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9 10:13
‘무기한 파업’ 깊어지는 택배 갈등… 표류하는 과로사 방지
‘무기한 파업’ 깊어지는 택배 갈등… 표류하는 과로사 방지
  • 송대성 기자
  • 승인 2021.06.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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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택배노조 “택배사, 수수료 인상에도 분류작업 인력 배치 1년 유예 요청”
국토부 “택배 노동자 분류작업 배제 위해 택배사 인력 충원 필요”
택배 노동자들이 택배사들에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류작업 인원 배치를 즉각 이행하라며 단체 행동에 나섰다. /뉴시스
택배 노동자들이 택배사들에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류작업 인원 배치를 즉각 이행하라며 단체 행동에 나섰다. /뉴시스

시사위크=송대성 기자  분류 작업을 둘러싼 택배사와 택배 노동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결국 결렬 사태로 번지면서 과로사 방지 대책 수립은 기약 없이 표류하게 됐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 9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복합물류센터에서 노조원 2,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오전 조합원 5,3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파업 찬반 투표에서 찬성이 전체 92.3%(4,901표)를 기록해 총파업이 가결됐다. 쟁의권이 없는 조합원들은 오전 9시 출근해 11시 배송을 시작하는 준법 투쟁을 하기로 했다. 

사회적 합의 결렬이 무기한 파업으로 이어지게 된 배경이다. 앞서 지난 8일 진행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에 CJ대한통운·롯데·한진·로젠 등 국내 4개 택배사 대리점 연합회가 불참하면서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대리점 연합회의 무리한 요구가 결렬로 이어지게 된 주된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국회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형식적으로는 대리점 연합회가 불참해 사회적 합의안을 도출할 수 없다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택배사들이 합의안 타결을 미루고 적용 시점을 1년 유예해달라는 것이 핵심 결렬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알려진대로 택배사들의 1년 유예 요청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서 “협상 테이블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집단 행동에 나선다고 해 사회적 합의에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다음 사회적 합의 기구 회의는 이달 15~16일로 잠정 예정됐지만 택배사와 택배 노동자 간의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분류작업이 여전히 택배 노동자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분류작업이 여전히 택배 노동자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 여전한 분류작업 부담 vs 인력 투입했는데…

택배업계 노사는 지난 1월 진행된 1차 사회적 합의에서 그간 택배 노동자가 해 온 분류작업을 택배사가 책임지게 했다. 당시 발표된 합의문에도 “과로사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의 기본 작업 범위에서 제외시키고 택배사가 분류작업 전담 인력을 투입해 그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고 명시됐다. 다만, 불가피하게 택배 노동자가 분류작업을 수행하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게 했다.

이에 따라 택배사는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했다고 주장한다. 국토교통부는 CJ대한통운은 약 4,000명, 롯데와 한진택배는 각각 약 1,000명에 달하는 분류작업 인력을 1월 말~2월 초 사이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택배노조는 분류작업이 아직도 택배 노동자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달 2~3일 전국 택배 노동자 1,1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84.7%(1,005명)가 여전히 분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별도 인력이 투입되지 않아 택배 노동자가 전적으로 수행하는 경우도 30.2%(304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노조 측은 지난 4일 참여연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1차 사회적 합의에 따라 CJ대한통운이 4월 택배 요금을 250원 인상하면서 1~2월 대비 요금이 150원가량 올랐지만 노동자 수수료는 단 8원만 증가했다면서 요금 인상이 분류 작업 인력 충원이 아닌 택배사의 배 불리기로만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분류작업 인력 충원은 단순히 택배 노동자의 노동 시간 단축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따른다.

민생경제연구소 안진걸 소장은 “지금도 많은 택배 노동자들이 새벽부터 출근해 돈 한 푼 안 받고 분류작업을 한다. 이 때문에 녹초가 된 상태에서 배송에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라면서 “최소 14~15시간 노동하다보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이어 “분류작업 인력을 마련하면 약 1만명에 달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택배사의 주장대로 유예기간을 둔다면 그 기간 안에 또 다른 과로사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택배사가)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인력 투입을 미루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도 분류작업 인력 증원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택배 노동자의 분류작업 배제를 위해서는 자동분류기가 있는 CJ대한통운은 추가로 4,000여명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면서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한진과 롯데의 경우 각각 3,000여명의 인력 충원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배사들의 분류작업 인력 배치가 지연되면서 또다시 택배 노동자가 쓰러졌다. /뉴시스
택배사들의 분류작업 인력 배치가 지연되면서 또다시 택배 노동자가 쓰러졌다. /뉴시스

◇ 또 쓰러진 노동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과로사 위험

작업 환경 개선에 속도가 붙지 않으면서 과로사 위험에 노출된 택배 노동자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안고 업무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한 명의 노동자가 쓰러지는 상황을 맞이했다. 

지난 13일 택배노조는 롯데택배에서 근무하던 임모(47) 씨가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져 현재 매우 위중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임씨는 하루 250개, 월 6,000개에 달하는 물량을 배송했고 3월경부터 분류인력이 투입됐지만 분류작업은 여전히 함께 진행했다. 또 노조 가입 전 일 15.5시간, 주 평균 93시간의 노동을 했고 노조 가입 후에도 주 평균 8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1차 사회적 합의 기구 합의문에 명시된 ‘택배기사의 주 최대 작업시간 60일, 일 최대 작업시간 12시간 목표’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사실상 사회적 합의에도 근무 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분류작업 인력 투입의 가장 큰 목적은 과로사 방지에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16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로 인해 쓰러졌다. 사회적 합의 기구까지 마련된 상황에서 더는 지체해선 안 될 문제다. 택배사들의 빠른 분류인력 충원이 과로사를 줄일 초석인 것이다.

택배노조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택배사들의 몽니로 인해 여전히 합의되지 못하고 현실에서 택배 노동자들은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롯데택배는 과로로 쓰러진 택배 노동자와 가족에게 당장 사과하고 사회적 합의와 단체협약 체결에 즉각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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