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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금기시 되던 김정은 건강, ‘공론화‘ 나선 속사정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금기시 되던 김정은 건강, ‘공론화‘ 나선 속사정
  • 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 승인 2021.06.3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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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북한 체제에서 최고지도자의 건강문제는 거론 자체가 터부시된다. ’수령‘이나 ’최고존엄‘ 등으로 불리는 그의 절대 권위를 훼손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이른바 유일영도 시스템에서 최고지도자의 건강이상이나 변고는 북한 체제의 존망이 달린 문제로 간주될 수도 있다. 최측근 몇 사람만이 그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데다, 극비로 처리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의 접근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그런데 그런 금기를 깨트리는 듯한 움직임이 최근 벌어졌다. 그것도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를 통해서다. 조선중앙TV는 6월 25일자 보도에서 “총비서 동지께서 수척하신 모습을 볼 때 인민들은 제일 가슴이 아팠다”는 한 주민의 인터뷰 내용을 방영했다. 이 주민은 “모든 사람들이 다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고 한다”며 걱정스런 마음을 드러냈다. 

며칠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무위 연주단 공연실황을 관람한 장면이 TV를 통해 공개됐는데, 이에 대한 반향을 전하는 과정에서 ’수척한 모습‘ 등 최고지도자 건강문제와 관련한 언급이 그대로 방영된 것이다.

북한의 이런 모습은 이전과 비교해보면 놀랍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는 물론이고 김정은 위원장 체제 들어서도 이들의 건강 문제를 직접 언급하거나 이를 암시하는 표현은 등장한 적이 없다. 다만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사망 이후 추모나 업적 찬양·선전 차원에서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국방이나 통일·민생 문제의 현장을 챙겼다는 식의 보도가 예외적으로 나왔다.

이번의 경우 한 주민의 코멘트 형태로 김정은 건강과 관련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북한 매체의 실수나 우발적 상황일 가능성은 없다. 관영 선전매체는 보도에 앞서 철저하게 감독을 하는데다, 특히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내용은 사소한 잘못조차 용서하지 않는 엄격한 감시체제가 이중, 삼중으로 작동한다. 이번 보도의 경우 노동당 선전선동부 차원의 정교한 검토와 작업이 이뤄졌을 게 틀림없고, 김정은 위원장의 사전 재가 또한 거쳤을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의 보도가 더 눈길을 끄는 건 서방의 대북 매체가 김정은 건강 문제를 거론한데 대한 반응이나 대응 차원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는 지난 6월 8일 보도에서 김정은의 손목시계 가죽밴드에 주목했다. 지난해 11월에 촬영된 사진과 비교할 때 스위스제 고급시계 IWC를 찬 김 위원장의 시곗줄이 더 꽉 조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NK뉴스는 “정보 당국은 살이 빠진 것으로 보이는 김정은을 예의주시 중”이라고 전했다. 손목이 가늘어진 것이 다이어트나 건강이상의 징후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북한의 과거 행태로 보면 주민들이 볼 수 없는 조선중앙통신이나 여타 매체를 이용해 “서방 정보기관의 모략극”이라는 등의 격한 비난 반응을 내놓거나 아예 무시하며 침묵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번에는 18일 만에 주민 반향 형태로 사실상 시인하는 듯한 보도를 내보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여전히 활발하게 노동당 회의 주재 등을 통해 공개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란 점에서 북한 당국의 ‘건강’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은 이채롭다.  

때마침 북한이 노동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당 직책(총비서) 바로 아래 ‘제1비서‘를 둔다는 걸 명시한 상황이라 그의 건강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북한 스스로 제1비서를 총비서의 ’대리인‘이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2인자일 가능성과 함께 유사시 권력을 넘겨받아 북한 체제를 통치할 후계자를 지명하려는 것이란 관측이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15일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생일 추모행사에 불참함으로써 건강이상설을 증폭시켰다. 당시 사망설까지 나왔지만 그해 5월 1일 공개석상에 나왔고, 공백 기간 건강 문제와 관련한 어떤 일이 발생했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37살로, 최고지도자 반열에서는 매우 젊은 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이상 문제를 거론하고 사망설까지 주기적으로 나돈다는 건 비정상적일 수 있다. 더욱이 명확한 근거나 논리적 추론 없이 추정이나 이념적 편향에 따라 ‘믿거나 말거나’식 미확인 주장을 제기하는 건 문제다. 한국은 물론 서방 언론의 관련 보도가 그동안 빗나간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북한 관련 보도의 신뢰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유의해야 한다는 경고도 있다.

물론 북한 최고지도자의 건강 문제가 북한 체제의 향배나 한반도 안보 정세에 미칠 파장이 막대하다는 점에서 주시해야 할 핵심 사안 중 하나라는 지적도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모두 심근경색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점에서 가족력을 유의해서 봐야 한다는 조언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문제와 관련한 이런저런 궁금증이나 과도한 관심, 엇갈리는 언론보도의 근본 이유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기인한다는 점도 일리가 있다.

미국 매체인 NK뉴스에 발맞추듯 북한 관영매체가 관련 보도를 내놓은 것은 김정은 체제가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비록 외부의 부담스런 시선에 맞서기 위한 전술적 차원의 대응이라 해도 김정은 건강 문제와 관련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건강 문제를 ’인민을 위한 헌신의 리더십‘으로 탈바꿈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이번 시도가 통제 가능한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지 아니면 건강 문제와 관련한 금기를 깨트리는 첫걸음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런 움직임이 효과를 거두려면 김정은 위원장이 식량 문제 해결이나 코로나19 백신 확보 같은 민생문제를 챙기는 데서 일정한 성과를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12월 김정일 사망 10년이 곧 김정은 집권 10년이란 점에서 주민과 엘리트들은 그 공과를 따져보려 할 것이다. 그 성적표에 따라 김정은의 건강 문제에 대한 주민의 인식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