ‘생수불이(生修不二)’의 길을 지속적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한, 길벗님들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길벗[이웃]’에 대해 두루 함께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지구촌 사람들은 모두 길벗이다

현재(2020년 기준) 세계 인구는 약 77억 명이라고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오늘날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간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1단계 길벗인 약 100명과 가까운 길벗으로 지낸다는 가정 아래 과학적으로 대략 추론해 보겠습니다. 즉, 1단계 길벗을 통해 이어지는 2단계 길벗은 그 제곱인 1만 명, 3단계 길벗은 100만 명, 4단계 길벗은 1억 명, 5단계는 100억 명이 되니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은 5단계까지 이어지게 되면 모두가 아는 길벗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 모두 1단계 이웃들의 고마움을 깊이 성찰하고 뼛속까지 각인한다면, 그리고 이런 고마움이 5단계까지 물 흐르듯이 이어져 전파된다면, 저절로 지구촌은 서로 진한 정을 나누며 평화롭게 살게 될 것입니다.

사실 ‘오늘의 나’가 있기까지는 학창 시절의 선생님들과 선후배 및 친구들, 직장이나 수행모임 등 소속 단체의 구성원들을 포함해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모든 길벗님들의 도움 때문인 것이지 결코 각자가 잘 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 보기로 형편없는 마마보이로 성장했던 필자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특히 혼자 독거(獨居)를 하던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에 심신이 모두 지쳐 매우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 대학교 동창이었던 친구 부모님의 배려로 친구 집에서 6개월간 지내면서 당시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며 나름대로 물리학자와 참선수행자의 길을 올곧게 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필자는 약골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는데 선 수행을 하면서 많이 건강해지기는 했으나 잇몸과 눈은 부실해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고마운 지인 의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밖에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길벗님들의 고마움이 필자로 하여금 더욱 치열하게 함께 더불어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감동을 주고받는 이웃 종교의 고마움

오늘날 우리는 다종교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 다른 종교를 믿는 분들과 길벗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길벗의 종교도 진심에서 우러나와 존중하며 살아가야겠기에 아름다운 세 가지 사례를 소개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종달 선사 입적 이후 필자와 함께 헌신적으로 선도회가 사단법인화되며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신 법사님들 가운데 광주거점모임의 혜정(慧頂) 법사(조선대 미대 김인경 명예교수)께서는 2012년 10월 종교를 초월해, 천주교 살레지오회 소속으로 아프리카 오지에서 헌신하셨던,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으시고는 심혈을 기울여 신부님의 흉상을 완성하신 후 살레지오회에 무상으로 기증하시며 이 수도회의 길벗으로 다가가셨습니다.

두 번째 사례로 최근 EBS를 통해 2주간 멋진 불교 교양강의를 선보이셨던, 캐나다 출신으로 귀화한 천달(天達, 천주교의 달도인) 법사(서명원 신부)께서는 한국에서 5년간 수사 시절을 보냈었는데 문화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프랑스로 돌아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5년을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교류하던 길벗들과 나누었던 정(情)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면서 문화충격을 극복하고 다시 예수회 한국관구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귀 1년 후인 1996년 필자가 주관하던 서강대 선 모임에 합류해 도움[입실점검]을 조금 받으셨을 뿐인데, 지금도 가끔 한 번씩 필자와 만나 긴밀히 교감을 나누시면서, 선불교 학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선도회 국제지부 주관 법사로서 온몸을 던져 불교와 천주교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대활약을 하고 계십니다. 특히 2014년에는 그가 프랑스에서 배출한 첫 제자인 건리(乾理) 대자(大姉)께서 디종에 선도회 해외 첫 선원을 개원하셨습니다.

마지막 사례로 선도회에서 책을 펴낼 때마다 늘 책 제호를 흔쾌히 글 보시를 해주고 계신 장천(章川) 김성태 서예가께서는 종교를 초월해 법정 스님과 다산 정약용 및 성웅 이순신 장군의 어록들을 정독하고 그 가운데에서 요긴한 가르침을 골라 뽑아 일련의 서예전을 열어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암 투병 중임에도 끊임없이 맑은 영성(靈性)을 드러내며 주옥같은 시어(詩語)를 토해내고 계신 이해인 수녀님의 삶에 감동되어 시어들을 골라 뽑아 2014년 ‘소아암어린이 돕기’ 재능기부 서예전을 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2018년과 2019년에는 서울시와 함께 ‘서울노숙인캘리그라프’ 연수회도 주관하시며 노숙인들께 삶의 희망을 선물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늘의 나’가 있기까지 도움을 주셨던, 길벗님들의 따뜻한 고마움이나 이웃 종교를 통해 익힌 효과적인 자기성찰 방법과 감동적인 나눔 사례들의 적극적인 활용 방안 등을 늘 가슴 깊이 새기며 길벗의 고마움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을 일상 속에서 몸소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십우도>: 길벗의 수준 파악 필독서

