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 선거가 100여일 남은 이른바‘정치의 계절’이지만, 국민들의 삶과는 별로 관련 없는 일로 날마다 티격태격 싸우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일까? 이럴 땐 시를 읽네. 오늘은 나희덕 시인의 <나무 한 그루>일세.

학교 뜰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뿌리를 거세당한 채 기울어 간다/ 세상에 이럴 수가, /교장 선생님은 얼굴까지 붉히며 열을 올린다/ 잔인하게도 학생이 이런 일을 할 수가, / 학교 뜰의 나무 줄기에/ 누군가 칼로 긁어 상처를 냈다는 것이다/ 그런 학생이 사회에 나가면/ 흉악범이 될 게 분명하다며/ 누군지 밝혀내어/ 마땅한 처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싹수가 노란 것은 미리미리 잘라 내야/ 선량한 나무들이 벌레 먹지 않는다고 한다/ 쓸쓸한 마음으로 나와/ 시들어 가는 나무 한 그루 쓰다듬으니/ 바람결에 우우우 소리 내어 운다/ 퇴색해 버린 이파리,/ 난자당한 줄기보다 더 아픈 것은/ 묶여진 이 뿌리, 때문이에요/ 울고 또 울어도 듣는 이 없어/ 나무 한 그루 조금씩 조금씩 기울어 간다

이 시를 읽으면서 1981년 봄에 교생 실습을 나갔던 서울의 한 중학교 교무실 분위기를 떠올리네. 며칠 전에 아무런 반성 없이 죽은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지. 아침 교직원 조회시간마다 교장과 교감 선생님 입에서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말만 나오던 시절이었어. 그때 교육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치적인 훈시를 묵묵히 수첩에 받아 적고 있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얼마나 비굴하게 보였는지… 그땐 난 나름 뜨겁게 피가 끓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거든.

다행스럽게도 교생 실습 마지막 날 대학생들의 대표로 소감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네. 그래서 한 달 동안 교생 실습하면서 보고 느낀 대로 솔직하게 말했어. ‘교직 사회에 실망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집권한 독재자가 내려 보내는 교육 지침을 아무런 이의 없이 그대로 따르는 선생님들을 학생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선생님들이 깨어 있어야 학생들도 바르게 자라는 것 아니냐.’ 지금 생각해도 정말 겁이 없었던 청춘이었지. 아직 세상에 크게 물들지 않아 조그마한 정의감이라도 갖고 살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야. 그런 정의감과 혈기가 지금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씁쓸하고 부끄러워.

시 속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게나. 어디서 자주 들었던 말이 아닌가? 우리나라의 많은 교육자들과 어른들은 “싹수가 노란 것은 미리미리 잘라 내야/ 선량한 나무들이 벌레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어떤 정해진 틀을 벗어나면 무조건 제거해야만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되지 않는다고 믿지. 하지만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을 찾아내고 계발시켜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바탕을 마련해주는 게 학교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고분고분 잘 듣는 모범생들뿐이라면 그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회학에서는 정해진 규범에 벗어난 ‘일탈행동’을 꼭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똑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드는‘과잉사회화(oversocialization)’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간혹 텔레비전에서 북한 사람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게나. 인간성이 사라진 로봇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등골이 섬뜩하고 안타까울 때도 있어.

게다가 이 시에 등장하는 교장선생님은 나무가 진짜 힘든 이유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사람이야. 나무는 ‘누군가 칼로 긁어 상처’가 난 줄기 때문이 아니라 ‘묶여진’ 뿌리 때문에 힘들다고 우는데, 그는 줄기에 상처를 낸 학생만 찾아내 “처분”하면 나무가 다시 제대로 성장할 거라고 믿고 있네. 문제의 본질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학교 지도자이지. 이런 교장선생님을 보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사람들 없나? 요즘 대통령하겠다고 나와서 떠드는 후보자들이 이 교장선생님 같아서 걱정일세.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로 빈부격차와 양극화 해소, 기후위기 대응,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지적하고 있는데, 대통령하겠다는 사람들 누구도 아직까지 그럴듯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 딱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드네. 물론 그런 분들 중에서 밉든 곱든 한 사람에게 표를 줘야 하는 우리 국민들은 더 딱하고. 선거에 불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길 바랄뿐일세.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