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화천대유 퇴직금 50억원’ 논란으로 탈당한 무소속 곽상도 의원 / 뉴시스
‘아들 화천대유 퇴직금 50억원’ 논란으로 탈당한 무소속 곽상도 의원 / 뉴시스

“곽상도가 살신성인, 논개가 돼, 전말을 밝히고 이재명을 품에 안고 뛰어 내리면 됩니다.” 화천대유 사건을 놓고 글을 쓰려 했는데, 조금 전(27일 오전) SNS에 이런 글이 있어서 포기했다. 내가 쓰려던 글은 이런 거였다.

“곽상도는 물러나라. 억울할지 모르겠다만 지금 의원 자리에서 물러나면 영원히 살 것이요, 미련을 두고 머뭇하면 자손대대 죄를 물려 물려주게 된다.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네가 가로막은 죄를 네 후손들이 영원토록 지게 된단 말이다. 네가 물러나면 윤희숙이 세우려던 한국 정치의 기준이 더욱 일찍, 더욱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고, 책임지는 정치인들이 책임지는 정치를 하게 되는 기틀이 된단 말이다. 너의 당 사람들이 염원하는 정권교체도 훨씬 수월해질 수 있게 된단 말이다. 이 좋은 기회, 너 개인과 네 가문과 네 고향과 네 조국을 영원히 빛낼 수 있는 기회를 왜, 어리석게도 네 발로 차려하느냐?”

이런 내용이 드러나도록 살을 덧붙이고 가다듬으면 논지와 틀을 제법 갖춘 한 편 글이 되겠지만, 그래봤자 “곽상도야, 논개가 되어라!”라는 촌철살인을 길게 늘인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더 이상 쓰기를 포기한 것이다. 대신 이런 글을 쓰기로 했다.

원로 소설가 김원우 선생의 ‘운미 회상록’
원로 소설가 김원우 선생의 ‘운미 회상록’

<다음은 인물을 성격이나 하는 짓으로 묘사한 우리말과 그 뜻입니다. 화천대유 사건의 주요 등장인물과 조연 한 명 한 명에게 알맞은 걸 골라보세요.>

1.글겅이-남의 재물을 긁어 들이는 사람

2.굴퉁이-겉모양과 달리 속이 보잘것없는 사람

3.뭇방치기-주책없이 함부로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

4.도섭쟁이-주책없이 수선스럽게 변덕을 잘 부리는 사람

5.무룡태-능력은 없고 그저 착한 사람

6.트레발이-이유 없이 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7.건공잡이-허세를 부리는 사람

8.데림추-줏대 없이 남에게 딸려 다니는 사람

9.말재기-쓸데없는 말을 수다스럽게 꾸며내는 사람

10.말전주꾼-말로 이간질하는 사람

11.뭇따래기-자주 남을 괴롭히거나 훼방하는 사람

12.안다니-무엇이든 아는 체하는 사람

12.앙가발이-잇속을 위해 남에게 잘 달라붙는 사람

13.욕가마리-욕을 먹어 마땅한 사람

14.용심꾸러기-남을 시기하고 심술을 많이 부리는 사람

15.찌그렁이-남에게 무턱대고 억지로 떼를 쓰는 사람

‘보기’가 부족하다고요? 그렇다면 한자 단어 몇 개를 제시하겠습니다. 나랏일을 맡은 신하들을 구분한 한자인데, 화천대유 사건의 본질, 진상이 까밝혀지면 선출직이건 임명직이건 정무직이건 공무원들 이름과 직책이 줄줄이 나타날 테니 미리 알아둬서 나쁠 건 없을 겁니다.

1.활신(猾臣)-교활한 신하

2.유신(諛臣)-아첨이 전문인 신하

3.참신(讒臣)-남을 헐뜯는 게 전문인 신하

4.우신(愚臣)-자기 생각 없이 남의 말만 따라하는 어리석은 신하

5.구신(具臣)-아무 구실도 못하고 숫자만 채우는 신하

6.간신(奸臣)-간사한 신하

이런 신하들이 날뛰면 마지막에 나타나는 게 ‘망국신(亡國臣)’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신하 말입니다. 화천대유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걸 교묘한 논변과 억지와 악취가 풀풀 나는 강변으로 막는 자-여야 막론 국회의원, 판검사, 공무원 중 어느 누구든-망국신으로 불리게 될 겁니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재발을 막지 못하면 나라 망하는 것도 막지 못할 테니까 그렇습니다.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좋고 선한 신하, 나라를 바로 세우려던 신하-충신을 뜻하는 어휘는 없냐고요? 있지요. 직신(直臣, 강직한 신하)과 순신(純臣, 마음이 곧고 진실한 신하), 진신(盡臣, 정성을 다하는 신하)입니다. 하지만 이런 충신들도 용군(庸君,어리석고 변변하지 못한 임금), 암군(暗君)이나 혼군(昏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만나면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하고 오히려 파멸의 길로 들어서지요. 머리 좋아 아는 것은 많은 폭군(暴君)을 만나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요.

아무쪼록 화천대유 사건 진상이 속히 밝혀져 나라가 수렁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빠져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 속 우리말 인물 어휘와 신하 구분은 원로 소설가 김원우 선생의 『운미 회상록』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운미 회상록』은 조선이 망하기 직전, 구한말 나라꼴을 다룬 소설입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 세태가 구한말보다 더 어지럽다고 탄식합니다. 당시처럼 사회 곳곳에 건공잡이나 말재기와 말전주꾼, 뭇방치기와 굴퉁이, 뭇따래기와 안다니와 앙가발이와 찌그렁이들이 제 세상 만난 듯 설치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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