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48)에 수록된 「서시」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별’은 어떤 의미일까?

또 다른 시 「별 헤는 밤」에는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옛날. 과학관이나 천체전망대 등에 가면 돔 형식의 전시공간이 늘 있었던 것 같다. 둥그런 ‘하늘’이라는 캔버스, 아니 벽에 수없이 그려진 별은 원시 벽화나 암각화에 나오는 ‘성혈’ 같아서, 사실 작정하고 헤아리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다. 은하수가 펼쳐진 우주에 보이는 별들은 헤아릴 수 없는 ‘무한’으로, 숫자나 기호 등을 넘은 수학에 대한 절망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수학이나 과학이 아닌 ‘문학’으로 별을 헤는 것은 절망을 넘은 ‘희망’의 의미가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한’을 넘어 다소 미래지향적으로 ‘인문’으로 풀어주는 과정이 되어 준다. 우리가 만든 ‘신’이 베풀어 준 ‘절망’이라는 신앙적인 선물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내면에 대하여 생각하는 우리 인간에게 ‘할 수 있다’는 그런 ‘가능’은 곧 ‘꿈’과 직결될 수 있다. 무한한 우주를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인간의 그릇 가운데에는 우리들의 무한한 ‘꿈’을 담은 ‘시’가 있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한 시인 가운데 우리의 윤동주 시인도 있다.

그가 또 하나의 별이 된 1945년으로부터 77년이 지난 지금까지 헤아린 별의 숫자는 얼마나 되었을까? 무한한 우주, 아니 밤하늘을 누워서 거꾸로 본 윤동주 시인에게 별은 숫자를 넘은 ‘꿈’을 이야기 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꿈에서 헤아린 별은 여전히 모국의 ‘어머니별’에서 멈춰 더 이상 헤아리지 못하고 있을듯하다.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이어온 79세 거장 브리고디오 작가는 파리1대학(소르본) 조형예술대 출신으로 학장까지 역임한 화백이다. 이글은 2021년 9월 28일 브리고디오 작가 아틀리에 아파트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통번역은 박물관학 연구가이자 동시통번역가인 박지은 파리4대학 강사가 맡았다. / 하도겸 제공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이어온 79세 거장 브리고디오 작가는 파리1대학(소르본) 조형예술대 출신으로 학장까지 역임한 화백이다. 이글은 2021년 9월 28일 브리고디오 작가 아틀리에 아파트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통번역은 박물관학 연구가이자 동시통번역가인 박지은 파리4대학 강사가 맡았다. / 하도겸 제공

우리가 시에서 꿈을 느끼는 과정은 늘 진행중(in process)이다. 멈춰지고 고착된 모습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늘 ‘무엇인가로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끝없는 완성으로의 증식을 내포하며 만들고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무한 거듭한다. 완전이나 완성으로 나아가지만 그렇다고 딱 시기를 정해서 끝난다고도 할 수 없는 상징이나 의미를 가진다. 그러기에 꿈이고 시인 것은 아닐까?

이런 시적 해석을 조형예술로 승화시킨 시인이 프랑스에도 있다. 시인이자 조형 예술가인 장-피에르 브리고디오(Jean – Pierre BRIGAUDIOT) 작가는 별들이 빛을 얻기 전인 ‘태초’를 ‘무’와 암흑과 결별하여 빛이 생겨나는 순간으로 이해한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증식되어가는, 종교적 의미를 붙이기 전인 ‘창세기(genese)’의 별이 노출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창세기의 별을 그린 그의 작품에서 ‘종이’는 그림을 담는 캔버스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흰색 종이는 물론 색이 칠해져 있는 것을 나무의 나이테처럼 결 따라 찢고, 잡아 뜯고 붙이며 더하는 방법으로 그런 ‘증식’을 작품이라는 현실에 구현한다. 그런 드로잉은 사진이나 영상을 만나 새로운 ‘증식’을 거듭한다. 시와 그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소재(해석)처럼 서로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증식’은 끝없이 이뤄진다. 증식은 낮과 밤, 하늘의 별과 땅, 천체의 운행, 정해지지 않은 시간, 이미 말해진 것과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수 없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형언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를 의미한다. 그런 대화는 영원한 밤의 검은 색인 종이나 벽의 흰색을 만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마저 기록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꿈을 꾸는 장소이기에 가능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아니 꿈속의 단어들은 벽이나 종이를 떠나 말하고 이야기하기 위해 어쩌면 육신을 초월한 현실을 향해 스스로를 찾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창세기의 과정이기도 하며 오늘 지금의 일이기도 하다.

사진은 작가의 창세기 연작 가운데 하나다. / 하도겸 제공
사진은 작가의 창세기 연작 가운데 하나다. / 하도겸 제공

종교적 의미를 떼어낸 창세기에 나오는 암흑이나 무한한 우주란 상대로 하기도 어려운 탓에, 무의미, 거대함 그리고 무관심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간격의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를 브리고디오 작가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읽고, 느끼고 해석될 수 있는 작품으로 표현해 낸다. 그에 멈추지 않고 다양한 언어로도 재해석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해석과 재해석의 반복을 통해 탄생한 텍스트와 이미지가 지나가는 파사주(통로)는 관람객 역시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로서 온몸으로 느끼며 해석하며 또 다른 파사주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귀로 그리고 느낌으로 동시에 읽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또 반응하는 복합적인 교차와 만남이라는 나만의 파사주, 나만의 그림을 찾아가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작가의 시를 조형화한 작품에는 단어와 그 주변 사이의 대화가 엿보인다. 문자는 물론, 문자들 사이의 띄어쓰기와 회화적 간격, 혹은 영상에 담긴 시간적 간격과 소리의 간격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언제나 무엇인가가 되려하고 끊임없이 완성되고 파괴하고 또 다시 만들어가는 결코 끝이 없는 과정이 펼쳐진다. 다양한 표현법으로 시를 구사하는 작가는 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법, 나는 그것을 모른다”고 단언한다.

항공기 창으로 보이는 공항의 아스팔트지면, 신호등, 주차장, 포장도로선 등의 사인들이 교차하는, 새로우면서도 현대적인 풍경은 비연속적이며, 분절되고 단절되고 중첩되는 이미지를 가진다. 이런 이미지와 시를 결합한 에어포트 시리즈는 비연속적 풍경 연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회화설치작업으로 2000년에 시작된다. 서울 삼청동의 선화랑과 도로시살롱(갤러리) 등에서 여러번 전시된 이 연작들은 액자를 거부하는 열려있는 작품으로, 하나의 벽이 아닌 두 개 이상의 벽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늘 새롭게 완성으로 나아가는 모습만이 브리고디오 작가의 유일한 변하지 않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가 끝나면 마치 불교의 금강경식의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깨친’ 작가의 작품을 서울에서 즐겁게 만나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작가의 수많은 별들에 대한 시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그런 만남과 대화 속에서 혼자만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 위한 즐거운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무제」
 

너무나도 칠흙 같은 검정 한 복판의 꿈
시간 이전의 밤의 그것
그 많은 별들의, 상상이 길을 잃는 하늘의
그토록 광활한 공간의 꿈
상상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창조 이전의 세계의 꿈
무엇보다도 흐릿한 정신, 그리고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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