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주류세법이 수제맥주 시장 규모를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법 개정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졌고 대량 생산 여건이 마련됨으로써 수제맥주 시장규모는 나날이 커갈 것이며 업계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픽사베이

시사위크=엄이랑 기자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개정된 주류세법이 수제맥주 시장 규모를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출고량에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와 주류 제조사가 타사 시설을 활용한 위탁제조(OEM)를 허용한 것이 법 개정의 핵심 내용이다. 법 개정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졌고 대량 생산 여건이 마련됨으로써 수제맥주 시장규모는 나날이 커갈 것이며 업계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 종량세로 전환된 주류세법… 수제맥주사 유통채널 진입 기반 마련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aTFIS)과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맥주시장 규모는 3조6,883억원이다. 전체 비중에 비해 그리 크진 않지만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지난 2015년부터 점진적으로 성장해왔다. 한국수제맥주협회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수제맥주 시장규모는 2015년 218억원에서 △311억원(2016) △433억원(2017) △633억원(2018) △800억원(2019)으로 매년 40% 가량 몸집을 불려왔다. 2019년엔 잠시 주춤(전년 대비 26.3%)했지만 2020년엔 1,18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50%(47.5%) 가까운 성장을 기록한 바 있다.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가 있다. 사람 간 접촉을 줄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일상화되면서 기존 식당·주점에서의 ‘술자리’가 급감하자 안전한 집(홈술)에서 혼자(혼술)마시는 문화가 자연스러워졌다. 따라서 기존 술자리 문화에 비해 주류선택권이 넓어졌고, 기존 맥주와 색다른 맛을 가진 수제맥주에 대한 수요가 상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지난해 초 출고가(종가세)에 매기던 세금이 주류량(종량세)으로 전환된 주세법 개정도 한몫했다. 제조원가가 높았던 수제맥주는 세금 부담을 덜며 가격경쟁력을 높였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수제맥주가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한국소비자원은 ‘국내 맥주 가격동향 및 이슈분석’을 통해 “올해 6월 기준 유통업체에서 판매되는 수제맥주 제품 수는 64개로 2년 전 16개에 비해 약 4배 증가했다”며 “종량세 개편 이후 수제맥주 제품 다양성은 대폭 확대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을 당시 국내 수제맥주사들의 진입 여건이 마련됐지만 세법이 전환되기 전인 종가세 때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며 “종량세로 세법이 전환되면서 많은 업체가 주 유통채널인 편의점에 입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규모 및 제조업체 현황. /한국소비자원, 한국수제맥주협회

종량세 전환 이후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세는 중소 수제맥주 업체 및 수제맥주 스타트업이 이끌어왔다. 

지난 2017년 제주의 특색을 살린 감귤향 수제맥주 ‘제주위트에일’로 업계 내 입지를 굳힌 ‘제주맥주’는 지난 2019년 12월, 종량세 전환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기존 대비 평균 20% 가격을 인하한 바 있다. 전국 주요 편의점들과 함께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창고형마트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기반으로 한 제주맥주의 2020년 매출액은 215억원으로 전년(73억원) 대비 3배가량 늘어난 매출을 기록했다. 이러한 상승세를 발판삼아 제주맥주는 올해 5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2003년 소규모 맥주전문점으로 시작해 맥주 제조기업으로 성장한 ‘세븐브로이’는 지난해 5월 대한제분·CU와 협업으로 출시한 ‘곰표 밀맥주’의 선풍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수제맥주 시장 규모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다. 출시 이후 연일 매진을 기록한 곰표 밀맥주의 지난해 판매량은 CU 추산치로 150만개에 이른다. 이러한 흥행을 바탕으로 세븐브로이는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IPO(기업공개)를 목표로 상장주관사를 선정했음을 지난 2월 밝힌 바 있다.

2016년 수제맥주 전문점(크래프트 맥주펍)으로 출발해 현재에 이른 ‘어메이징브루컴퍼니’의 경우 오뚜기의 대표 식품 진라면과 콜라보레이션한 수제맥주 ‘진라거’를 지난달 출시했다. 출시 2주 만에 판매량 70만개를 기록하며 수제맥주의 흥행을 이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어메이징브루컴퍼니는 올 한 해 매출 100억원 달성 및 2024년 기업공개를 목표로 탄탄한 브랜드를 구축하겠다고 지난 7일 진라거 출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부를 밝혔다.

