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 명의와 전두환 전 대통령 명의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 명의와 전두환 전 대통령 명의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정부는 27일 전날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國家葬)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이날 정부의 국가장 결정을 비판했다. 그러나 현행 국가장(國家葬)법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막을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 12·12와 5·18 언급서 드러난 문 대통령의 ‘고심’

정부는 이날 오전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을지국무회의 및 제46회 국무회의를 열고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국가장법에 따르면, 국가장은 전·현직 대통령이나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긴 사람이 사망했을 때 행정안전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부터 노 전 대통령의 장례 문제 논의를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8일 유럽 순방을 떠날 예정이라, 이날 김 총리 주재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려 논의하는 방식으로 조율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행법에 의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했지만, 문 대통령의 추모 메시지에는 고심의 흔적이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고 밝혔다. 

비록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는 언급이 있었지만, 추모 메시지에서 ‘서거’(逝去)라는 표현도 쓰지 않은 것은 노 전 대통령 둘러싼 역사적 평가가 진영 별로 엇갈리는 복잡한 상황이 적용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문 대통령은 빈소에 조화를 보냈지만, 조문은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 방정균 시민사회수석이 대신하기로 했다. 이 역시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측의 목소리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 등은 정부의 노 전 대통령 국가장 결정을 규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는 이날 성명에서 “정부는 국기를 흔들고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을 죽인 범죄자인 노태우 씨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겠다고 결정했다”며 “역사를 부정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정부의 선택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도 “노 씨는 헌정사에 길이 남을 중대 범죄자”라며 “문재인 정부는 군인이 국민을 학살하고 반란을 일으켜도 일단 집권만 하면 지도자로 추앙해줘야 한다는 잘못된 전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가맹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도 “대통령 노태우는 장례식장의 벽을 뚫고 한진중공업노조 박창수 위원장의 시신을 탈취한 도적”이라면서 “박창수 위원장 죽음의 진실이 30년째 밝혀지지 않았는데 노태우가 국가의 예우를 받으며 땅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했다.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조문한 뒤 유족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조문한 뒤 유족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 전두환도 ‘국가장’ 가능해

문 대통령의 추모 메시지에서도 드러났듯,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 진행 여부를 두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진행될 경우 발생할 사회적 논란을 예상했을 것이다. 또 여당 일각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가장 반대 목소리도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가장을 결정했다. 

현행 국가장법은 ‘국가장의 대상’을 △전직·현직 대통령 △대통령당선인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에는 국가장의 대상자, 국가장 장례위원회의 설치, 장례의 방식 등에 대한 규정만 존재할 뿐, 국가장을 ‘제한하는 조건’은 남겨두지 않았다.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할 수 있지만, ‘국가장 불가’를 결정하기에는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내란죄 등으로 인해 수감 생활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은 15대 대통령 선거 이후 국민 대화합을 이유로 1997년 12월 특별사면됐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한 사유 중 하나로 ‘내란·외환의 죄로 금고 이상 실형이 확정된 경우’가 명시돼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내란과 군사반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사면됐더라도 범죄 사실은 남아 있기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은 불가하다. 그러나 국가장법에 존재하는 ‘구멍’으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를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전 전 대통령 역시 국가장법에 의거, 사망할 경우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여당에서는 꾸준히 ‘국가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왔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회의록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해당 법안에 대한 여야의 태도는 2017년 9월 19일 정무위원회 국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정무위원회에서는 국가장법이 아닌 국립묘지법 개정안(사면·복권 받아도 안장 제외)을 논의한 것이지만, 이들의 태도는 국가장법을 대하는 것과 유사하다. 

당시 야당은 “(국립묘지법에 의거하면) 사면·복권을 받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는다”면서 ‘개정안의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 개정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당시 민주당 소속 김해영 의원은 “입법으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법적 분쟁(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실익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여야는 차후에 논의하자고 미룬 바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박용진 의원과 조오섭 의원이 국가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용진 의원안은 ‘탄핵을 당한 전직 대통령’을 국가장 불가 사유에 포함하는 것이고, 조오섭 의원안은 ‘죄를 저지른 사람’을 제한 사유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해당 법안 역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1년째 논의되지 못하고 있으며, 회의록에는 법안을 논의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이명박·박근혜다. 그런데 전 전 대통령은 ‘내란죄’로 인해 수감생활을 한 바 있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재 수감 중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보수 진영의 대통령이라, 해당 법안이 발의됐을 때 보수 야당이 논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용진 의원안이 겨냥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니, 야당에서 논의조차 못 꺼내도록 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회 관계자는 “여야 모두 해당 법안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이번 논란으로 인해 여당이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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