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부문을 단계적으로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부문을 단계적으로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본사가 소비자금융 부문에 대한 사업 철수 방침을 발표한 후 수개월간 매각 작업을 진행했지만 적절한 인수 후보를 찾지 못하면서 결국 ‘단계적 사업 폐지’ 카드를 꺼내들게 됐다. 이에 따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해지면서 노사 간 갈등도 더욱 치열해질 모양새다. 노조 측은 “소비자금융 졸속 청산 결정을 반대한다”며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 소비자금융 매각 작업 불발… 단계적 사업 폐지 결정  

한국씨티은행은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을 단계적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 4월 모회사인 미국 씨티그룹이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사업에 대한 출구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지 6개월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한국씨티은행은 그간 △소비자금융 통매각 △부분 매각 △단계적 폐지 등 세 가지 선택지를 놓고 출구 전략을 논의해왔다. 이 중 통매각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적절한 인수 후보를 찾지 못했다. 이후 자산관리, 신용카드 등 알짜 사업 부문을 따로 분리해 매각하는 것 역시 불발됐다. 한국씨티은행은 인수 의향자들과 막판까지 치열하게 협상을 벌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매각 불발 배경으론 고용 승계 등 인건비 부담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됐다.  

유명순 대표는 직원들에게 보낸 CEO 메시지를 통해 “지난 수개월간 고용승계를 전제로 하는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의 전체매각을 우선순위에 두고 출구전략을 추진했으나 이를 수용하는 금융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잠재적 매수자들이 관심 보인 특정 사업 부분매각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추진했지만 금융시장 환경의 구조적 변화 등 전통적 소비자금융 사업이 처한 어려운 영업 환경과 당행 인력 구조, 전적 인원 제한 등 여러 제약 조건으로 인해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인수 후보자들이 고용 승계 부문에 부담을 느끼면서 결국 인수전에서 발을 뺀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말 기준 한국씨티은행의 전체 임직원(3,500명) 중 소비자금융 부문 임직원이 2,500명(영업점 직원 939명 포함)에 달한다. 씨티은행 직원 평균 연봉은 업계 최고 수준인 1억1,200만원 수준이다. 인수 후보자들은 높은 인건비 구조에 난색을 표해왔다. 

한국씨티은행은 희망퇴직 카드로 매각 협상의 물꼬를 트고자 했지만 이 역시 매각 성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앞서 지난달 말 노조에 최대 7억원의 특별퇴직금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희망퇴직안을 제시했다. 노사는 지난 22일 관련 희망퇴직안에 합의했지만 매각 작업은 불발됐다.  

이로써 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출구 전략 방향은 가장 최악의 선택지로 거론되던 청산으로 결론을 맺었다. 사업 청산에 따라 대규모 인력 감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씨티은행은 노사 협의를 통해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인력 정리 절차에 돌입할 방침이다. 또한 잔류를 희망하는 직원들의 경우, 기업금융 부문에 재배치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많은 인력을 다른 부서에 재배치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직원들 상당수가 짐을 싸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 대규모 인력 감원 불가피할 듯… 노조 “졸속 청산 반대, 재매각 나서야” 

이에 따라 사업 청산 결정을 놓고 노사 간 갈등도 첨예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씨티은행지부는 26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책임한 소비자금융 졸속 청산(단계적 폐지) 결정을 결사반대한다”며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이날 정찬근 한국씨티은행지부 위원장은 “한국씨티은행은 수개월에 걸친 복수의 인수의향자들과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헛심만 썼다”며 “고객 보호와 고용 안정을 위한 노력은 시늉만 내고, 결국 가장 손쉬운 방법인 졸속 청산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내하면서까지 직장을 지키기 위해 지난 22일 희망퇴직 시행안에 대해 합의했다”며 “이러한 고통 분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한 경영진들은 희망퇴직 노사 합의 직후 1시간 만에 개최된 이사회에서 청산을 결정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청산 결정으로 직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씨티은행지부는 26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책임한 소비자금융 졸속 청산(단계적 폐지) 결정을 결사반대한다”며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한국씨티은행지부

노조 측은 사측이 재매각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씨티 브랜드와 일부 지분을 5년간 유지하면서 나머지 지분을 수 십 곳에 나누어 매각하는 우리금융지주 방식의 ‘희망수량 경쟁입찰’로 재매각을 추진하여야 한다”며 “단계적 폐지를 할 것이 아니라 단계적 매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향후 산업 전반의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매각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소비자금융 부문 청산 결정을 철회를 촉구하며 24일부터 청와대와 금융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했다. 향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될 시, 총파업을 비롯한 강도 높은 투쟁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씨티그룹은 지난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해 현재의 한국씨티은행을 출범시켰다. 한국씨티은행의 총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69조5,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총 여신 규모는 24조3,00억원이며, 이 중 소매금융 부문 여신은 16조9,000억원 규모다. 한국씨티은행의 사업의 단계적 철수 결정에 따라 소비자금융 상품과 서비스의 신규 가입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기존 계약에 대해서는 계약 만기나 해지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한국씨티은행은 금융감독당국과 협의를 통해 소비자보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한국씨티은행에 소비자 보호 등을 위한 조치명령을 사전 통지한 바 있다. 또한 금융위는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사업 청산이 은행법에 따른 ‘폐업 인가’ 대상인지를 검토하고 있다. 노조는 이번 사업 청산이 금융위의 인가 사항이라고 주장하며 당국의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당국이 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사업 청산 결정에 어떤 입장을 보일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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