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성찰배경: 최근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양의 탈을 쓴 강아지 인형이 등장해 감사가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 소동으로 인해 비록 적지 않은 국민들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사자성어를 새롭게 접하며 교양 수준이 조금 더 높아지게 되었지만, 정부부처가 지난 1년 간 국민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철저히 감사하는 국회의 중요한 기능을,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에 의한 첨예한 대립으로 포기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사기(詐欺)’와 관련된 ‘양두구육’에 대해 두루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 사기(詐欺)

먼저 ‘사기(詐欺)’란 단어를 한 글자씩 풀어서 살펴보겠습니다. ‘詐’는 ‘말씀’이란 뜻의 ‘언(言)’과 ‘지어내다, 속이다’라는 뜻의 ‘사(乍)’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남을 거짓말로 속이다’라는 뜻을 분명히 담고 있습니다. 한편 ‘欺’는 발음 소리에 기여하는 ‘기(其)’와 ‘하품하는 모습’을 뜻하는 ‘흠(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품을 할 때 입을 크게 벌리는 것에서 열변을 토하며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에 이 글자 역시 남을 속인다는 뜻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한편 속임과 관련된 사자성어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 있습니다. 그런데 뜻은 유사하면서도 범죄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 바로 ‘양두구육’입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기를 치는 행위는 비록 대부분의 선량한 보통 사람들을 일시적으로는 속일 수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들통이 날 것이니 신용불량을 포함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요.

◇ 양두구육의 유래

이 사자성어의 유래는 안자(晏子)로 불리우며 존경받아 온 안영(晏嬰, ?∼BC 500)의 언행을 기록한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양(羊)대신 소를, 개[狗]대신 말을 모델로 한 ‘우수마육牛首馬肉’이란 표현이 다음과 같이 담겨있습니다.

“춘추(春秋) 시대 제(齊)나라의 영공(靈公)이 궁궐 안에서 궁녀들을 남장(男裝)시키고 감상하기를 즐겨하자 이 풍습이 나라 전체로 널리 퍼졌다. 그러자 영공이 궐밖에서 여인들이 남장하는 것을 왕명(王命)으로 금지시켰는데,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영공이 안영에게 왕명이 잘 시행(施行)되지 않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안영은 ‘궐안에서는 여인의 남장을 허용하면서 궐밖에서 금하는 것은, 소머리를 상점밖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궐 안 여인들의 남장부터 금지시키라고 간언했다. 이에 영공이 궐 안에서도 이를 즉시 실행하자 온 나라 안에서 곧 여인의 남장 풍습이 사라졌다.”

물론 역사 속에서 지구촌 각 지역마다의 ‘남녀차별(男女差別)’에 관한 다양한 풍습들은 특정 시대의 패라다임이었을 뿐, 오늘날과 같은 양성평등 시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사료됩니다. 특히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불교 경전에 ‘여인은 부처가 될 수 없다[女人不成佛]’는 설은 고대 인도 풍습이 불교에 스며든 것일 뿐이니, 이런 차별적인 비불교적 요소들을 걷어내면서 이 시대에 걸맞는 불경 편찬 작업도 새롭게 추진되면 좋을 것 같네요.

◇ 양두구육의 큰 쓰임

먼저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가 지은 <무문관(無門關)> 제6칙에 선종의 인가(印可) 기원이 담긴 ‘세존염화(世尊拈花)’란 공안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석가세존(BC 624-544)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설법하셨는데, 이때 운집한 제자들 앞에서 다만 꽃을 들어 올려 보이셨다. 이때 오직 가섭존자만이 파안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내가 온몸으로 체득한,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는 진리[正法]가 있는데 이를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전수[付屬]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공안에 대해 간화선(看話禪)의 원조인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 선사의 어록에 있는, ‘양두구육’의 원형인 ‘양머리를 매달고 개고기를 판다[懸羊頭賣狗肉]’라는 대목을 인용하며, 무문 선사는 석가세존을 사기꾼으로 몰며 다음과 같이 제창(提唱)하고 있습니다.

“누런 얼굴의 석가는 난폭하기 그지없다. 그는 선량한 사람을 나쁜 놈으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간판에 양머리를 걸고 양고기를 판매한다고 선전하면서 개고기를 팔기도 하는 것처럼, 정말로 못 되어 먹었다. 혹시나 어딘가 귀에 솔깃한 구석이 있을까? 하고 멋진 설법을 기대했었는데 알고 보니 형편없는 사기꾼이었네. 그렇지만 만일 그때 대중이 모두 웃었다면 진리를 어떻게 전수하였을 것인가? 설사 가섭이 웃지 않았다면 또한 진리를 어떻게 전수하였을 것인가? 만약 진리가 전수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누런 얼굴의 석가 늙은이가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속인 것이 될 것이며, 만약 진리가 전수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뛰어난 10대 제자들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제자들 가운데, 왜 가섭에게만 전법(傳法)을 허락했을까?”

참고로 진리 전수 여부에 관한 이 제창 역시 이 공안에 딸린 응용공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무문 선사는 ‘세존께서 꽃을 들어 올리니/ 꼬리까지 그 정체를 몽땅 다 드러냈네./ 오직 홀로 그 뜻을 꿰뚫어 본 가섭의 파안미소/ 인간계와 천상계를 통틀어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하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문 선사는 세존과 가섭 사이에 이루어진 전법 과정을 이처럼 멋지게 노래하고 있기에 결국 ‘양두구육’을 통한 사기꾼이란 표현은 선종 특유의 세존에 대한 반어적 극찬인 것입니다.