◇ 수제맥주 OEM 허용… 두 주류제조 대기업의 다른 행보

한편 수제맥주 시장 규모 확장에 주류제조 대기업도 한몫하고 있다. 대기업이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든 주된 배경엔 주류면허를 보유한 제조사의 제품을 타사 시설에서 주류위탁제조(OEM)를 허용한 주세법 개정이 있다. 이로써 롯데칠성음료는 수제맥주 위탁 생산을 본격화했다. 반면 오비맥주는 위탁 제조가 아닌 편의점 브랜드 및 이종계열 간 협업을 바탕으로 자체 기술로써 수제맥주를 출시하는 길을 택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수제맥주 업체들과 협업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올해 초 충주 맥주1공장을 재정비해 ‘수제맥주사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했다. 별도의 설비투자 없이 캔제품 생산과 레시피 개발 및 품질 향상을 돕고, 수제맥주 업체들과의 상생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부터는 클러스터 조성의 일환으로 중·소형 수제맥주 업체의 제품화를 위한 수제맥주사 발굴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롯데칠성음료는 올해 초 제주맥주·세븐브로이와 손잡고 각사의 대표 제품인 ‘제주위트에일’과 ‘곰표 밀맥주’ 위탁 생산을 시작했다. 특히 지난 4월 ‘곰표 밀맥주’ 300만개를 공급, 기존 월 판매량(20만개)에 버금가는 하루 판매량(15만개)을 기록하며 지난해부터 이어진 ‘곰표’ 흥행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서울 모처 한 편의점에 진열된 다양한 수제맥주들. /사진=엄이랑 기자

오비맥주는 지난 6월 수제맥주 전문 협업 브랜드를 선보였다. 수제맥주 업체들과 협업에 집중하는 롯데칠성음료와 달리 오비맥주는 타사의 레시피, 타 제조사의 제품을 대리 생산하는 위탁 양조의 형태와 차별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같은 달 브랜드 론칭의 첫 번째 결과물로 ‘GS25’, 북유럽 스타일 아웃도어 브랜드 ‘노르디스크(Nordisk)’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노르디스크 맥주’를 선보였다. 

이후 오비맥주는 두 달 동안 3개의 편의점 브랜드와 협업으로 총 4개의 수제맥주를 시장에 내놓은 상황이다. CU 측에 따르면 CU‧BYC와 협업한 ‘백양BYC 비엔나라거’는 출시 2회차 발주로 초도물량 40만개가 소진됐으며 판매 3일 동안 80%가 넘는 판매율을 기록했다. 세븐일레븐‧배달의민족과 선보인 ‘캬 소리나는 맥주’의 경우 초도 물량 25만개가 출시 보름 만에 소진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대기업의 행보를 한국수제맥주협회 측은 ‘골목시장 침해’와 같이 단순한 문제로 국한해 보지 않는 입장이다. 대기업의 참여가 수제맥주 시장 규모를 키우는데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위탁제조와 관련한 적정 기준을 마련하거나, 중소 수제맥주 업체 대상으로 일정부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OEM에서 중소업체와 대기업 사이 문제보다는 편법 진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점이 더욱 커 보인다”며 “예를 들면 외식업계에서 주류면허 취득 후 작은 브루펍을 만들고 주류 대기업에 OEM을 맡기게 되면 적은 비용으로 대량 생산이 손쉽게 가능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협회 측에서는 판매 업력으로 OEM 여부를 허용하거나, OEM 제품 수량을 제한하는 방식을 기획재정부에 제안했었다”고 말했다. 

협회 측은 규제 완화와 관련해서 지난 2017년 전통주 시장 육성을 위해 도입된 ‘주류 온라인판매 허용’이 중소 수제맥주 업체에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코로나를 겪으며 소비자 구매 패턴이 많은 부분 바뀐 만큼, 매장 판매만으론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중소 수제맥주 업체들이 주류 온라인 판매를 할 수 있게 기재부와 국세청에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