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시계, 차키, 스마트 워치, 안경.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이같은 물건에 숨은 ‘또 다른 눈’이 나를 몰래 지켜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생활필수품으로 위장한 불법 촬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불법 촬영 노출에 대한 공포감은 여름철 호러 영화에서 느끼는 그것보다 클 수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이같은 피해를 입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에 대해 의심하기 어려워서다. 그러나 초소형 카메라(변형카메라)를 이용한 범죄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생활 속 물건까지 의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국회는 초소형 카메라를 관리하는 법안을 내기에 이른다. 

각종 형태의 초소형 카메라(변형카메라)는 손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이 카메라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 수 없어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변형카메라 관리법'을 찬성하는 이들은 이런 맹점을 없애야 범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각종 형태의 초소형 카메라(변형카메라)는 손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이 카메라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 수 없어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변형카메라 관리법'을 찬성하는 이들은 이런 맹점을 없애야 범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각종 형태의 초소형 카메라(변형카메라)를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자상가에 직접 방문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찾으면 손쉽게 구매가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구매 목적을 묻지 않는다. 본지 기자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변형카메라 구매를 시도했을 때, 구매자 정보나 구매 목적을 묻는 란은 존재하지 않았다. 변형카메라를 구매해서 어떤 일에 사용하는 지 알 수 없는 셈이다. 

◇ 재범율 높은 불법촬영 범죄… 해마다 증가

‘변형카메라 관리에 관한 법률안’(변형카메라 관리법)에 찬성하는 이들은 변형카메라가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해마다 불법촬영 및 디지털 성범죄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법률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지난 6월 15일 발표한 한국의 디지털성범죄 실태를 조사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보고서에 시계 형태의 카메라로 피해를 본 이예린 씨(가명)의 사례가 담겨 있었다. 유부남 상사가 선물한 탁상 시계를 침실에 뒀는데, 상사는 이 시계를 통해 이씨를 촬영했다. 가해자는 징역 10개월 형을 받았지만, 이씨는 우울증 등으로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실제로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 적발 건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법무부에서 발간한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2008년 585건이었던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는 2017년 6,615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또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은 2013년 신상동록 범죄에 처음 포함됐는데, 2013년 412건이 등록된 이후 2018년에는 2,388건으로 5.8배 급증했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는 동종 범죄로 재등록되는 비율이 높다. 해당 범죄로 원등록된 사건은 428건인데, 이 중 동종 범죄로 재등록된 건수가 321건(75%)에 달한다. 또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인들이 강제추행(36건)과 강간으로(14건) 이어지기도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신상등록 대상자 중 30대 이하가 45.1%로 가장 많았다. 재범율이 높으며, 다른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 죄질이 나쁘다는 의미로도 읽혀진다. 문제는 현행 법 체계상으로는 이들을 ‘사후 처벌’하는 방법 뿐,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성폭력 범죄 유형별 발생건수를 살펴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은 해마다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법무부 '2020 성범죄백서'
성폭력 범죄 유형별 발생건수를 살펴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은 해마다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법무부 '2020 성범죄백서'

◇ 현실적 대안 ‘이력 관리’… “문제 발생하면 찾기 위한 것”

하지만 현실적으로 변형카메라 판매 금지 법안을 제정하기는 어렵다. 총, 도검류, 전자충격기의 경우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물건’으로 분류돼 법으로 따로 규제할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공공 안전을 해치는 물건’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현실적인 대안으로 변형카메라 판매자 및 구매자 등록, 대여·양도 금지, 도난·분실 신고, 제조 방법 게시·유포 금지 등을 담은 ‘변형카메라 관리에 관한 법률안’(변형카메라 관리법)이 발의됐다. 해당 법안에는 변형카메라 판매 이력을 정부 시스템에 등록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변형카메라 유통을 관리하자는 취지다. 

찬성 입장을 밝히는 이들은 대부분 불법촬영이나 디지털 성범죄는 ‘사후 처벌’로는 부족하고,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법촬영 된 사진이나 영상물은 주로 온라인에 유포되는 디지털 성범죄로 연결되는데, 이 경우 사후 처벌이 있더라도 유포된 영상은 삭제하기 어려워 피해 복구 역시 힘든 상황이다. 이에 ‘변형카메라 이력 관리’를 통해 불법촬영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자는 것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변형카메라 규제는 디지털 성범죄를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러 차례 논의돼 왔다”며 “디지털 성범죄는 영상이 한 번 유포되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고, 재유포 가능성이 높아 완전한 삭제가 어렵기 때문에 사후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 역시 “불법촬영은 갈수록 교묘해져 안경, 단추, 신발의 외양을 한 변형카메라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누구나 인터넷에서 간단히 변형카메라를 구입할 수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불법촬영물이 한 번 유포되면 그것을 완전히 삭제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사후처벌 뿐 아니라 사전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인' 권창범 변호사는 “카메라 자체가 아닌 범죄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변형카메라가 범죄행위에 악용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그 유통경로에 대해 일정 규제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물건 자체를 사전 규제하는 법과 차이가 있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대권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해당 법안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1일 여성 안전을 위한 정책 공약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변형카메라 구매이력 관리제’는 정부 또는 지자체가 변형카메라 판매자 등록제를 시행하고, 구매자가 구매할 때 본인 확인을 의무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은 카메라 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반대 목소리로 인해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을 발의한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법안이) 자꾸 규제라고 표현되는데, (변형카메라 취급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어디서 쓰고 있는지 파악해 문제가 발생하면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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