참고로 세존께서 대중들에게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신 일은 ‘비유컨대 달[眞理] 자체가 아니고 지월(指月), 즉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경계일 뿐이니, 부디 ‘염화(拈花)’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또한 선종사(禪宗史)에 따르면 세존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나는 일생동안 한 마디도 설한 바 없다![一字不說]”는 유훈(遺訓)을 당부하고 입멸(入滅)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그 의도를 머리가 아닌 ‘온몸[通身]’으로 꿰뚫어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언행불일치에 대한 준엄한 꾸지람

필자의 견해로는 대표적인 학승으로 많은 저술을 남기셨던 지관(智冠, 1932-2012) 큰스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설법을 잘 하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 주변 가운데 한 스님이 “스님은 왜 다른 큰스님들처럼 대중 앞에서 법문을 잘 안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지관 스님께서는 “니나 공갈 많이 치며 살아라!”라고 응답하셨다는 일화를 남기셨는데, 추측하건대 법문 잘 하는 수행자들 가운데 ‘언행불일치’를 목격하시고 이에 대한 준엄한 꾸지람이셨다고 사료됩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늘 ‘탐심이 많은 이에게는 자신의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마음을, 항상 남을 헐뜯거나 비방하는 사람은 돌이켜 자신의 허물부터 살피기 등을 일깨워주며 이를 실천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다.’라는 점을 역설하셨는데, 오늘을 사는 언행불일치의 정치인들을 포함해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에게도 크게 귀감이 될 말씀이라 사료됩니다.

한편 지관 스님께서는 늘 역지사지하시며 상대방을 배려하셨는데, 필자가 대학 절친인 지인으로부터 들은 멋진 일화가 있습니다. “스님의 동국대 총장 재임 시절 신념이 강한 지인이 신임교수로 확정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총장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인사담당 직원이 ‘종교’란이 공란이라며 불교신자라는 점을 명시하라고 강요하자, 지인이 ‘종교와 아무 관계가 없는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 및 봉사를 잘하면 되지 왜 이를 요구하느냐? 이러면 이 대학에 부임하지 않겠다’라며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자, 지관 스님께서 즉시 ‘종교란은 채우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정리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지인은 집안이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지만 대학에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그랬다고 합니다. 사실 이 지인은 지금은 정년퇴직을 했지만 일반인들을 위한 재능기부 대중강연과 저술을 포함해 매년 모교와 재직했던 동국대 그리고 수행단체 등에 보시를 하며 노년을 멋지게 누리고 있습니다. 덧붙여 예전에 필자의 박사학위 제자들 가운데 이웃종교가 운영하는 대학에 응모할 때 교인증명서를 가짜로 발급받아 제출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교육자로 출발하기도 전에 사기꾼으로 만드는 이런 행위들은 이제는 근절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 뻔뻔스러운 마음에 대한 일침

비교적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지만 총리를 지냈던 나까소네(中曾根, 1918-2019) 씨가 인사청탁이나 ‘주일미군을 일본을 지키는 파수견(把守犬)’이라는 실언 등을 하며 일본 사회에 가끔 물의를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를 접한 일본 임제종 방광사파 관장[方丈]이었던 아라카네 텐린[荒金天倫, 1920-1990] 선사께서 <죽음을 초월하는 마음의 과학>에서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했다고 사료됩니다.

“불도(佛道)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뵤조신[平常心]’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정치가들이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선의 언어를 너무나 가볍게 쓰기 때문에 사회에 오해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나까소네 씨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헤이조신[平常心]을 늘 유지하고 있다.’라고 떠들어댔습니다. 그러나 ‘헤이조신’이라는 말은 선가(禪家)에는 없습니다. 그가 말했던 ‘헤이조신’은 ‘뻔뻔스러운 마음’입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그 의도가 언행불일치의 정치인들이 깊은 자기성찰 없이 명구들을 귀동냥했다가 함부로 인용하는 것에 대한 통렬한 지적을 통해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사료됩니다.

끝으로 3년 전 무렵 기고했던 향상일로 칼럼 가운데 ‘살(殺)의 멋진 쓰임’에서 정약전이 동생 정약용에게 “매심이란 뉘우침(悔 = 心+每)이다. 나는 뉘우칠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러한 뉘우칠 일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에 두기 위해 서재의 이름을 ‘매심재(每心齋)’라고 지었다”라고 언급했었습니다. 또한 조선 시대 청소년들을 위한 윤리도덕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명심보감> 가운데 소동파의 “까닭 없이 천금을 얻는 것은 큰 복이 아니라 반드시 큰 재앙이 될 것이네”란 구절도 인용했었습니다.

요즈음 ‘화천대유’ 사건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이 구절들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 날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관행(慣行)이라는 미명(美名)아래 부정한 짓을 벌리지는 않았는지를 포함해 뉘우칠 일들을 뼛속 깊이 새기면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함께 더불어 각자 맡은 바 책무에 온몸을 던져 몰두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입자이론물리 전공)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한편 1975년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였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했으며, 1987년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또한 1991년과 1997년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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