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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낙원의 밤] 피비린내 나는 누아르에 ‘감성’ 더하니
2021. 04. 06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이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날 준비를 마쳤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이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날 준비를 마쳤다.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조직 간의 서열 싸움, 난무하는 배신과 음모, 핏빛 복수까지 그동안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익숙하고 전형적인 전개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 피비린내 나는 누아르에 가슴을 적시는 감성, 예상치 못한 유머를 한 스푼 섞었더니 맛이 완전히 달라졌다.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이다. 

‘낙원의 밤’은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영화 ‘신세계’ ‘브이아이피’ ‘마녀’ 등을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다. 앞서 지난해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공식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박훈정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강렬한 스토리와 장르적 쾌감을 조금 덜어내는 대신, 기존 범죄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을 녹여내 색다른 누아르를 완성시켰다. ‘사건’ 보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 점도 ‘낙원의 밤’만의 무드를 완성한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낸 ‘낙원의 밤’. /넷플릭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낸 ‘낙원의 밤’. /넷플릭스

그 중심엔 태구(엄태구 분)와 재연(전여빈 분)이 있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 동질감을 느끼고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며 감정을 쌓아나는 과정이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담겨 감성을 자극한다. 사랑을 느끼기엔 다소 짧은 시간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각자의 사연이 이들의 선택에 설득력을 높인다.

의외로 웃음 타율도 높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차분하게 흘러가는 전개 속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렇다고 극의 무게감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누아르 장르라는 틀 안에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정도의 유머 코드를 적절히 녹여내 극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제주도는 ‘낙원의 밤’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누군가에게는 ‘낙원’으로도 불리는 제주도에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상황과 참혹한 풍경은 아이러니함을 극대화하며 영화의 감성을 배가시킨다.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은 그 어떤 해외 로케이션 촬영 부럽지 않은 여운을 선사한다.

‘낙원의 밤’에서 존재감을 뽐낸 (위부터)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 스틸컷. /넷플릭스
‘낙원의 밤’에서 존재감을 뽐낸 (위부터)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 스틸컷. /넷플릭스

여성 캐릭터의 활용 방식도 눈에 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누아르 장르 속 ‘낙원의 밤’ 재연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자신 앞에 닥친 절망적인 사건들 앞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는 그의 슬프면서도 강렬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영화의 가장 큰 쾌감도 그의 몫이다.

엄태구는 특별할 것 없는 태구를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해냈다. 잔인하고 냉혹하지만, 서툴고 내성적이고 따뜻한 면모를 지닌 인물을 특유의 개성과 매력을 더해 뚜렷한 색깔로 만들어냈다. 재연으로 분한 전여빈 역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고, 마이사를 연기한 차승원은 유머와 섬뜩한 카리스마를 오가며 개성 넘치는 매력을 보여준다. 양사장 역의 박호산은 너무 잘해서 밉다.

다만 박훈정 감독 특유의 강렬한 스토리와 격렬하고 화려한 액션 시퀀스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또 전반적으로 잔잔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탓에 131분의 러닝타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오는 9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