엄격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체득한 후 사찰의 주지 등을 역임하였던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단잔(1819-1892) 선사가 장년 시절 길벗인 에키도(1805-1879) 선사와 함께 행각 수행을 하다가 폭우를 만났습니다. 그러다 무릎까지 흙탕물이 넘쳐흐르고 있는 좁은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마침 아리따운 여인이 그 흙탕물을 건너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단잔 선사는 즉시 여인에게 다가가, 번쩍 안고 흙탕물을 건네주었습니다. 길벗인 에키도는 아무 말 없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둘은 가까운 절을 찾아가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마침내 에키도가 입을 열었습니다. “출가승은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것도 젊고 아리따운 여인은 더 더욱 안 되는 거야. 여인을 가까이하는 일은 출가승에겐 매우 위험한 일이야. 그런데 자넨 왜 낮에 그런 일을 했는가?” 그러자 단잔은 금시 초문인 듯, “낮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데?”하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괘씸하다는 듯이 에키도가 “아니 자네가 낮에 여인을 안고 흙탕물을 건네주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앞으로는 자제하게나.” 그러자 단잔 선사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아, 그 일 말인가? 나는 그 여인을 건네준 후 그곳에 내려놓고 왔는데, 자네는 이곳 잠자리까지 데리고 왔구먼!”

사실 이 일화는 ‘참나’를 ‘잃어버린 소’에 비유해 열 단계로 나누어 참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선종(禪宗) 어록인 <십우도(十牛圖)> 가운데,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제9단계인 ‘본래의 근원으로 돌아감’을 뜻하는 ‘반본환원(返本還源)’과 제10단계인 ‘저자거리에 들어가 더불어 함께 함’을 뜻하는 ‘입전수수(入鄽垂手)’에 관한 구체적인 멋진 보기입니다. 즉 단잔 선사가 흙탕물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여인을 목격한 순간은 바로 온몸으로 깊은 통찰 체험을 통해 도달 가능한 제9단계인 ‘반본환원’의 경계이고, 이럴 경우 저절로 가는 곳마다 있는 그 자리에서 늘 깨어있기 때문에 즉시 문자적인 계율(戒律)을 돌파하며 여인에게 다가가 흙탕물을 건네준 실천행은 마지막 10단계인 ‘입전수수’의 경지인 것입니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선수행자라면 필연적으로 1-9단계까지의 통찰(洞察) 체험을 바탕으로 10단계인 나눔[보시(布施)] 실천, 즉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삶을 저절로 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1-9단계는 편의상 나눈 것일 뿐 비록 아직 ‘나’라는 아집(我執)이 남아 있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1-8단계에서도 누구나 형편 되는대로 나눔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좀도리 정신 회복을 위한 제언

한때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계층에서 30년 근무한 직장인을 기준으로, 퇴직 직전까지 평균 1년치 월급 기부하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가끔 언론을 통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 가운데 1억 원을 기부하며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기사를 접하곤 합니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이를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앞글 ‘연말정산의 명암’에서 밝혔던, 일상 속 ‘절미(節米)’ 실천을 통한 ‘좀도리’ 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사료됩니다. 즉 ‘일시불 1억’이라는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근검절약을 통해 형편 닿는 대로 모은 성금을 매년 뜻깊은 일을 위해 나누다 보면 30여 년 후 저절로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에 준하는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월급쟁이인 필자의 경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길벗님들의 고마움에 대한 보은(報恩)의 일환으로 30여 년 전, 매년 필자가 속한 선도회와 서강대에 이에 상응하는 기여를 나누어 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계획대로 실천해 홀가분하게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덧붙여 사실 연봉이 천만 원인 길벗이 기부한 천만 원은 한 번에 1억 원을 기부한 분들 못지않게, 아니 더 소중한 기부라 사료됩니다.

끝으로 선진국의 경우 정년퇴직 후 자택에 살면서 안정적으로 연금(年金)을 받는 지구촌 길벗님들 대부분, 자신의 전문적인 경험을 재능 기부하며 멋진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대한민국도 단순히 경제 규모에만 초점을 맞추어 선진국이 되었다고 선전할 것이 아니라 기부 문화 측면에서도 선진국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念願)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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