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공적연금제도가 취약하고 자식들도 부모 부양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많은 노인들이 일을 계속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나라일세. OECD 회원국 중 남녀 모두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나라야. 그러면서도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지. 2018년 65세 이상 노인의 고용률은 31.3%로, OECD 평균 14.9%보다 2배 이상 높았네. OECD 36개 회원국 중 34만명이 조금 넘는 인구를 가진 아이슬란드(37.4%) 다음으로 높았어. 하지만 2016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3.8%로 OECD 평균치인 13.5%보다 3배 이상 높았네. 2019년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명 당 46.6명으로 OECD 평균치 17.2명보다 크게 높았고.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많은 사회, 게다가 가장 많은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게 서글프지 않는가? 일자리가 없으면 폐지라도 수거해서 생활비에 보탤 정도로 착하고 부지런한 노인들이 많은데도 다른 나라 노인들에 비해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뭘까? 지금 우리사회의 노인들의 가난은 게으름 같은 개인적 특성 때문이 아니고 사회구조 때문에 생긴 사회문제임이 분명하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된 사회구조와 가족제도에 맞는 사회안전망 체제를 미처 갖추지 못해서 생긴 문제야.

그럼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까? 물론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노년의 삶을 설계해도 되겠지. 하지만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게 우리 현실일세.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무엇보다도 먼저 노인들의 정치적 대오각성이 필요하네. 지금까지 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면 이제 이 사회에 ‘뭔가’를 요구해도 지나친 게 아니야. 그 ‘뭔가’가 바로 사회적 권리(사회권)라는 거지. 나이가 들어서도 밥만 축내는 늙은이가 되지 않겠다고 다시 돈 버는 일을 시작하는 건 올바른 대응이 아니야. 노년을 인간답게 보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해 달라고 국가에 압력을 가해야 해. 가만히 있어도 국가가 자기들에게 뭔가 해줄 거라고 믿는 착한 노인으로 있어서는 백년이 지나도 지금과 별로 차이가 없을 거야.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나라 빚이 많아 대한민국이 곧 망하게 생겼다고 걱정하는 착한 노인들을 계속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거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은 나라들 중 대한민국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일하는 곳이 어디 있는가? 이제 돈을 벌기 위해 한 평생 일만 하고 사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네. 사라져버린 저녁 시간도 다시 되찾아야 하고. 기후위기 시대에 소비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제 한평생 열심히 일만 하고 사는 것도 자랑할 일이 아니야. 평생 일만 하고 살았던 노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일세. 다음 대통령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았네. 아직도 국익이나 경제성장을 위해 국민 모두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보가 누구이고 어떤 정당인지 잘 기억해두게나. 노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체제 구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후보에게는 많은 응원을 해주고. 노인들을 위한 치유와 돌봄 시설을 자기 지역구에 건립하려던 서울시의 계획을 백지화시켜서 ‘기쁘다’고 자랑하는 국회의원과 소속정당에는 분노도 해야 하네. 그런 정치인이나 정당에는 다음 선거에서 표를 주지 않는 게 노인들의 올바른 정치적 선택임을 잊지 말게.

마지막으로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말하고 있는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인생>을 소개하네. “책 읽을 시간을 떼어두어라./ 그 시간에 지혜가 솟아오른다.// 웃을 시간을 떼어두어라./ 바로 영혼의 노래다.// 사랑할 시간을 떼어두자./ 그대의 인생은 짧기 때문에.” 책을 읽고, 많이 웃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다보면, 하루하루가 꿈같은 날이 될 것이라고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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