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반도체 분야 최상위권을 달리며 ‘ICT 최강국’임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중국, 일본 등 글로벌 IT선진국들의 반도체 산업 굴기를 위한 발걸음도 빨라지면서 우리나라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Getty images, 뉴시스, 편집=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IT강국’인 우리나라의 핵심 IT산업을 하나 꼽으라면 역시 ‘반도체’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선두로 한 ‘K-메모리 반도체’는 전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다가옴에 따라 미국, 중국, 일본 등 글로벌 IT선진국들의 반도체 산업 굴기를 위한 발걸음도 빨라지면서 우리나라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 경쟁에서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반도체 시장 성패 요소는 ‘투자’ ‘타이밍’ ‘인재’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30일 개최한 ‘반도체 산업이 흔들린다 :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 역시 우리나라가 ‘반도체 최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뺏기지 않기 위해 재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2021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우리나라 국가예산 558조원에 버금가는 약 530조원 규모로 전망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도체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어 우리 기업들에게 분명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강국들의 반도체 산업 육성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만 대표기업인 TSMC는 정부와 국민들의 든든한 지원을 기반으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리고 있다”며 우려도 표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이 3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이 흔들린다 :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그러면서 권태신 부회장은 향후 반도체 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요소로 △대규모 투자(Investment) △타이밍(Timing) △인재(Talent)를 뽑았다.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현재 산업 트렌드에 맞는 반도체 생산·제조 기술 확보에 투자하고, 이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

아울러 권태신 부회장은 반도체 등 IT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들에 대한 완화 등도 필요할 것으로 지적했다. 

권태신 부회장은 “기술력 향상과 시장 확대를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반도체 산업에서 초격차를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의 애로사항들을 풀어줘야 한다”며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생산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혁신하고 기초과학 기술력 향상, 인재양성, 관련 인프라 확충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 반도체 업계,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분야 경쟁 대비도 필수”

아울러 반도체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보유했지만 경쟁 국가들에 비해 비메모리 부문의 경쟁력은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메모리반도체의 성공에 따른 안이함을 벗어나 비메모리 분야, 특히 파운드리 경쟁에 대한 대비에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최근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주요국은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에 각종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수립해 유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미국, 유럽, 일본은 자국 내 제조시설 확충으로 공급망 안정화를 추진하고, 중국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도체 굴기를 노리고 있으며, 대만은 세계 최고의 시스템반도체 제조기술을 통해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더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팹리스(반도체 설계)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유도 및 제조 경쟁력 강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4년까지 투자비의 40% 수준을 세액공제하고, 반도체 인프라 및 R&D에 228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반도체 업계는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저우쯔쉐 장국반도체행업협회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업계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7.8% 늘어났다. 사진은 중국 화웨이가 개발한 쿤펑 반도체./ 사진=뉴시스

중국 역시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과거 LCD 굴기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름)’ 전략으로 대형 M&A 추진 및 반도체 국산화 확대를 시도 중이다. 

실제로 지난 17일 저우쯔쉐 장국반도체행업협회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업계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7.8% 늘어난 8911억 위안(1,370억 달러)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6.5% 성장한 4,390달러(한화 495조6,310억원)임을 감안하면 31%에 이르는 매출액을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차지한 셈이다.

유럽 국가들도 아시아 파운드리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이 뜻을 모아 최대 500억 유로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그 중 반도체 기업 투자금액의 20~40%를 보조금 형태로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재원을 집중하고 있는 파운드리 부문의 경쟁 심화와 재해로 새로운 위험이 부상했다”며 “주요국 정부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도 “미국은 1987년에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조합 ‘세마테크’를 출범시켜 정부와 인텔 등 대기업이 투자한 덕분에 오늘날의 퀄컴이 탄생할 수 있었다”며 “대만도 1973년 설립한 산업기술연구원(ITRI)을 통한 지원 덕분에 TSMC, UMC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은 기업 간 경쟁구도를 넘어 국가 간 경쟁에 직면한 만큼, 정부와 기업은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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