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사업에 있어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시행되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무용론이 일고 있다. 예타는 기획재정부에서 관장하며 조사도 국가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하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한전이 인도네시아에서 추진하고 있는 ‘석탄발전소 자와9‧10호기 사업’도 예타 무용론에 힘을 싣는 사례로 지적된다. 이 사업은 예타에서 ‘경제성’ 충족시키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통과됐다. 국책금융기관들의 천문학적 자금 투자로 대규모 투자손실 발생이 예상된다. 이는 결국 국민 세금과도 맥이 닿아있다.   

이 같은 문제를 막고자 최근 국회 차원에서 예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당은 예타의 ‘개정’을, 야당은 예타 ‘폐지’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는 상태다. [편집자주] 

석탄발전소를 넘어 석탄에 관련된 산업에 일체 투자하지 않겠다는 게 세계적 흐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돕겠다는 이유로 석탄발전소 건설 및 운영 사업에 천문학적 투자를 단행했다. 사진은 독일 베르그하임의 독일전기(RWE) 노이라트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모습. 독일 정부는 2038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시사위크=최정호 기자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인도네시아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와9·10호기 사업’과 관련, 대주단(일종의 채권단 형식)이 별도의 ‘사업타당성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에서 두 차례나 적자로 지적되자, 자체적으로 사업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수익성이 나는 것으로 판단해 국민 세금 1조7,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대주단이 실시한 사업타당성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와섬과 발리섬은 전력 공급 과잉 사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소를 건립해 전력을 생산해도 팔 데가 마땅치 않은 상태라는 얘기다. 대주단이 실시한 사업타당성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대주단은 세계 유수의 사업 평가 기관에 의뢰해 사업타당성조사를 받았다고 하지만 ‘대외비’라는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 

◇ 국책금융, 예타보단 ‘사업타당성조사’ 우선

현행법상 국가기관이 500~1,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진행할 경우 KDI(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해 예타를 받게 돼있다. 예타가 통과되면 본타당성조사(이하 본타)를 실시하는데,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예타가 곧 본타”라는 의식이 관계자들 사이에 팽배한 상태다. 

해외사업의 경우 예타에서 ‘경제성’을 높이 평가하는데 자와9‧10호기 사업은 적자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국책 금융기관의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시민단체 ‘기후솔루션’은 한전이 예타 1차 평가에서 약 100억원이 적자를 기록했고 2차에서는 약 8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대주단은 국내외 11개 금융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 금융기관의 경우 △산업은행(4,800억원) △수출입은행(4,653억원) △한국무역보증보험(비공개) 등이 대주단으로 참여했다. 이외 투자에 참여한 외국 금융기관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소속 금융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와9‧10호기 총사업비 4조4,530억원 중 1조7,000억원을 우리나라 국책 금융기관이 책임지고 있다. 

국책 금융기관들은 사업타당성조사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시사위크>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사업타당성조사를 실시한 곳은 한국무역보증보험이 유일하다. 한국무역보증의 경우 해외사업에 보증 투자할 시 반드시 외국 기관에 의뢰해 사업타당성 조사를 받게 돼 있다. 한전을 비롯해 수출입은행, 산업은행은 사업타당성조사를 받지 않았다. 한국무역보증보험의 해외 투자 시스템에 ‘무임승차’ 한 셈이다.  

실제 대주단 중 한 곳인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사업타당성조사 실시여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주단은 공동으로 분야별(기술‧법률‧보험‧재무‧환경)로 세계 유수의 독립자문사를 활용해 기술적 타당성 심사를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민 세금 1조7,00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국책 금융기관들이 사업타당성조사 의뢰 기관이나 결과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예타 제도의 경우 평가 기관과 결과를 공개하게 돼 있는 반면, 대주단은 사업타당성조사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 예타에서 두 번이나 적자가 난 사업이 사업타당성조사에선 흑자로 바뀌었는데도 비공개인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9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 인근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정부의 해외 석탄 투자 중단 촉구 관련 메시지를 담은 레이저 빔을 한국수출입은행 건물에 투사하고 있다./ 뉴시스

◇ 수익성 지수(PI) 1 미만에도 과감한 투자 단행 왜… 

이 과정에서 예타 결과와 사업타당성조사를 두고, 한전과 대주단 간 마찰도 발생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와9‧10호기가 완공되고 25년간 전력사업을 할 경우 한전이 예타에 제시한 가동률로는 수익이 안나는 구조로 나타나자 대주단이 한전에 가동률을 높일 것을 요구한 것. 

