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약 15km에 이르는 국가 하천인 경기도 오산천은 과거 5급수에 해당할만큼 더러웠다. 하지만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공급되는 깨끗한 물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오산천은 수달과 백로가 찾아올만큼 깨끗해졌다./ 사진,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오산·기흥=박설민 기자  초등학생 시절 미술시간, 선생님들은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그림그리기의 주제로 제시해주곤 했다. 그때마다 많은 아이들은 공장에서 나오는 회색빛 연기와 폐수로 오염된 하늘과 강의 모습을 그리곤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공장’과 ‘기술’하면 자연스레 환경오염이 떠오르곤 한다. 실제로도 수많은 제품을 단시간에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에선 어쩔 수 없이 다수의 독극물과 플라스틱, 이산화탄소 등 오염 물질을 사용·배출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공장’이 자연환경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최근 들려오고 있다. 바로 경기도의 ‘오산천’ 환경을 살리는데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경기도 오산천을 방문해 자연환경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는지 살펴봤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블록화로 인해 물의 흐름이 막혀 자정작용을 잃은 과거 오산천의 모습./ 사진=오산천살리기지역협의회

◇ “철새부터 수달까지”… 되살아난 오산천, 생태 공원이 되다

경기도 용인시 석성산 향린동산에서 발원해 화성시 영천동, 오산시를 거쳐 평택시 서탄면 적봉리에서 진위천에 합류하는 하천인 오산천은 길이 약 15km에 이르는 국가 하천이다. 과거 오산천은 매우 심각하게 오염된 하천 중 하나로 꼽혔었다.

실제로 오산천살리기지역협의회에 따르면 과거 오산천은  1989년까지 오산시민들이 취수음용수로 사용할 만큼 매우 깨끗한 하천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성남정수장에서 오산천 상류를 상수원으로의 역할을 포기한 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하천 상류층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오산처 근처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냇가 중간을 콘크리트 블록화하는 ‘호안블럭화’ 작업이 진행됐고, 이는 물의 흐름을 막아 오산천의 자연정화능력을 상실시키는 원인이 됐다. 근처 사업장들에서 쏟아지는 오·폐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고. 때문에 환경부 물환경관리시스템 수질정보에 따르면 오산천은 지난 2013년 기준 평균 BOD 8.2ppm의 수질 등급 ‘5등급’을 기록하게 됐다.

여기서 BOD란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은 미생물이 물속의 유기물을 분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산소량을 뜻한다. 즉, BOD가 높을수록 정화해야 할 오염물질(유기물)이 많다는 뜻이다. 과거 오산천의 수질 등급이었던 5등급은 자기정화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는 5ppm의 BOD에 2배 수준인 8~10ppm으로, ‘닿으면 피부병을 유발할 수 있는 매우 오염된 물’에 속한다.

▲과거 5급수에 해당해 생물이 살아갈 수 없었던 오산천은 현재 백로(사진 좌측)와 흰뺨검둥오리(사진 우측)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생태계로 탈바꿈했다./ 사진=박설민 기자
▲오산천 상류 부근에서 발견된 왜가리의 모습./ 사진=박설민 기자

하지만 15일 기자가 직접 방문한 오산천의 모습은 과거 뉴스 등을 통해 들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1990년대 물이 바싹 마르고 오염됐던 과거 오산천과는 달리 맑은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악취가 났다던 과거 이야기와는 달리 그 흔한 물비린내조차 거의 나지 않을 만큼 깨끗한 물이었다.

특히 오산천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으로 유명한 ‘수달’ 역시 살아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전해 듣게 됐다. 근처 식당에서 만난 오산천 근처 주민인 A씨(41·여)는 “과거 오산천이 오염으로 인해 지저분했었는데 최근 들어 수질이 많이 깨끗해지고 있음을 주민으로서 느끼고 있다”며 “근처에 꽃도 많이 피고 수달을 목격했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수달이 오산천에 서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된 기자는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약 3시간 가량 오산천 물길을 따라 걸었다. 확실히 오산천은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천 근처에는 흰뺨검둥오리를 비롯한 야생 텃새들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있었으며, 천연기념물 중 하나로 꼽히는 멸종위기종 ‘노랑부리백로’의 모습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수달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끄럼을 타는지, 아니면 기자가 ‘위협적’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달들은 기자의 카메라 앞에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산천에 수달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오산천살리기지역협의회의 도움으로 명확히 확인 할 수 있었다. 협의회 측 동영상 자료를 통해 하천 다리 아래와 같이 안전한 지역(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수달들은 모래사장에 몸을 비벼 물을 말리거나 흙을 파고 장난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자에게 직접 그 얼굴을 보여줬으면 좋았겠지만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오산천 상류 부근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수달의 모습. 오산천 다리 아래 보금자리에서 털을 말리기 위해 모래밭에 몸을 비비고 있다./ 동영상=오산천살리기지역협의회

