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이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여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합니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이 정권은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입니까.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를 하면서 읽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의 한 부분일세. 꽤 긴 출마 선언문을 읽으면서 이렇게 보수도 아니고 수구에 가까운 정치의식을 가진 분이 어떻게 이른바 ‘진보’ 촛불 정부의 검찰총장을 하게 되었는지 의아해지더군. 1960년생이면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인데 세상을 보는 눈은 우리 아버지 세대랑 비슷한 것 같아서 참 씁쓸하더군. 친구라면 정치에 뛰어들지 말고 함께 노장이나 읽으면서 살다 가자고 말해주고 싶었네.

먼저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동의하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자유주의 경제인 자본주의 체제가 많은 사회문제를 만들어내고, 노동자와 여성들의 참정권 요구가 점점 거세지는 와중에 당시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인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도입된 게 보통선거제였으니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시작했다는 말은 맞아. 그게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이거든. 유럽에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국민 누구에게나 선거권을 주는 보통선거 제도가 확립된 게 20세기 전반기야.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의 역사도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미국에서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훨씬 뒤인 1960년대고. 60년 전이지.

하지만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라는 주장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 명색이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인데도 무슨 말인지 헷갈려.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가 독재나 전제가 아니고, 독재자나 하나의 정당이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 독점하는 게 독재이고 전제이거든. 옛 소련이나 중국, 베트남, 쿠바, 북한 등이 진짜 민주주의라고 자랑했던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 현 정권이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자유’를 빼고 독재나 전제정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너무 뻔뻔하고 염치없는 주장 아닌가. 그의 말대로라면 독재자가 임명한 검찰총장이 독재자에게 반기를 들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꼴이니 인류 역사에 그렇게 너그럽고 자애로운 독재자도 있었나? 60년생이면 박정희의 유신 독재와 전두환 시대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자유민주국가에서는 나의 자유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와 존엄한 삶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입니다.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한 것입니다. 승자 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연대와 책임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민의 권리입니다.”라고 주장도 하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는 하나가 아니고 다양하며,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 중에 진짜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자유와 평등, 연대를 함께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라고 부르네. 쉽게 풀이하면, 사회주의 가치들을 민주주주의적으로 실현한다는 뜻이야. 사민주의자로 많이 부르지. 우리가 흔히 진짜 복지국가라고 부러워하는, 실제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북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이지.

자본주의는 어디에서든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과 권력이 주어질 수밖에 없어.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시장을 견제하고 규제함으로써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 해소해야만 하네. 우리나라도 산업화와 디지털화로 인해 생긴 많은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거야. 지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정부를 “독재요 전제”라고 비판할 수는 없는 거지.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