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사업에 있어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시행되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무용론이 일고 있다. 예타는 기획재정부에서 관장하며 조사도 국가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하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한전이 인도네시아에서 추진하고 있는 ‘석탄발전소 자와9‧10호기 사업’도 예타 무용론에 힘을 싣는 사례로 지적된다. 이 사업은 예타에서 ‘경제성’ 충족시키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통과됐다. 국책금융기관들의 천문학적 자금 투자로 대규모 투자손실 발생이 예상된다. 이는 결국 국민 세금과도 맥이 닿아있다.   

이 같은 문제를 막고자 최근 국회 차원에서 예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당은 예타의 ‘개정’을, 야당은 예타 ‘폐지’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는 상태다. [편집자주]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가덕도 관련 법안을 비판하는 피켓을 의석에 붙여 놓고 있다. / 뉴시스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가덕도 관련 법안을 비판하는 피켓을 의석에 붙여 놓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최정호 기자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최근 확산되고 있다. 국회에선 예타 관련 법안 개정 및 폐지를 놓고 여야(與野)가 대립하고 있고,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도 예타의 역기능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상태다. 

◇ 정치권, ‘예타’ 지역 균형발전 저해 “반드시 개선돼야”

예타는 국가재정법 상 총사업비 규모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을 진행할 경우 해당 사업의 타당성을 따지는 제도다. 세금 낭비를 막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도입됐다. 

문제는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서 독점으로 예타를 통제하다 보니 공정성과 효율성 부분에서 뒷말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타당성이 없는 사업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거나, 정치적 논리에 따라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무용론’마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타 평가항목은 건설사업의 경우 △경제성 35~50% △정책성 25~40% △지역균형발전 25~35% 등으로 구성된다.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 요소가 높은 사업의 경우 경제성 평가 반영 비율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지방에 철도나 도로를 설치할 경우 교통호재로 인구가 유입돼 지역이 발전할 수 있지만, 예타에서 현재 ‘인구가 없다’는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내리면 사업 자체가 진행될 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 ‘예타가 국가 균형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의 경우 예타 통과가 수월해 지역 발전이 고도화 됐지만,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인구가 없어 ‘운영 적자’가 나온다는 이유로 예타 불합격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지자체가(비수도권) 예타를 통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현실”이라면서 “일부 지자체에선 돈을 들여 외부 용역을 통해 예타 모의 조사를 실시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여권 일각에서도 “예타가 국가 균형 발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전 국민 인구 중 5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이들 지역의 예타만 통과시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김두관(더불어민주당‧기획재정위원회) 의원실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예타를 각 사업 부처(주관부처)로 넘기고 심사 기관도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김 의원은 예타 개정안 입법 발의를 준비 중이다. 

예타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국회 최춘식(국민의힘‧행정안전위원회) 의원실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국회의 기능 중 하나가 예산 심의”라면서 “예타를 유지할 거라면 기재부가 하는 게 아니라, 국회예산정책처에서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이어 “예산정책처가 설립된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예타 기능을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단체에선 정치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예타를 정부 부처로 옮길 경우 각 부처의 권한이 막강해지며, 국회로 옮길 경우 전문성이 떨어지고 업무를 진행할 준비가 덜 돼 있다”며 “우리 국회가 미(美) 의회만큼 입법과 예산 심의 기능이 선진화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제의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 신영철 국장은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국회라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예산 낭비를 억제할 수 있는 예타의 기능을 축소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 학계‧NGO ‘예타’ 세금낭비 억제 장치 “강한 운용 필요”

예타가 정치적 논리에 따라 휘둘린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한국전력(한전)이 인도네시아에서 진행 중인 석탄발전소 사업(‘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발전소’)이 그런 예다. 해외 사업의 경우 ‘경제성’이 예타에서 차지하는 비중(평가가중치)가 60%가 넘는다. 자와 발전소 사업이 경우 예타에서 ‘적자’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통과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상태다.   
 
자와 발전소 사업의 예타 통과 이유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국가가 진행하는 사업은 수익성만 놓고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공공성과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고려했기 때문에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예타가 국가 기관의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서울시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 인터뷰에서 “국가가 진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공정성을 잃고 한쪽(국가)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예타 심위위원으로 다수 참여했던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예타 면제 사업이 많아졌다”며 “경제성 평가를 강화해서 세금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2019년 1월 문재인 정부는 국가균형발전프로젝트를 위해 24조1,000억원 규모, 총 23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엔 10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특별법을 통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상 국가 안보, 재난 예방 및 복구 등 국가 차원의 추진이 필요한 일부 사업에 대해선 예외를 인정해 주지만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이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많다.  

◇ 여야, 예타 관련 법안 마련 움직임… 귀추 주목  

예타 결과는 현행법상 공개하기로 돼 있다. 그러나 본지가 입수한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발전소’ 예타 결과서는 대외비로 분류돼 있다.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없을뿐더러 내용도 결과 해석도 매우 어렵다. 대중에 공개된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예타 결과를 대중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알기 쉽게 공표해야 한다”고 했다. 또 서 교수는 “예타가 면제 사업의 경우 그 사유를 공개해 국민을 설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여야는 예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저마다 법안으로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이대로라면 법안소위 과정에서 조율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타 개정이든 폐지든 어떤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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