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서예진 기자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늘 ‘그 사람의 공과(功過)를 함께 논해야 한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복잡하고 다양한 일면을 갖고 있기에, 저 말은 일견 옳은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공과를 함께 논하다가 한 가지 오류를 범한다. 공(功)과 과(過)의 크기가 같다는 착각을 한다. 이런 착각 속에서 공과를 함께 논하다보면, 어느 순간 공을 먼저 언급하게 된다. 나아가 공으로 과를 덮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이렇게 된다면 ‘그 사람의 공과를 함께 논해야 한다’는 금과옥조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게 된다. 

지난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씨와 12·12 군사반란을 주도했다. 그리고 군사반란의 선두에 선 이상 5·18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의 최고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6공화국 최초의 직선제 선출 대통령이다. 북방정책을 개시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으며, 범죄와의 전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전 씨 등 신군부 인사들과 함께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 및 학살 등에 대해 재판을 받고 징역 17년을 선고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사면으로 그의 과오를 덮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여야 모든 후보가 전 씨와 노 전 대통령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영삼 정부 역시 이에 호응했다. 국민통합을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수감 생활을 마쳤지만, 노 전 대통령의 과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정부는 국가장(國家葬)을 결정했다. 전·현직 대통령도 국가장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노 전 대통령이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일부 광역자치단체는 국가장 결정에 따르지 않고 분향소 설치나 조기 게양 등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노 전 대통령의 과오를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1926년 이완용이 사망했을 때 ‘동아일보’는 이같은 부고를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군사반란으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군인으로서 국민을 지켜야 할 책무를 저버리고 총구를 들이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체 어떤 공이 저 과오를 덮을 수 있을까. 국가의 세금으로 장례를 진행한다고 해서 그의 과오를 덮자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앞으로도 우리는 한 시대와 함께 과거의 인물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우리는 또 다시 ‘공과를 함께 논하자’고 주장하고, 실질적으로는 공으로 과를 덮는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공과를 함께 논하자’는 금과옥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착각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발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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