익명을 요구한 대주단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예타와 사업타당성조사가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수익률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한전은 가동률을 높여달라는 대주단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우리(한전)가 대주단의 결정을 따를 필요는 없다”며 “사업타당성조사를 하고 투자를 대주단이 결정한 것인데 왜 거기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주단의 주장에 대해 비판했다. 자와9‧10호기가 발전소가 완공되면 가동률을 놓고 사업주인 한전과 대주단 간에 갈등이 발생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한국무역보증보험이 ‘재보증’을 든 것도 해당 사업에 대한 불안감의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무역보증보험은 서울보증보험에 880억원 상당의 재보증을 든 것으로 알려졌다. 재보증은 1차보증기관이 투자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2차보증기관에 자신들이 투자 보증한 사업에 대해 재보증을 드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다만 한국무역보증보험이 수익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재보증을 든 것으로 보여지고 있어 사업타당성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에 대해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무역보증보험은 재보증 관련 <시사위크>의 질의에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수출입은행의 경우 예타 내용에 대해 한전으로부터 통보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한전이 밝힌 ‘수익성지수(PI) 0.95’를 믿고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위크>는 수출입은행에 “예타 적자 판정을 받았는데 투자한 이유”에 대해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예타는 통상적인 수준을 초과하는 사업비, 낮은 발전소 가동률 등 보수적인 가정에 근거한 평가”라며 “예타에서 AHP 지수 0.5 이상을 받았고 PI 지수 0.95 이상이었기 때문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예타는 사업성 지수(AHP)가 0.5 이상일 때만 통과된다. 다만 0.5 지수는 ‘회색영역’으로 분류돼 심사위원들이 다시 평가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수익성 지수인 PI가 1 미만이라는 점이다. PI 지수는 ‘1’이 절대적 기준치로 1 이상이면 투자하고 1 미만일 경우 투자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자와9‧10호기 사업은 PI지수 1미만인데도 불구하고 국책 은행이 천문학적 액수의 투자를 단행한 것을 두고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익성 지수가 1보다 낮은데도 불구하고 투자한 것은 경제성 평가보다 정치적 입김에 의해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자와9‧10호기 한국‧인도네시아, 목매는 이유

더 큰 문제는 자와9‧10호기 발전소를 가동해 전력을 생산해도 팔 데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자와섬과 발리섬은 전력망이 연결돼 있는데 지난해 40% 이상의 공급 과잉을 기록한 상태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 국영 전력 공사가 재무적으로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트렌드 아시아’ 환경운동가 수가(yuyun)는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자와섬과 발리섬은 전력 공급 과잉에 시달리다가 일부 손실을 입었다”며 “이로 인해 국영 전력공사 소속 사업자의 재무실적이 악화됐다”고 밝혔다 

두 번의 예타에서 적자 판정을 받은 자와9‧10호기 사업에 대해 국책 금융기관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은 특정 산업을 살리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기관 해외사업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자와9‧10호기 사업의 경우 특수한 경우”라며 “발전소 사업을 진행하는 수많은 기업을 살려야 하고 국제 사회 이미지 제고를 위해 예타가 통과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책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자와9‧10호기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이 300여개”라며 “사업 진행이 안될 경우 이들을 도산 위기로 내몰 수는 없다”며 투자 이유를 밝혔다. 

‘트렌드 아시아’ 환경운동가 수가는 “자와9‧10호기 사업은 인도네시아 석탄 재벌들 주머니를 채워주는 꼴”이라면서 “한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와9‧10호기 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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