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사진 공부 시작한지 벌써 7년이 넘었네. 요즘도 한 달에 한번 사진작가인 선생님 만나 사진 리뷰를 받고 있지. 친구들에게 아직도 사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면, 휴대폰으로도 쉽게 찍을 수 있는 세상인데 뭐 그렇게 공부할 게 많냐고 놀리네. 그러면 웃고 마네만 고희에 가까운 노인에게 사진공부가 쉬운 것은 아니야. 내가 선택한 주제랑 관련된 사진을 찍어 가면 사진 한 장 한 장 유심히 보면서 선생님이 꼭 묻지? “왜 이걸 찍었죠?” 사진들을 통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이야.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 자신에게 계속 묻게 되네. 이 사진을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왜 이 장면을 내가 꼭 찍어야 하는가? 그러면서 내가 가진 모든 예술적 감성과 열정과 에너지를 다 작품에 쏟아부으면서 셔터를 누르지.

오늘은 왜 사진공부 이야기로 시작하냐고? 무슨 일을 시작하든 먼저 배워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야. 특히 이번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지만 정치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은 분에게 『논어』「위정편」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불사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도 들려주고 싶고.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인데, 사실 요즘 출마 선언 이후 윤석열 씨의 말과 행동을 보면 위태위태하거든. 우리 선생님이 나에게 왜 이 사진을 찍었냐고 묻듯, 그에게 왜 정치를 시작했고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묻는다면 그가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기도 하네. 대통령이 되면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비전은 없고 상식에 어긋나는 발언들만 하고 있는 모습이 딱하기도 하거든.

‘대구 민란’ 발언도 문제가 많지만, 가장 충격적인 발언은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했던 52시간제 비판과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이었네.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난 이 기사를 읽으면서 그가 경제 공부는 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제반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네.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이 늦게나마 왜 ‘주 52시간제’를 여야 합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지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평균보다 훨씬 많은 시간 일을 하고 있는 일중독자들(Workaholics) 나라 대한민국을 저런 노동관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 수준과 행복도가 경제 수준에 비해 극도로 낮은 이유는 장시간 노동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네.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BLI)>는 주거, 소득과 소비, 고용, 가족과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 안전,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11개 영역에 대한 24개 지표로 구성되는데,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40개국 중 2017년 29위, 2020년 30위였네. 평균 이하라는 뜻이지. 특히 삶의 만족, 건강, 일과 균형, 환경 영역은 각각 33위, 36위, 37위, 40위로 아주 나쁜 상황이었네. 이들은 모두 노동 시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영역이야. 외국인들로부터 일중독자라고 놀림을 받는 사람들의 행복감이 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해.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일이 많고 여가와 휴식이 부족한 나라에 사는 타임 푸어(Time Poor)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더 이상해. 그래서 삶의 질 수준을 높이려면 먼저 일하는 시간을 북구 유럽이나 독일은 아니더라도 일본 수준으로는 줄여야 하는 거야.

지금 우리 인류는 어쩌면 현대에서 탈현대로 나아가는 문명의 전환기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네.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인공지능(AI)의 발달과 그로 인한 대대적인 일자리 축소, 기후위기와 전 지구적인 기후 재앙, 탄소중립 사회로의 순조로운 전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 사회안전망의 재정비, 다중격차로 인한 사회 균열과 재통합,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팬데믹 등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 물론 대통령이 저런 사회문제들의 세세한 내용을 전부 다 잘 알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대강 이해하고 있어야 하네. 그러니 정치를 하려면 많은 공부를 해야 할 수밖에. 게으르거나 배우기 싫어하는 사람이 정치에 나서는 것은 공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인류와 국민에게 미치는 해악이 더 커.

마지막으로 정치에 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배움을 찬양한다>의 첫째 연을 들려주고 싶네. “배워라 가장 단순한 것을/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에게/ 결코 너무 늦은 법이란 없다!/ 배워라 가나다라를,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듯 보여도/ 먼저 배워라! 새삼스럽게 무슨 공부를, 따위의 말은 하지 말라./ 시작해라! 당신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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