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로 돌아온 강하늘./ 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로 돌아온 강하늘./ 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여기, 10년 가까이 첫사랑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손수건을 건네 준 여자 아이를 기억에 담은 그는 성인이 된 후 용기를 내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녀에게서 온 답장 한 통에 지루했던 일상은 설렘으로 빛나기 시작하고, 그녀를 향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만남을 거부하고, ‘비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가능성 낮은 약속을 하게 된다. 그 후 남자는 매해 마지막 날 밤이 되면, 약속 장소에 나가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어쩌면 어린 시절 추억과 주고받은 단 몇 통의 편지만으로,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 한 여자를 10년 가까이 기다리는 한 남자의 순애보는 지나치게 영화적인 설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이 관객에게 닿고, 그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건 순수하고 우직하게 진심을 담아 열연한 배우 강하늘 덕이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는 만남과 기다림의 과정을 겪으며 서로에게 스며든 청춘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준 두 남녀가 ‘비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가능성 낮은 약속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강하늘은 극 중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지,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지루한 삼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영호 역을 맡아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한 남자의 변화와 성장을 담는다.

실제 자신의 모습을 캐릭터에 녹여내 한층 자연스러운 연기로 몰입을 높이는 것은 물론, 특유의 순수하면서도 ‘허당기’ 가득한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영호는 오롯이 강하늘이 만들어낸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청춘이다.

강하늘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청춘의 얼굴을 보여줬다./ 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강하늘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청춘의 얼굴을 보여줬다./ 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영화 ‘기억의 밤’(2017)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강하늘은 최근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그는 로맨스물을 택한 것에 대해 “관객으로서 이런 작품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며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완성된 영화는 어땠나.
“스크린으로 봤을 때 더 좋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내가 한때 느꼈던 감정들을 자꾸 떠올리게 했다. 그 느낌이 스크린에서 더 극대화된 것 같다. 상상했던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더 좋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단순하고 잔잔한 멜로 영화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예전에 봤던 ‘접속’ 같은 느낌도 들면서, 내가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는구나 싶었다. 또 관객으로서 이런 작품을 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나보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영호 캐릭터에 공백이 많아 자신의 모습으로 많이 채웠다고 했는데, 어떤 아이디어가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덧붙여서 전단지 받는 영호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데,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던 장면인지 강하늘을 만나 추가된 장면인지.
“감독님과 작가님이 강하늘을 조금 더 넣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실제 나와 77.6% 정도 닮은 것 같다.(웃음) 그래도 나는 영호처럼 애매모호하지 않고, 확실한 무언가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점이 다르지 않았나 싶다. 영호에 대해 정말 많은 부분이 비어 있었다. 감독님과 상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만들어갔다. 전단지 받는 건 사실 대본에 없었다. 대사 한마디 보다 잠깐 흘러가지만 디테일한 장면들이 그 캐릭터를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호의 반응이나 표정, 어떤 상황 안에서 작은 행동들을 넣어서 표현하려고 했다. 전작과 비교해서 나의 겉보다는 안쪽에 가까운 느낌이 조금 더 많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소희와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장면이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소희에게 빠져드는 영호의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며 연기했나.
“실제로 만나서 촬영한 것보다 편지로 소통하는 장면이 더 많았다. 그래서 서로 녹음돼있는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했는데, 그렇게 연기했던 게 실제로 만난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줬던 것 같다.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한 이미지가 더 오래 남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좋았던 부분이다. 촬영하면서 감독님에게 지금의 방식이 되게 좋다고 얘기한 적이 있을 정도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영호로 분한 강하늘 스틸컷./ 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영호로 분한 강하늘 스틸컷./ 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2003년과 2011년을 배경으로 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영호의 변화와 성장은 어떻게 담아내고자 했는지.
“영호를 하늘이로서 생각하고 다가갔기 때문에, 영화상 가장 최근의 모습은 지금의 나로 표현하고 싶었고, 과거의 모습은 20살이나 고등학교 때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호흡도 다르게 쓰고 싶었고, 목소리 톤에도 변화를 주고자 했다. 얼마나 다르게 표현됐을지 잘 모르겠지만, 노력은 했다.”

-열린 결말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첫 미팅 때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이 엔딩을 바꿀 의향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나는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독님과 작가님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쉬운 부분도 당연히 있을 것 같은데, 요즘 작품들이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주고자 하는 메시지나 장르적 재미가 확실한 편이지 않나. 그런 영화 사이에서 잔잔하고 여운을 주는 엔딩을 가진 작품으로 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호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건지,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배우 강하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나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본다면.
“‘일단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인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좋아해야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앞서 일단 하는 게 중요하더라. ‘Just do it’(그냥 하라)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일단 하는 거다. 과거에도 분명히 100% 옳은 선택만 했을 것이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도 분명 맞는 선택만 할 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후회해봤자 돌이킬 수 없다.”

강하늘이 선한 이미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강하늘이 선한 이미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미담 자판기’라는 별명도 있고, 강하늘 하면 대중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착하고 선한 이미지가 부담이 되진 않나. 또 미담을 들어보면 평소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으로 살고자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부담은 안 된다. 내가 거기에 짓눌려서 살지 않는다. 난 나답게, 강하늘스럽게 살고 있다. 하루하루 목표가 딱 하나다. 매일 생각하는 것인데, 나와 잠깐이라도 어떠한 시간을 공유한 사람들이 얼굴 찌푸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위해 크게 노력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나도 시간을 투자한 것이고, 그 사람도 시간을 투자해준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연기나 작품을 대하는 데 있어 꼭 지킨고자 하는 약속이나 다짐이 있을까.
“내가 맡은 역할이 작품보다 잘 보이는 건 싫다. 내가 맡은 역할이 그 작품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지금 나의 표현 혹은 연기가 작품 안에서 역할로서 해야 하는 선을 넘었나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또 역할보다 강하늘이 보이는 것도 싫다. 부드럽게 잘 연결되게 작품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덧 데뷔한 지 14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하고, 앞으로 어떻게 채워나가고 싶은지.
“14년이라니, 돌아보면 말도 안 된다는 생각과 기분이 든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좋은 작품만 만나겠다. 그렇게 쌓아가고 싶다. 좋은 작품만.”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 좋은 영화의 기준은 무엇인가.
“영화가 끝난 뒤 기분 좋은 마음이 그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영화 덕에 조금이라도 하루의 남은 시간들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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