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인터넷을 조금만 둘러보면 터무니없는 값으로 차를 판매하는 사이트나, 성능기록부와 보험이력을 공개하지 않고 판매 중인 중고차를 여전히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해결책으로는 국내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으나, 이를 반대하는 집단 또한 존재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 국회의원은 ‘완성차업체 중고차시장 진입 금지법’을 발의해 논란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중고차시장에서 발생하는 허위·미끼매물이나 사고이력 조작·침수이력 은폐 등의 문제는 수년째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극약처방(劇藥處方)이 필요해 보일 지경이다.

이러한 문제가 상존하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이 칼을 빼들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중고차시장 진출을 천명했다. 현대차 측은 중고차 시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70~80%가 중고차 시장의 거래 관행이나 가격 산정 등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며,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완성차가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의 중고차시장 진출 발언에 많은 소비자가 관심을 가졌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 중고차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SK그룹에서 중고차매매플랫폼 사업으로 SK엔카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지난 2013년 정부가 중고차 매매업에 대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신규 진출과 확장이 제한됐다. 결국 SK그룹도 기존에 운영하던 SK엔카 사업을 매각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지난해 초 중고차 매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기한이 만료됐다. 이에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으로 제한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뿐만 아니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도 △국산 인증 중고차 부재 △성능·상태 점검 부실 △불투명한 가격 등으로 인해 중고차 시장 전반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높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완성차 업체를 비롯한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참여가 시장 활성화 및 투명성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대기업 측에 힘을 실었다.

민간단체 및 자동차 관련 조직에선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소비자들도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비례대표·당대표)은 현대차의 중고차시장 진입을 향후 10년 이상 제한하는 ‘완성차업체 중고차시장 진입 금지법’을 발의했다.

조 의원은 이 법을 발의하면서 “국회입법조사처 조사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완성차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금지의 관행을 스스로 자율적으로 지키고, 미국 상당수의 주에서는 법령으로 완성차업체의 중고자동차 시장 진입을 규제하고 있는데, 이는 중고차시장의 생태계 다양성 확보야말로 중고차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것을 오래전부터 경험으로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 의원의 발언에는 어폐가 존재한다. 우선 ‘중고차시장의 생태계 다양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입을 막는 것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다.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이 향후 10년간 제한하는 것은 중고차 매물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것임과 동시에 소비자 선택권도 제한하는 것이다.

그가 근거로 제시한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와 관련해 조정훈 의원실에 자료를 요청해 제공을 받았으나, “미국 상당수의 주에서는 법령으로 완성차업체의 중고자동차 시장 진입을 규제하고 있다”는 조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내용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조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외사례로 △주요 선진국에서 자동차매매업은 공통적으로 시장에 대한 규제 및 제재 없이 시장 경쟁 체제 하에서 대기업부터 소규모업체까지 자유롭게 상생하는 유통구조를 형성하고 있음 △미·일에서는 다양한 유통채널을 통해 대형기업의 딜러부터 영세 딜러까지 시장 경쟁 논리를 기반으로 상생하는 구조를 이루고, 소비자의 요구와 시장 경쟁 논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업체가 자유롭게 진입해 중고차시장의 성장과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음 △해외에서 완성차를 생산하는 자동차제조사 또는 일정규모 이상의 대기업에 대해 중고차 중개업 또는 매매업을 겸업하지 못하도록 입법적으로 제한하는 사례는 확인되지 않음 등의 내용이 명시돼 있다.

조 의원과 직접 통화를 시도해 이와 관련해 질문을 했으나 그는 “미국은 연방제인 나라라 일부 주에서는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을 규제하고 있기도 하다”고 답했다. 다만 해당 주에서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해외사이트를 직접 확인한 결과, 독일의 주요 자동차 브랜드와 미국·일본 자동차 브랜드도 자국에서 인증중고차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완성차 기업에서 직접 운영을 하는 것인지, 딜러사를 통해 운영을 하는 지는 명확치 않으나, 결론적으로는 다수의 국가에서 대부분의 해외 자동차 브랜드가 인증중고차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자동차 브랜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인증중고차를 판매하고 있다. 물론 해외 자동차 브랜드의 한국지사가 직접 하는 것은 아니며, 파트너사인 딜러사가 운영하는 형태다.

이어 조 의원은 “국내 완성차 업체는 중고차 시장 진입을 시도해 영세한 중고차 매매업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며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할 경우,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중장기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대차가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자사 중고차 매물에 대해 인증작업을 해준다면 직접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현재 문제를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대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조 의원의 주장은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인 ‘교통연대’는 “폐쇄적인 시장구조가 중고차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며 “시장을 개방해 공정한 경쟁을 장려하면 자연스럽게 시장이 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고차 시장 완전 개방 촉구 100만인 서명과 중고차 피해사례를 공유하는 온라인 소비자 참여운동도 진행 중이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원인은 중고차매매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이 오죽하면 현대차의 사업 확장을 박수치며 반기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경제체제로 택했으며, 건국이념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명확한 근거조차 없이 규제를 새롭게 만들어 중고차시장 사업 진출을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로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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