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며칠 전에 동네 야산에 올라갔다가 벌써 진달래꽃이 보여서 깜짝 놀랐네. 한반도 기후변화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3월 초순에 서울 야산에 진달래꽃이라니…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일찍 찾아온 진달래꽃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마음은 착잡했네.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 위기를 인류가 어떻게 잘 극복해낼 수 있을지 늘 걱정하고 있거든.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진달래꽃에 관한 이야기나 하세.

학창 시절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는 김소월의 시를 암송하거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나는 진달래꽃이 어떻게 생긴 꽃인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네. 비옥한 들판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마을에서 나고 자라 진달래라는 나무 자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야. 진달래는 인적 없는 바위틈이나 척박한 야산에서 자라는 식물이거든. 그래서 진달래가 많은 곳은 대부분 산성화된 땅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되돌아보면 참 한심했지? 진달래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진달래꽃>을 암송하고 ‘아기 진달래’가 있는 <고향의 봄>을 신나게 노래했으니… 그때는 컴퓨터는커녕 텔레비전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직접 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 그런 내가 진달래꽃을 직접 본 것은 군복무 할 때야. 그것도 강원도의 깊은 산골 골짜기에서.

진달래과의 갈잎떨기나무인 진달래는 중국과 한국이 원산지로 예전에는 두견화라고 불렸네.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이름이었지. 옛날 중국에서 두우(杜宇)라는 사람이 촉(蜀)나라를 세우고 왕(망제 望帝)이 되었지만, 자신이 목숨까지 구해줬던 형주 사람 별령(鱉靈)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나 세상을 떠돌게 되었다네. 그게 억울하고 원통해서 날마다 피를 토하며 울다가 지쳐 죽었고, 그의 넋이 한 마리 새로 다시 태어났는데 그게 바로 두견새야. 죽어서라도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서‘귀촉 귀촉(歸蜀)’슬프게 운다고 하는구먼. 두견새를 두우, 귀촉도(歸蜀途), 망제혼(望帝魂)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지. 그런 두견새의 붉은 피가 나뭇가지 위에 떨어져 생긴 꽃이 두견화 즉 진달래꽃이라네. 그러니 진달래꽃을 보면 한(恨)을 생각하고 슬픔을 느끼는 것인지도 몰라. 진달래꽃을 보고 ‘서럽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거든.

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부르네. 왜 ‘참’이냐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야. 예전 가난한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진달래꽃을 따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네. 춘궁기 가까운 시기에 피는 꽃이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주전부리였겠나.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쳐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했는데, 그게 화전(花煎)이야.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 꽃잎을 얹어서 지진 부침개라니… 꽃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돌지 않나. 보통 진달래꽃이 만발한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 동네 여인들이 경치 좋은 야산에 모여 꽃전을 부쳐 먹고 가무를 즐겼다네. 그게 화전놀이야. 조선 중기의 시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화전놀이(煎花會)>라는 시가 있는 걸 보면, 양반들도 즐겼던 놀이였던 것 같네.

“작은 시냇가에서 솥뚜껑을 돌에다 받쳐(정관탱립소계변 鼎冠撑立小溪邊)/ 흰 가루와 푸른 기름으로 두견화를 지져(백분청유자두견 白粉靑油煮杜鵑)/ 두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니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고(쌍저협래향만구 雙努狹來香滿口)/ 1년 봄빛을 뱃속에 전하누나(일년춘색복중전 一年春色腹中傳).”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달래꽃으로 잘못 알고 먹었다가 탈이 나는 꽃도 있다는 걸 잊지 말게나. 진달래의 사촌격인 철쭉은 ‘개꽃’이라고도 불리는데, 글라야노톡신(grayanotoxin)이라는 독성물질을 갖고 있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라네. 두 꽃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간단히 설명하면, 진달래는 서울 근방에서 3월과 4월에 피고, 철쭉은 5월에 피네. 진달래는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피지만, 철쭉은 잎이 나오는 시기와 꽃이 피는 시기가 거의 같아. 꽃의 색깔은 진달래가 약간 더 붉고, 연분홍색 철쭉꽃의 꽃잎 안쪽에는 진한 반점이 있어. 진달래 잎은 끝이 뾰족하지만, 철쭉 잎은 거꾸로 된 계란 모양으로 가지 끝에 4~5개 모여 달려.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걸세.

골치 아프다고? 그러면 3월이나 4월 초순에 우리나라 야산을 붉게 물들이는 꽃은 십중팔구 진달래꽃이니 안심하고 하나 따서 살짝 씹어보시게나. 아마 시큰한 맛이 날 걸세.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야. 겨우내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느라 답답했지? 가까운 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찾아보시게. 진달래꽃이 방긋방긋 좋아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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