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국내 금융사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 분주하다. 은행뿐 아니라 보험, 카드, 금융투자기업 등 여러 금융권 업권사들이 미래 먹거리를 찾아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여러 국가에 진출해 글로벌 사업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한국 시장엔 갈수록 썰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한국에 진출해 사업을 벌이던 외국계 금융사들이 하나둘씩 짐을 싸 국내 시장을 떠나고 있어서다. 

최근엔 미국 씨티그룹이 국내 소매금융 사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시티그룹이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해 지금의 한국씨티은행을 출범시킨 지 17년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씨티그룹은 향후 기업금융을 중심으로 영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소매금융 철수로 한국 사업 비중은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대형 글로벌 금융사들의 한국 시장 철수 움직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글로벌 대형 은행의 경우, 2013년 영국계 은행사인 HSBC가 국내 소매금융 사업부문을 접고 떠난 후, 2017년 △미국 골드만삭스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스페인 빌바오비스카야(BBVA) △영국 바클레이스 등이 국내 은행 사업을 정리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스위스 UBS와 호주 맥쿼리가 은행 사업에서 철수했다. 

굴지의 보험회사와 자산운용사들도 국내 시장을 떠났다. 2013년 네덜란드계 ING생명이 한국ING생명을 팔았고 2016년에는 독일 알리안츠생명이 국내 보험사업을 매각했다. 또한 지난해 미국 푸르덴셜이 한국 자회사인 푸르덴셜생명을 매각한 데 이어, 최근엔 국내 라이나생명의 매각 진행 소식이 전해졌다. 자산운용업계에선 골드만삭스자산운용과 JP모건자산운용이 2013년과 2018년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일본계 금융사인 J트러스트그룹이 국내 캐피탈과 일부 저축은행 사업의 정리 작업에 나섰다.  

외국계 금융사들이 줄지어 한국 시장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금융권에선 대체적으로 ‘국내 시장의 투자 매력도 저하’를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 시장은 저금리·저성장 기조로 고착되면서 시장 환경이 날로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촘촘한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 역시, 외국계 금융사들이 한국시장에서 발을 빼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외국계 금융사들의 철수 움직임에 속수무책인 모습이다. 떠나는 외국계 금융사들을 잡을 만한 뚜렷한 시장 활성화 대책은 물론 규제 혁신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국계 금융사들의 시장 철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최근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사업 철수 사례만 살펴봐도 고객 혼란과 대규모 구조조정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외국계 자본의 투자금이 국내 시장에서 빠져나간 점 역시, 예사롭게 볼 사안이 아니다. 장기적으론 국내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수년간 외국계 금융사들의 철수 기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당국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과도한 경영 간섭과 규제로 이들의 탈출 러시를 부추겼다는 비판까지 내놓고 있다. 

정부는 그간 한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를 키우겠다는 로드맵 아래 여러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사들이 한국 시장을 떠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해당 목표 실현은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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