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 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지난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 뉴시스, 공동취재사진

8월 31일 국회를 통과, 9월 24일 공포된 탄소중립기본법과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비판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의 인터뷰(조선일보 10월 5일자)를 읽다가 “대못 박고 철사 줄로 꽁꽁 동여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적 대안도 비전도 없이 왜 정부는 탄소중립을 서두르는가?”라는 물음에 그는 “탄소중립 기본법이 83개 조로 구성됐는데 이 중 20개 조가 조직 만드는 내용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아래로 ‘정의로운전환지원센터’, ‘탄소중립지원센터’, ‘실천연대’, ‘협동조합’ 등 시도·군구까지 전국에 조직을 만든다. 정말 대통령이 쓰레기 분리수거의 경험으로 탄소 중립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지, 아니면 과거처럼 친정부 단체를 만드는지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탄소중립기본법이라는 게 결국 “친 정권 인물들 자리 만들어주기, 주머니 채워주기를 위한 것 아닌가, 이 정권 들어서 너무나 익숙한 그림이 되풀이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지적이었다. “법으로 대못을 박은 후, 사람 심어 넣어 봉급주고 수당주고 복지혜택 보장해서 내 편 만드는 게 대못 뽑지 말라고 철사로 꽁꽁 동여매는 것과 다른 게 뭐냐”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지적이었다.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SF영화에도 나오지 않을 기술”, “교양서적 몇 권 읽은 과학기술 문외한들이 모여서 만든, 실현 가능성에 대해 숙고한 흔적이 전혀 없는 졸속 계획이자 비과학적 선동”이라는 그의 비판을 조목조목 따라 읽다보면 이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없고 경제적으로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비현실적인 계획, 환경과도 거리가 멀어 탈원전 기조를 고착화시키려는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의 비판의 골격. 이런 총론적 비판에 이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발전의 70.8%를 의지하겠다는 황당함 △‘무탄소 신전원’이라는 새로운 전원의 해괴함 △10년마다 물경 1,248조원(1,248억원이 아님)이 들어가야 하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구축비용을 언제나 쉬 꺼낼 수 있는 주머니 돈처럼 생각하는 무모함 등등 각론에 대한 질타가 쏟아진다.

“리튬이온배터리인 ESS는 결국 탄소(흑연 음극) 덩어리다. 배터리 만들면서 막대한 탄소를 발생시킨다면 발전소에서 탄소를 줄이는 게 의미가 있나?”

“태양광 발전을 위해 서울시 면적의 10배가 더 필요하다는데, 현실성 있는 주장인가?”

“태양광·풍력·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뽑아내면 친환경이라고 하는데, 전기를 사용해 생산한 수소로 다시 전기를 만들겠다니 어처구니없는 발상 아닌가?”

“암모니아로도 발전하겠다는데 지금처럼 비료 공장에서 질소 고정 기술로 암모니아를 만들려면 엄청난 전기가 들어간다. 또 암모니아의 연소열은 천연가스의 34%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열량을 얻으려면 천연가스보다 3배나 많이 태워야 한다. 암모니아는 인체와 환경에 독성이 매우 강한 휘발성 물질이고 대기에 노출되면 초미세 먼지를 만든다. 기후 위기를 얘기하면서 효율도 낮고 대기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암모니아로 전기를 만들겠다니 말이 되는가?”

산업에 미칠 영향도 당연히 언급된다.

“철강 생산에 환원제(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로 사용되는 코크스가 탄소 덩어리이므로 코크스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쓰자고 하는 이른바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은 세계 어디서도 상용화되지 않았다”

“탄소중립 위원회는 석유화학산업의 원료인 나프타를 바이오원료로 바꾸라고 했다. 나프타가 에너지원이면 몰라도 소재라는 점에서 검증 안 된 바이오 원료로 대체할 수 없다.”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교양서적 몇 권 읽은 과학기술 문외한” 쪽에서는 그의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비판에 아직 대꾸가 없다. 이 역시 이 정권의 특기다. 지적을 무시하고 대꾸하지 않는 것, 동문서답하는 것. 이 때문에 “탄소중립으로 지구 환경을 지키자”라는 인류의 지구적 목표가 “너희는 떠들어라. 우리는 간다. 이권과 먹거리 있는 곳으로!”라는 저들의 탐욕으로 얼룩지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철사는 녹슬면 손가락 힘만으로도 끊어지게 된다. 화천대유 사건에 얽힌 자들도 아들 딸 들을 집어넣고, 자기들 나름 물샐틈없이 꽁꽁 싸맸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 ‘정의로운전환지원센터’는 탄소중립기본법 제7장 47조, 48조에 나온다. “정부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계층 등의 현황과 일자리 감소, 지역경제의 영향 등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지역 및 산업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지원 대책과 재난대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하며,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급격한 일자리 감소, 지역경제 침체,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용환경이 크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정의로운전환 특별지구’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이 ‘정의’를 선점했으니 다른 법률이 다른 사안으로 ‘정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는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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