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엄이랑 기자  언제부턴가 배송‧배달 속도에 가속이 붙어왔다. 

택배 배송의 경우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주문한 물건은 보통 2일 내외, 빨라도 다음 날 받는 것을 이른바 ‘국룰(국민 룰,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로 여겨져왔다.

그러던 어느 날 쿠팡이 ‘빠른’ 배송을 도입했다. 밤 11시 59분 안에 결제를 마치면 다음날 고객의 품에 안겨줄 수 있음을 보장했다. 이뿐이랴. 멤버십을 도입한 쿠팡은 퇴근 후 주문한 물건을 다음날 출근을 앞둔 새벽에 수령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하고 있기도 하다. 

택배 배송이 이러한데 배달이 이보다 느릴 순 없다. 물론 기존에 존재했던 배달도 그리 느리지만은 않았다. 대개 40분에서 1시간 사이로 이뤄졌다. 이랬던 배달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 이용률이 급증하면서 치열한 속도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30분 내 배달을 목표로 내건 ‘퀵커머스’가 업계 내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B마트(배달의민족)’가 피운 불씨에 ‘쿠팡이츠마트(쿠팡)’가 바람을 불어넣은 퀵커머스는 30분 내외 배송을 내건 B마트에게 쿠팡이츠마트가 10~15분을 들이밀며 속도경쟁이 본격화됐다. 이후 편의점·마트·백화점 등에서도 배달 속도를 높이는데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퀵커머스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소규모 물류점포(MFC)의 존재다. 이 점에서 지역 곳곳에 점포를 보유한 편의점이 유리하다. 이동형 물류점포를 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실례로 현대백화점이 냉장‧냉동 시스템을 갖춘 전기트럭으로 과일·야채·정육 등의 신선식품을 10~30분을 목표로 배달을 하고 있다.

이를 제외하고 퀵커머스를 실현하는 방법은 단 하나, 배달노동자가 가능한 빠른 속도로 배달지에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달 속도 자체를 높이는데 주력하다 보면 당연히도 대다수 배달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빠른 배송’은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만은 않다. 앞서 설명했듯 지역 곳곳에 위치한 소규모 물류점포가 있으면 속도를 늦춰도 배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도보배달서비스가 하나의 예다. 주문자와 같은 동네에 사는 주민이 배달에 나서는 형식으로 지역 곳곳에 위치한 편의점을 통해 도보로 단시간 배달이 가능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로써 떠올려봤다. 퀵커머스의 대항마, ‘슬로우커머스’의 탄생을. 

비록 퀵커머스에 비해 느릴지언정, ‘퀵’이란 단어가 불러오는 조급함을 내치고 정확하고 안전하게 이뤄지는 배달을 말이다. 하지만 일부러 느리게 배달하겠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슬로우’를 ‘모데라토(Moderato, 적당한 속도‧템포를 이르는 음악 용어)’로 바꾸는 건 어떨까.

이마저도 아닌 것 같다면 그냥 ‘배달’은 어떤가. 빠른 속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비교적 정확하면서 안전히 우리에게 도착하는 ‘배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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