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1 13:01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다시 도는 한반도 시계… 봄날 맞기 위한 전략 짜야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다시 도는 한반도 시계… 봄날 맞기 위한 전략 짜야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1.03.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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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한·미 합동군사연습 종료 시점을 계기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동시에 방한해 2+2(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 상견례를 한데 이어 미·중 간에는 블링컨-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간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앞서 미·일은 블링컨 방관 일행의 방일을 통해 동맹관계 강화와 중국에 맞선 한·미·일 삼각 동맹의 복원을 꾀했다. 23일 중국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미국의 압박에 맞선 연대를 다짐했다.  

북한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17일자 담화를 통해 ”싱가포르, 하노이에서와 같은 기회를 다시는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대화 그 자체가 이뤄지자면 서로 동등하게 마주 앉아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면서 북·미 대화 재개에도 암묵적 관심을 드러냈다. 

또 한편으로는 불법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북한 국적 문철명(55)을 미국으로 넘긴 말레이시아와 단교 조치를 취하는 등 대북제재 움직임에 극단적인 반발을 지속하고 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15일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거론해 남북관계의 파국을 경고하면서 행간에는 남북 관계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강조하는 등 오랜만에 평양발 대남·대미 메시지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남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화해·협력과 한반도 정세의 안정과 진전을 위해 방향성 있는 전략 구상과 행동 조치를 해나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재로써는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퇴진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등장에 따른 미국의 대외·대북 전략의 재검토 마무리 과정에서 전개되는 일종의 기싸움이나 탐색전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다. 

미·중 관계만 놓고 보더라도 민주주의와 인권 등 미국이 제기해온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슈화하고, 유엔이나 유럽연합(EU) 등과 일치된 목소리를 낼 것인가 하는 걸 점치기 위한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형국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만들어 내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시도와 노력은 안타깝게도 답보상태다. 여기에는 남북한이 긴장과 충돌 국면을 교류와 협력으로 바꾸고, 다시 합의 파기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해 가는 기존의 경로가 큰 걸림돌을 만난 점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라는 장벽까지 막혀있어 어려움을 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코로나19 비상방역을 이유로 외부로 통하는 모든 문을 닫아걸었다. 북·중 간의 공식, 비공식(변경 밀무역) 루트가 막혔고 외국을 오가는 공중과 해상·육로가 차단됐다. 기존의 대북제재에 코로나로 인한 ‘셀프 제재’까지 겹치면서 북한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 8월 노동당 7기 6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 경제의 장성목표가 심히 미진 되고 인민생활도 향상되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건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 정보당국이나 대북소식통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 내부의 사정은 예상보다 심각하다. 2,500만명으로 알려진 북한 인구의 40% 정도인 1,100만명이 일상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린다는 유엔 전문기구의 리포트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올해의 경우 식량 사정이 더욱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북·중 간 밀무역을 통해 식량과 생필품 등이 유통되던 상황이 일년 넘게 막히면서 북한 실물경제를 지탱해주던 장마당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노동당은 우리를 먹여 살리지 못하지만, 장마당은 다르다“고 회자되던 장마당 기능의 이상 조짐은 북한 당국 입장에서 봐도 민심이반의 위기요소일 수 있다.

한동안 방역 지원이나 백신 제공 같은 코로나19 관련 남북 협력을 추진해온 우리 정부 당국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듯하다. 북한이 코로나 비상방역과 관련해서는 워낙 철벽 방어를 하고 있는 데다, 남한으로부터의 코로나 유입이나 전이를 크게 우려하는 듯한 상황 속에서 더는 북한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대신 정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상황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17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올해 잇따른 수해와 작황 부진으로 내년 봄부터 심각한 식량 부족 상황을 맞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대북 식량 지원 정책의 추진 필요성을 강조한 것을 기화로 대북지원 여론에 힘을 싣기 위한 작업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4월 초 북·중 접경 물자 교역을 완화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오면서 일각에선 대북지원 성사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역시 북한의 태도와 호응 여부다. 북한은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한반도의 봄’ 국면에서도 대북지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재직 시절에는 정부가 쌀 지원을 위해 포장용 마대까지 생산해놓았지만, 북한이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아 무산된 적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초기부터 ”남조선 것 받지 마라“는 지침을 내려놓은 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방역 조치에 극도로 민감한 입장을 취하면서 ”외부로부터의 물자 지원을 허용치 말라“는 지시까지 공개적으로 제기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에 따른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 전가하면서 냉담한 태도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옳지 않고 정당성을 얻기도 쉽지 않다. 북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듯이 ‘미국과의 세기적 담판‘에 나서면서 충분한 전략을 짜고 여러 시나리오에 따른 카드를 준비하는 건 당연하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당국에 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그 책임을 조언자와 중재자 역할을 해준 문재인 정부와 한국 정부에 떠넘기고 화풀이 식 대응을 하는 건 경우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남북관계나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는 추가적인 도발이나 위협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다. 지난 21일 순항미사일 발사에 이어 25일에는 탄도미사일까지 쏘아 올린 건 소탐대실하는 경우일 수 있다. 순항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 등 국제사회가 “안보리 대북결의 위반이 아니다”며 상황 관리에 공을 들이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탄도미사일까지 쏜 건 제재와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물론 북한 입장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인내력을 테스트하고 북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전술적 선택일 수 있다. 또 미국의 대북·대중 압박에 대응해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구두 친서를 통해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협력을 강화하자“고 의기투합한 점을 뒷심 삼은 측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의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점점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모두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협력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심하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구태의연한 도발과 감정적 대응만으로는 제대로 된 북한 체제의 생존전략을 짤 수 없다. 대북제재의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민생‘ 문제의 해결을 여러 차례 공언해온 김정은 위원장의 정책 노선과도 거리가 있다.

지금이라도 북한은 인식과 전략의 대전환을 통해 남북 협력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식량이던 코로나 방역이던, 최우선 순위에 ’인민‘의 삶과 생존을 놓는다면 가능한 일이다. 임기를 1년여 남겨둔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의 복원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통해 2018년의 봄날을 복원하고 확장시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게 아니고,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 북·미 관계의 증진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김정은 위원장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