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21대 총선이 있었던 2020년 우리 국민들의 평균 연령이 42.8살인 반면, 21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평균 연령은 54.9살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2030 세대는 13명으로 4.3%였고, 50대 이상은 249명으로 83%였다. 전체 유권자 중 30대 이하는 33.8%였고, 50대 이상은 47.0%였다. 특히 50대 당선자는 177명으로 59%를 차지했으나 유권자 비율은 19.7%였다. 2018년 국제의원연맹(IPU) 보고서에 의하면, 40세 미만 국회의원의 대륙별 비율은 유럽 23.5%, 미주 19.2%, 아프리카 15.0% 순이었고, 가장 낮은 아시아 지역도 10.8%였으며, 세계 평균은 15.5%였다.’

위 통계 수치들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보게. 우리나라 정치에서 청년들이 얼마나 과소대표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네. 21대 국회가 20대보다 좀 더 젊어졌다고 하는데도 40대 미만 국회의원은 5%도 되지 않아. 50대 이상이 절대다수인 국회에서 청년들의 꿈과 좌절, 고통이 국정에 제대로 반영되기는 어렵지. 그러니 5년 전 촛불집회의 주축이었고 스스로 ‘진보’라고 규정했던 청년들의 분노가 돌풍으로 변해 ‘이준석 현상’을 만들어낸 것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야.

‘수구 꼴통 꼰대들’의 정당으로만 여겨졌던 국민의힘이 2030 세대 청년들의 분노에 힘입어 4·7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하고, 35살 청년 이준석을 대표로 선택한 것은 분명 우리나라 정당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야. 4·7 재보선 전에 2030 세대 청년들이 국민의힘 후보를 찍고, 보수야당을 계속 변화시키는 핵심 역할을 할 거라고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나? 난 국회의원도 한 번 하지 못한 35살 청년 이준석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된 것도 하나의 역사 발전이라고 생각하네. 왜냐고? 어느 나라든 보수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진보도 함께 발전할 수 있거든. 보수가 수구를 털고 중도 쪽으로 이동해야 진보도 지금보다 더 왼쪽으로 갈 수 있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의 중도보수화가 꼭 성공하길 바랄 뿐이지. 그래야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지금보다 훨씬 더 폭이 넓어질 수 있거든.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들을 보면 이준석 대표는 사회를 난폭한 경쟁 시장으로 보는 개인주의적, 자유시장적 보수주의자인 것 같네. 미국의 상원의원이었던 골드워터와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대처 수상 같은 사람들이 40~50년 전에 표방했던 철지난 보수주의야. 그가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젊은이가 어떻게 저런 끔찍한 생각을 별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는지 의아한 생각도 들기는 해. 19세기 말에 적자생존의 법칙을 외쳤던 사회진화론자들의 구호인 ‘재빨리 선수 치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를 철저하게 내면화하고 있거든. 각자도생과 승자 싹쓸이(Winners take all)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여성이나 청년 할당제는 불공정하다고 믿는 신자유주의자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언제까지 그를 지지할 수 있을까?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죠. 또한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양육강식입니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죠. 미국은 이런 정글의 법칙, 양육강식의 원리를 최소화하려고 별로 노력하지 않아요.” 그래서 대한민국을 미국 같은 나라로 만드는 게 그의 꿈인지 궁금하기도 해.

하지만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이준석 대표가 뼈 속까지 보수적이라고 비난할 필요는 없네.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젊은이라면 ‘박근혜 키즈’로 선택받지도 못했겠지. 그의 개인주의적 보수주의는 비판해도 이준석을 대표로 선택한 보수정당 국민의힘의 변신은 환영해야 할 일일세. 동시에 이준석과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믿는 신자유주의적 정글자본주의가 이 나라를‘이빨과 발톱으로 붉게 물든’ 헬조선이 되지 않게 막기 위해서는 진보정당들도 함께 변해야 하네. 이제 진보진영도 30대 대표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야 하네. 생명 있는 것들은 그게 뭐든 나이 들면 단단해지고 뻣뻣해질 수밖에 없어. 유연성이 떨어지지. 이미 굳어버린 머리와 가슴으로는 ‘이준석 현상’을 만들어낸 국민들, 특히 2030 세대 젊은이들의 열망을 제대로 읽고 대응할 수가 없네. 그러니 싫든 좋든 진보진영도 세대교체를 할 수밖에.

30대 젊은이가 거대야당의 대표가 되었다는 것은 낡은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뜻이야. 어느 정치 세력이든 ‘지금 여기’의 정치 상황을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믿고 시민들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야만 선택을 받을 수 있네. 지난 잘못을 진솔하게 반성하면서 국민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세력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거야. 혁명이 사라진 시대에는 조금씩 고쳐가는 것도 역사 발전임을 잊지 말게. 이은봉 시인의 <바꿔야지 고쳐야지> 읽으면서 좋은 미래 꿈꾸길 바라네.

바꿔야지 고쳐야지 하며 살아온 세상이다/ 그렇게 살아온 세상이 벌써 반백년을 훌쩍 넘고 있다/ 조금씩 달라지나 싶었는데, 조금쯤 변하나 싶었는데/ 어느새 뒤로 돌아가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매일매일 걱정하다가 나 먼저 바꿔야지 나 먼저 고쳐/ 야지 하고 솔선수법한 지도 제법 오래전이다/ 이런 정도로 어떻게 좋은 세상 만드나/ 억지라도 오늘을, 내일을 믿어야지/ 사람을, 역사를 믿어야지/ 사람은 조금씩 저 자신을 고쳐 나가는 존재, 역사는/ 조금씩 저 자신을 바꿔 나가는 존재/ 그렇지 그렇게 믿어야지 그렇게 중얼거려야지 하며/ 이런저런 걱정에 빠져 있다가 보면/ 더러는 뒤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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