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화상병을 막고자 긴급 방역제 공급에 나섰던 괴산농업기술센터. 그러나 이들이 배포한 제품이 오히려 농가를 울상짓게 했다. /괴산=송대성 기자
과수화상병을 막고자 긴급 방역제 공급에 나섰던 괴산농업기술센터. 그러나 이들이 배포한 제품이 오히려 농가를 울상짓게 했다. /괴산=송대성 기자

시사위크|괴산=송대성 기자  ‘식물 구제역’으로 불리는 과수화상병 확산에 과수 농가에 긴장감이 돌고 있는 가운데 충북 괴산 지역에서 성분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긴급 방제약으로 공급했다가 부작용을 호소하는 농가가 발생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심지어 해당 제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절차가 배제된 것은 물론 제조사 특혜 의혹까지 불거져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과수화상병은 사과·배나무 등 장미과 과수에서 주로 발생하는 세균성 전염병이다. 병이 들면 잎, 새순, 꽃, 가지 열매 등이 시들고 갈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는다. 전염력이 매우 강해 발병하면 과수원 전체를 매몰해야 하고, 3년간 과수를 심을 수 없어 농가에서 가장 경계하는 병이다.

괴산군농업기술센터는 지역 과수 농가에서 이러한 과수화상병이 발생하자 지난달 중순 500여 농가에 과수화상병 방제약을 긴급 보급했다. 그러나 해당 방제약을 사용한 농가에서 열매에 반점이 생기고 잎이 누렇게 변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피해를 입은 한 농가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과수화상병 예방해야 한다고 방제약을 보급한다 해서 받았다. 그런데 해당 약을 사용한 이후 반점이 생기고 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라며 “반점이 생긴 건 사실상 상품 가치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번 피해로 수확량이 지난해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게 생겼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다른 농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농업기술센터의 말만 믿고 방제약을 살포했는데 오히려 피해만 키웠다고 토로했다. 

과수화상병의 경우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농촌진흥청에서도 성분·성능이 입증된 약제 리스트를 작성해 해당 제품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괴산농업기술센터에서 배포한 제품을 사용한 이후 반점이 생기는 등의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괴산=송대성 기자
괴산농업기술센터에서 배포한 제품을 사용한 이후 반점이 생기는 등의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괴산=송대성 기자

하지만 <시사위크> 취재 결과 괴산농업기술센터에서 농가에 배포한 방제약은 농촌진흥청에서 권장하는 과수화상병 방제사용 가능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안정성과 신뢰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제품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방제약이 아닌 단순 영양제에 불과한 제품이었다. 

해당 제품을 사용한 농가도 “방제약이라고 들었는데 열어보니 기름덩어리 같았다. 미량요소 복합비료라 어떠한 성분이 포함됐는지도 알 수 없다”라며 제품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농촌진흥청에서 권장하지 않은 제품을 사용했다가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으면 보상에도 걸림돌이 생긴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과수화상병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약제를 사용한 이후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경우 손실보상금이 경감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방제약으로 둔갑한 영양제… 누가, 왜?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은 괴산농업기술센터와 군자농협, 불정농협, 충북원예협동조합 괴산지소가 협의를 통해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 방제약으로 총 4개 제품이 물망에 올랐다. 이 가운데 3개 제품은 농촌진흥청이 권장하는 방제약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제치고 문제가 된 A사의 제품이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제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예산을 집행하는 농업기술센터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괴산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A사의 제품을 두고)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찬반 의견이 있었다”라며 “농협 조합에서 해당 제품을 사용하자 해서 사실상 그 의견을 존중해준 것이다. 우리가 택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분 및 효능에 대한 검토 등의 절차도 사실상 전무했다.

A사의 제품을 접하게 된 경로도 서로 말이 맞지 않았다. 충북원예협동조합 관계자는 자신이 충북의 한 농협을 통해 직접 알아봐 해당 제품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지만, 해당 농협 측은 군자·불정농협 담당자와 선후배 사이라 그들에게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영양제에 불과한 제품을 과수화상병 약제로 소개했다. /독자 제공
영양제에 불과한 제품을 과수화상병 약제로 소개했다. /독자 제공

특혜 의혹도 불거졌다. 총 4개 회사의 제품이 긴급 방제약 리스트에 올랐지만 A사만 협의에 참석해 제품에 대한 설명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충북원예협동조합 관계자는 “협의가 진행된 날 우연히 A사 직원이 충주의 한 농협에 있다고 해서 설명을 부탁했던 것뿐이다”라고 우연을 강조했다.

과수 농가가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A사의 제품을 지지했던 한 농협 관계자는 “우리 지역에는 (반점 등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만 문제가 생겼다”며 피해 지역과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과수화상병으로 고심하고 있는 다른 지자체 역시 괴산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남 지역의 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괴산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거기서 사용한 제품은 인터넷에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고 들어보지도 못한 제품이다”라며 “대부분의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농촌진흥청 방제 가능 약제 리스트에 있는 제품을 사용한다. 왜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한 지 모르겠다”라고 의아함을 보였다. 

또 다른 지역의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A사 관계자 우리 지역 농가를 돌면서 해당 제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성분이나 효과가 불분명해 도입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라며 “농가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제품을 제조한 A사에 과수화상병 예방 효능과 부작용 등에 대해 질의했지만 “괴산군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괴산군 역시 “아직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라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괴산농업기술센터의 예비비로 진행한 사안이라 업체 선정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농협과 농업기술센터의 말만 믿은 과수 농가. 그러나 미진한 사태 파악과 제품 선정에 나섰던 사람들의 책임감 결여로 인해 피해는 고스란히 과수 농가가 떠안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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