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1.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새벽 시간 택시를 타고 귀가한 20대 승객이 40대 택시기사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붓는다. 택시기사의 어머니까지 들먹이는 폭언이 가관이다. “너 우리 집 얼마인지 알아? 미안한데 거의 15억이야.”

#2. 인천 영종도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초등학생 5명을 본 입주민대표가 아이들을 향해 어디 사느냐고 묻더니 다른 아파트라는 대답을 듣고 매섭게 화를 낸다. 급기야 아이들을 관리실로 데려간 그는 ‘기물파손’을 이유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저 친구들과 놀고 있었을 뿐인 아이들을 그는 도둑으로 내몰았다. “남의 놀이터에 오면 도둑인 거 몰라? 너네는 아주 큰 도둑이 될 거야.”

최근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두 씁쓸한 사건이다. 모두 개인의 인성과 관련된 사건이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아파트다. 승객과 입주민대표는 나란히 아파트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아파트 제일 시대’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은 아파트가 주도했고, 아파트 청약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린다. 어디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수준을 상징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인의 아파트를 향한 사랑이 씁쓸하고, 애처롭다. 획일적인 주거공간과 삭막한 겉모습이 자아보단 사회적 기준을 더 중시하는 우리의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기 보단, 현 시대의 문화와 주된 가치 및 욕망, 그리고 경제적 상황 등이 총체적으로 축적되고 작용한 결과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파트 사랑에 매몰돼 품위마저 잃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가 사는 아파트, 그것도 부모 소유의 아파트가 15억원이라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이나 자신의 새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다른 아파트 아이들을 도둑 취급하는 모습을 향한 애처로운 마음은 견디기 어렵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데 ‘아파트 제일 시대’의 ‘품위 실종’을 보여주는 사건은 또 있다. 김포에 위치한 장릉을 마치 병풍처럼 에워싸며 올라가고 있는 고층아파트 논란이다.

장릉은 조선시대 인조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왕후의 능이다. 2009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당연히, 문화재보호법에 철저히 보호받는다. 일정한 반경 이내에 건물을 지을 경우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높이가 제한되고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장릉 인근엔 이 같은 ‘법’을 지키지 않은 채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가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파트 건설이 이미 꽤 진행된 가운데,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이 같은 사태의 원인에 대해선 문화재청과 지자체, 건설사들의 입장과 주장이 서로 엇갈린다. 여기서 그 잘잘못을 논하진 않겠다. 그보단 결과에 대한 우려를 말하고자 한다.

현재 문화재청을 중심으로 대책이 강구되고 있는 가운데, 건설사들은 아파트 철거만큼은 ‘절대불가’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층만 철거하는 것 역시 안전상의 이유로 불가하다고 한다. 한편으론, 예비입주자들의 애꿎은 피해를 고려해야한다거나 수십 미터의 나무를 심어 가리자는 대안도 들려온다. 

확실한 건 문제의 아파트들이 장릉의 경관을 해치는 상태로 계속 존재할 경우, 우리는 품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문화재의 품위는 물론, 문화재 보호를 공동의 가치로 여기는 인류의 품위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부디 품위를 지키는 결론이 내려지길 바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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