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겉면에 라벨을 뗀, 이른바 ‘무라벨’ 제품이 가짓수 늘려가고 있는 가운데 식품표시 관련법에 근거한 의무표시 문제가 음료업계 무라벨 제품군 확장에 걸림돌로 존재하는 실정이다. /뉴시스

시사위크=엄이랑 기자  지난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현실화되면서 유통업계에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페트병 분리배출이 시행되면서 음료제품 용기 겉면에 둘러진 라벨을 제거해 출시하는 이른 바 ‘무라벨’ 제품이 가짓수 늘려가고 있다. 다만 식품표시 관련법에 근거한 의무표시 문제로 업계의 무라벨 제품군 확장엔 걸림돌이 존재하는 실정이다. 

◇ 생수로 시작한 무라벨… 간장‧요거트‧녹즙까지 확대  

지난해 12월부터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제도의 시행으로 투명‧유색 페트병을 따로 분류하게 됐다. 특히 배출요령 가운데 ‘라벨 제거’를 안내하고 있어 무라벨 제품이 음료업계에서 다량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오는 12월부터는 대상범위가 기존 ‘의무관리 대상 공동주택’에서 연립, 빌라 등 ‘의무관리 비대상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으로 확대될 예정인 만큼 무라벨 적용 제품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음료업계는 라벨 제거에 분주한 모습이다. 초기엔 생수업계를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현재는 탄산음료·커피·차 등의 식음료는 물론 간장, 요거트, 녹즙과 같은 분야로도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먼저 라벨을 뗀 곳은 롯데칠성음료다. 지난해 1월 1.5L 용량의 무라벨 생수 ‘아이시스ECO’를 선보인 롯데칠성음료는 5개월 후엔 500mL·2L로 무라벨 적용 제품을 늘린 바 있다. 이후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이 시행되고 생수업계는 앞다퉈 무라벨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농심이 자사 생수 브랜드 ’백산수‘ 무라벨 제품을 내놨고, 6월엔 생수제품 점유율 1위 브랜드 ’삼다수‘가 무라벨 제품을 출시했다. 

음료제품군에선 커피‧탄산음료 등에 무라벨 적용 제품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빙그레가 선보인 ‘아카페라 심플리’는 커피제품 최초 무라벨로 출시됐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4월 용기 표면에 라벨을 ‘인쇄’한 ‘칸타타 NB(New Bottle)’ 캔을 선보인 바 있다. 코카콜라의 경우 지난 1월 국내 탄산제품 중 최초로 무라벨 탄산수를 선보였고, 지난달엔 라벨을 뗀 콜라를 출시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4월과 6월 각각 사이다‧탄산수 등을 무라벨로 선보이며 음료업계들 중 무라벨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 필수표시 사항에 발목 잡힌 무라벨… 제품 확장 한계 직면  

이외에도 간장‧요거트‧녹즙 등에서도 무라벨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분리배출 정책에 발맞춰 음료업계는 분리배출‧라벨제거와 관련된 캠페인도 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음료업계가 무라벨 제품군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기엔 커다란 걸림돌이 존재한다. 생수를 제외한 음료류에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이 정하고 있는 필수표시 사항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수의 경우엔 음료류에 비해 필수 표시사항이 적고, ‘먹는 물 관리법’에 따른 ‘먹는샘물 등의 기준과 규격 및 표시기준 고시’의 개정으로 병목에 기입할 수 있을 정도로 필수 표시사항이 간소화 됐다. 반면 생수를 제외한 음료류의 경우 ‘식품위생법’ ‘식품의 기준 및 규격’ 등에 의해 식품으로 분류돼 필수표시 사항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 탓에 라벨을 뗀 음료류는 묶음포장으로만 판매가 가능한 실정이다. 묶음포장 시엔 포장비닐에 식품관련 정보를 표기할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라벨을 뗌으로써 낱개 판매가 불가능하고, 판매처‧판매방식 등이 제한되는 ‘변수’가 무라벨 제품군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 식약처·환경부 “국민건강 직결요소인 만큼 신중한 접근 필요”

식품표시 사항을 주관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위해 식품표시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고, 재활용 관련 정책을 환경부가 주관하고 있는 만큼 환경부에서 나오는 정책 내용에 따라 관련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현재 환경부와 논의하고 있는 건 없다. 다만 환경부가 주관하고 추진하는 정책에 맞춰 식약처도 가능한 부분을 찾아 적극 반영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향후 환경부에서 나올 재활용 정책에 따라 참여할 부분이 있으면 검토를 거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역시 식약처와 유사한 입장이다. 무라벨 도입을 확대해 포장재를 줄이는 움직임도 중요 하지만 식품의 성분표기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요소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환경부 설명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무라벨 페트병 확산에 기여하고자 ‘포장재 재활용 용이성 등급평가’와 관련된 고시를 개정해 무라벨 페트병에 최우수 등급을 부여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라벨이 있더라도 재활용 용이성에 큰 영향이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며 “재활용 용이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품 (성분) 표기가 국민 건강 증진에 중요한 요소인 만큼 음료류의 식품표기를 간소화하는 부분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