◇ 반도체 공장의 ‘기적’… 수만 톤의 깨끗한 물로 다시 흐른 ‘오산천’

과거 ‘죽은 하천’으로 불렸던 오산천에 노랑부리백로나 수달과 같은 자연의 ‘깨끗함’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돌아올 수 있기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노력이 있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오산천 복원에 기여한 역할은 바로 막대한 양의 물을 공급한 것이다. 과거 오산천이 죽어간 것은 막대한 양의 오·폐수 유입도 있었지만, 하천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면서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치명적 원인이었다. 

하지만 오산천 상류 지역에 들어선 삼성전자 기흥 캠퍼스의 반도체 공장은 2007년부터 매일 반도체 공정 과정에서 이용된 많은 양의 물을 방류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 2010년엔 하루 약 3만9,000톤의 물이 기흥캠퍼스 반도체 사업장으로부터 방류됐으며, 올해는 약 4만5,000톤의 물이 방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막혀있던 오산천의 ‘혈’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뚫어준 셈이다.

죽었던 오산천을 되살리는데 일등공신 중 하나는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었다. 삼성전자는 그린센터에서 폐수를 정화해 매우 깨끗한 물을 하루에 수만톤씩 방류해 물길이 막혀있던 오산천을 되살렸다. 사진은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사업장(위쪽)과 방류되고 있는 정화수의 모습(사진 아래)./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유튜브 캡처

하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된 폐수라면 굉장히 많은 오염물질을 방류할 텐데, 이것이 어떻게 오산천의 환경을 살리는데 도움이 됐을까’라는 의문 말이다. 

그 비밀은 삼성전자 사업장에 위치한 ‘그린센터’라는 정화시설에 있다. 삼성전자 측에 설명에 따르면 기흥·화성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수는 그린센터에서 총 7가지 과정을 거쳐 약 98%의 수질오염물질이 제거된 후 오산천으로 방류된다고 한다. 이때 정화된 물은 국내 수계 오염물질 배출 기준치 대비 약 30% 수준 이내로 매우 깨끗한 수준이라고. 

또한 삼성전자는 폐수 일부는 미네랄, 무기질 등 아무 화학적 성분이 없는 순수한 물로 정화해 공정에 재사용도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2021’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 같은 폐수의 재활용을 통해 국내에서 하루 평균 약 4,953톤의 용수를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오산시청 및 행정 기관과 오산천살리기지역협의회 등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함께 더해지면서 오산천은 1980년대처럼 다시 깨끗한 하천의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맑은 물이 막힘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오산천의 모습./ 사진=박설민 기자

◇ 오산천의 귀환, 기쁘지만 아직 갈 길 남았다

물론 아직까지 오산천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선 갈 길이 더 남아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난해 경기도청 물환경연구부에서 발표한 ‘2019년 경기도 수질 평가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오산천의 BOD는 1~3ppm으로 수질 등급 2등급에 해당한다. 2급수는 상수도, 수산업, 농업, 음용수 등으로 이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수영 및 목욕도 가능한 깨끗한 물이다. 특히 경기 용인시 기흥구 농서동 (영천교)에 위치한 오산천 1-1 지역의 경우 1.4ppm의 BOD 수치를 보여줬는데, BOD가 1ppm 수준인 1급수에 근접한 수준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기도 오산시 누읍동 탑동대교 하류에 위치한 오산천2-1 지역의 경우 여전히 BOD가 9.1ppm으로 공업용 용수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더러운 물인 5급수에 해당했다. 즉,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출발한 깨끗한 물이 오산천 근처 사업장 지대와 도시를 거치며 하류에서는 다시 더러워진 것이다.

바닥과 그 아래 서식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깨끗한 오산천의 수질.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산천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선 더욱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박설민 기자

수달과 같은 야생동물들이 오산천으로 돌아온 것은 분명 반길만한 소식이지만, 생각보다 수달이 완전 깨끗한 1~2급수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산천의 수질 관리를 위한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적당한 유속의 물과 풍부한 먹이만 있다면 수달, 백로 등은 3급수 정도의 보통 수질의 하천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수달연구센터 김대산 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수달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이와 보금자리의 충족”이라며 “이 두가지가 충족될 경우, ‘수달은 1급수에서 산다’는 한 음료광고 속 청정 이미지와 달리 3급수에 해당하는 보통 수질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염물질에 노출된 어류들을 섭취한다면 수달들에게도 안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수달 역시 1급수나 2급수의 청정수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히 좋기 때문에 물이 깨끗해진 오산천의 수질을 유지·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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