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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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서예진 기자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관계 경색 국면을 2021년 도쿄 올림픽도 풀지 못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 제한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이 일본의 안보를 위협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수출 규제는 2019년 한국 대법원의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배상 판결로부터 시작됐으며, 한일 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 일본, ‘안보 위협’ 이유로 경제 보복

실제로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안보 위협’을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지만, 초반부터 해당 조치가 과거사와 연계됐다는 점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던 2019년 7월 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출 규제에 대해 “국가와 국가 간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는 해당 인터뷰에서 “(수출 규제는) 자유무역과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요미우리신문은 같은 날 다른 기사를 통해 수출 규제 조치는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다양한 대항 조치를 검토한 결과라고 전하기도 했다. 

일본은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한일 간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이에 강제 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 판결은 한일기본조약에 위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한일기본조약은 양국 정부 사이의 채무 관계를 해결하는 조약이므로, 개인에 대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보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노 재팬’)이 벌어졌다. 2019년 11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한 비율이 72.2%을 기록했다. 지역·연령·이념성향·정당지지층을 가리지 않고 상당수가 일본에 대한 비호감을 드러낼 정도로 여론이 악화됐다.

◇ 수출 규제, ‘소부장 국산화’ 나비효과

일본은 반도체의 주요 소재·부품인 플루오린플리이미드(FPI), 포토레지스트,(PR), 에칭가스(HF) 등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 이에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입에 의존했던 국내 반도체 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한국이 소부장 국산화에 뛰어든다 해도 최소 1~2년은 족히 걸릴 것이며, 영원히 대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당시 ‘소부장 독립’(소부장 국산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2주년이었던 지난달 1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 당시 문 대통령이 “지금이 소부장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승부처”라며 강한 대응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박 수석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와 정부는 국민적 분노와 다르게 ‘외교적 방법에 의한 해결’을 고려했고, 대통령 메시지 초안도 이같은 기조로 작성됐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참모 대다수 의견이 반영된 메시지 초안을 보고 침묵했다. 문 대통령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지금이 바둑의 승부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 나는 지금이 소부장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승부처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런 메시지를 건의할 수 있느냐”고 질책했다. 

결국 문 대통령의 의지로 소부장 국산화가 추진됐다. 그리고 2021년 6월 기준으로 액체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기체 불화수소, 반도체 절삭장비, 고순도 염화수소 등이 국산화됐다. 수출 규제 사태 이후 소부장 국산화와 소재강국 실현을 목표로 연구해온 한국재료연구원(KIMS)은 지난 17일 성과 발표를 통해 소부장 국산화로 인해 구매 단가가 내려가고 국제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전한 바 있다.

/그래픽=김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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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갈등 전선 확장… 정상회담 연이어 무산

악화된 한일관계는 한일 지소미아(한일 GSOMIA·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소미아는 2016년 11월 23일 체결된 한일 간 군사협정으로,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맞대응 카드로 지소미아 종료를 검토했다.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이 전선을 넓혀가고 있는 모양새다. 

또 코로나19 발발 당시 일본 측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비자 정책을 중단하자 한국 정부도 일본인들에 대한 무비자 정책을 중단하는 등 양국 간 무비자 정책 갈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양국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 한국의 독도 방어훈련 문제, 한국의 주요 7개국(G7) 참여 등을 두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그리고 지난달 말 개최한 도쿄올림픽 등을 계기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G7 정상회의에서 한일 실무진은 공식 회담이나 약식 회담을 추진했지만, 일본 측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도쿄올림픽 계기 문 대통령 방일 및 한일정상회담 역시 청와대는 ‘대화는 열려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한일 외교 당국 역시 정상회담 실현을 위해 물밑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협상 막판에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 공사가 문 대통령을 겨냥한 성적(性的) 망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일 관계는 더욱 험악해졌다. 

적극적으로 회담을 추진해 온 청와대조차 내부에서 ‘꼭 참석해야 하느냐’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됐고, 일본 정부는 소마 공사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한국 측은 정상회담 추진 조건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회의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한일 간 실무진 논의 결과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협상을 중지했다. 소마 공사의 망언 이전에도 문 대통령 방일에 대한 여론은 좋지 못했다. 지난 6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방일에 반대하는 의견이 60.2%를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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