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후퇴로 “어느새 후진국이 됐다”는 자탄이 나오는 일본 도쿄의 거리 풍경. / 게티이미지 뱅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후퇴로 “어느새 후진국이 됐다”는 자탄이 나오는 일본 도쿄의 거리 풍경. / 게티이미지 뱅크

지난 9일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신문 니혼게이자이에 실린 “일본이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칼럼이 눈길을 끕니다. 원래 제목이 ‘어느새 후진국이 되었나’라는 이 칼럼을 소개한 한국일보에 따르면 “디지털·환경·젠더·인권 등 다방면에서 일본이 선진국이라 불리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고 탄식하며 그 원인으로 시대에 뒤처진 정치·행정 체제를 지목한 내용”입니다.

이 칼럼이 실리기 직전인 8일에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4·7재보선을 평가하면서 “지난 4년 동안 명확해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의 선진국이 아니었다”라고 썼습니다. 이번 선거 촌평 중 많은 사람 귀에 날카롭게 꽂힌, 그래서 백미(白眉)라고 할 만한, “패자는 여당이되 승자는 분명치 않다”라는 말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의 선진국이 아니다”라는 윤희숙의 토로 때문에 한국일보가 소개한 니혼게이자이의 칼럼을 한 번 더 읽어봤습니다.
 

<이번 칼럼 필자가 일본이 후진국으로 전락했다고 느낀 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였다. 백신 제조에서 일본은 미국, 독일, 영국, 중국, 러시아 같은 개발국에 끼지 못한 것은 물론 인도 같은 생산거점도 아니다. 백신 접종률은 세계에서 100번째다.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 라이브도어 전 최고경영자(CEO)도 트위터에 “일본은 백신 후진국”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에 대해 “기업도 정부도 눈앞의 이익만 좇는 안이한 ‘이노베이션(혁신)’에만 치중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본원적 ‘인벤션(발명)’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칼럼은 “디지털 후진국도 분명하다”며, (코로나 감염자) 접촉 확인 애플리케이션은 기능에 문제가 있었으나 이를 신속하게 파악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등 행정의 디지털화가 크게 뒤떨어졌다고 비판했다. 고속통신 규격 5G 경쟁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한때 특기였던 반도체는 미국, 한국, 대만에 뒤처졌다.
 

환경과 젠더, 인권 등 선진국이 지향하는 가치관 면에서도 일본은 뒤떨어졌다고 필자는 평가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유럽과 중국에 뒤졌고 전기자동차도 처졌다. 온실가스 저감 목표 설정도 늦고 구조전환을 해야 하는 각오도 부족하다. 성평등지수는 세계 120위권 후진국이다. 독일이나 뉴질랜드에서 여성총리가 코로나 시대에 활약했지만 일본에는 여성 정치인이 극소수다. 필자는 20명이나 되는 일본 게이단렌(経団連·한국의 전경련 격) 부회장에 여성 경영자가 겨우 1명 뽑혔다고 화제가 되는 현실을 착잡해 했다. 중국의 인권 문제나 미얀마군의 폭력적 진압 등 인권 이슈에 대해서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필자는 일본이 이렇게 된 배경으로 정치와 행정을 꼽았다. 정부가 책임도 지지 않고 창의력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거버넌스(통치체제) 자체가 문제라면서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과학적 정신과 인도주의에 입각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자본주의를 다시 단련하지 않는 한 선진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일갈했다.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한국이 생각만큼 선진국이 아니다”라는 윤희숙은 이 칼럼 필자가 한 것처럼 구체적 통계나 상세한 현황분석을 들어 자기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경제학자였던 만큼 통계로 분석하는 능력이 없어서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윤희숙도 “문제는 민주주의”라고 말합니다. “(이 정권 집권 후 4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국가의 많은 제도들이 망가졌으며, 그 뒤에는 분명 일부 국민의 강력한 지지와 다수 국민의 방치가 자리했습니다. 선거기간 동안 불거졌던 선관위와 공영방송의 편파성 역시 우리 민주주의가 사실 얼마나 허약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러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예”라는 게 윤희숙의 분석입니다.

니혼게이자이의 칼럼 속 ‘일본’을 몇 군데에서는 ‘한국’으로 바꿔도 큰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윤희숙의 글 마지막 부분을 읽어봅니다. “그러나 그래도 희망을 주는 것은, 대부분 국민의 눈높이가 망가진 정치보다 한참 위에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웃자란 민주주의가 이 정권에게 많은 상처를 입고 나동그라져 있지만, 결국 보다 건강한 성장궤도로 복귀할 것이라는 믿음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희망이 과연 실현될지, 한국이 민주주의-제대로 된-의 축복을 받아 선진국-제대로 된-이 될지 기대 반, 걱정 반인 나날이 적어도 내년 3월 대선 때까지는 계속되겠지요. 일본 걱정은 그다음에 하렵니다. 우리가 잘 되면 일본도 따라오겠지요. (한국경제신문은 니혼게이자이 칼럼을 소재로 쓴 사설 제목을 “‘어느새 후진국 됐다’ 日 탄식… 우린 더 걱정스럽다”라고 달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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